[양은심 더봄] ‘하치만타이 드래곤 아이’를 꿈꾸며···도호쿠 지방 1박2일 단체여행④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21) 하치만타이(八幡平) 고원지대의 명소는 겨울이면 꽁꽁 얼어 용의 눈이 되는 연못 1시간만 머물러도 숲·자연의 치유력 실감 내가 나 홀로 단체여행을 즐기는 까닭은?
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한 해에서 다른 해로의 여행. 2023년 그믐날에 다듬은 글을 2024년 첫날에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미래로 타입 슬립한 듯하기도 하고, 과거를 미래로 끌고 온 느낌이기도 하다.
경계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득 이와테현과 아키타현에 걸쳐 펼쳐지는 하치만타이(八幡平)에 생각이 이르렀다. 걸을 때는 몰랐다가 집합 시간이 다 되어서야 발견하고는 서둘러 ‘県境’이라고 쓰인 푯말 사진을 찍었더랬다. 경계선이란 말에는 묘하게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선을 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달과 해가 떠 있던 하치만타이 고원의 푸르디 푸르른 하늘.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기기 전까지는 달과 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달은 밤에 뜨는 것이고 태양은 낮에 뜨는 것이니 같은 하늘에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아침 산책길, 동쪽에는 아침 해가 서쪽에는 아침 달이 떠 있는 걸 보았다. 마치 신기한 현상이라도 목격한 듯 흥분했다. 자연 과학에 대한 나의 무지를 한탄하지는 않았다. 그저 몰라서 느끼게 되는 기쁨도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이제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패키지여행이라 불리는 단체관광을 즐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 혼자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에 안전하고 저렴하게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열도에 발 도장을 찍어보자고 계획을 세운 후 가장 걱정되는 것은 경비였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다. 교통편과 숙박에 드는 경비를 검색하다 보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일본인들이 국내 여행보다 해외여행을 즐기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나는 여행지에서 혼자 헤매고 다닐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 어디에서 무얼 보면 좋을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머릿속은 말 그대로 백지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눈에 띈 것이 여행사의 단체 관광 상품이었다. 참가해 보니 의외로 '나 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꽤 있었다.
처음으로 참가한 여행에서 만난 분과의 귀갓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연히 같은 전철을 타게 되었고, 나 홀로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자식을 자립시키고 나서 여행사 단체 여행에 혼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번거로운 일은 여행사에 맡기고 홀가분하게 관광지를 즐기는 여행 스타일이 좋으시단다. 여러 여행사에 등록하여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가며 참가하고 있다고. 단체 여행에서 나 홀로 여행의 맛을 즐기는 베테랑이었다.
두근두근 초심자였던 내가 용기를 얻은 순간이었고, 이런 취미 생활도 있다는 걸 확신한 순간이었다. 굳이 서로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를 즐기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따스한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 관광버스 단체여행, 나 홀로 참가. 혼자여도 괜찮았다.
나 또한 횟수를 거듭하면서 나 홀로 여행 베테랑이 되어 갔다. 30대 40대는 물론이고 가끔 20대도 눈에 띄었다. 어떤 때는 50대 중반인 내가 가장 젊은 여행도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것 또한 인상적이다.
가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혼자 다니는 나를 신경 써 주던 사람들, 같이 식사하자고 먼저 말을 걸어 준 인생 선배님들,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보고 다니라고 덕담을 해주시던 어르신들. 그 얼굴은 잊었어도 그 당시의 따스한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번 여행지도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내었을 곳이다. 도호쿠 지방(이와테, 아키타, 아오모리)을 1박2일의 일정으로 도는 여행. 첫날은 이와테현(岩手県)에서 겐비케(厳美渓)와 추손지(中尊寺)를 보고 아키다현(秋田県)에서 가쿠노다테(角館)를 돌아봤다. 둘째 날 첫 목적지는 아키타현의 하치만타이(八幡平)다. 이와테현과 아키타현에 걸쳐있는 곳. 195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해발 1614m의 고원지대다. 이곳을 걷는 게 목적이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하룻밤 묵은 호텔을 출발하여 ‘하치만타이’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하치만타이에 도착. 화창한 날씨에 모두 신났다. 주의 사항을 듣고 걷기 시작. 체재 시간은 약 1시간이다. 하이킹 코스는 세 개가 있는데 1시간 안에 돌아올 수 있는 코스는 두 곳이라 했다. 중간에 코스가 둘로 나누어진다.
나는 왼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왼쪽으로 꺾은 곳에 안경 연못이 있고, 겨울이면 ‘하치만타이 드래건 아이’라는 절경을 만들어내는 연못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을 여행이긴 했지만, 그 현장을 봐두고 싶었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서 마치 용의 눈처럼 보인다는 연못. 그 연못은 어떤 서양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한 후 명소가 되었단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강렬하고 환상적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삼삼오오 혹은 둘이 웃음 섞인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나 홀로 타임을 만들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고요 속에서 묵묵히 걷고 싶어서다. 일상의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대면하는 시간. 따스한 햇살과 공기에 둘러싸여 내 몸과 마음의 세포들을 느슨하게 풀어낸다. 나 홀로 여행이어서 느낄 수 있는 순간. 방해받기 싫은 소중한 시간이다.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 고원지대에서 자라는 적당한 높이의 나무들. 하늘색을 그대로 품은 새파란 연못.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체재 한 시간. 충분했다. 자연의 치유력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 듯하다. 잠시 그곳에 머물렀을 뿐임에도 숨을 깊이 쉬게 하고 가슴을 펴게 해서 기분을 완화한다. 그래서 나는 숲길을 걷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30분 예정이었는데 20분 정도로 끝났다. 남은 시간은 '하늘 멍'이라는 호강을 즐겼다.
지금까지의 나의 여행 목적은 주로 자연 풍광 속을 걷는 것이었다. 마감에 쫓기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먹는 것과 쇼핑 등은 관심 밖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취향은 40개 구역에 발 도장을 찍을 때까지 이어졌다.
이제 일곱 개 정도만 남겨놓은 상태인데, 슬슬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다. 자연 속으로 가던 여행에서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첫 여행지를 어디로 잡을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드래곤 아이를 볼 수 있는 사이트다.
www.hachimantai.co.jp/topics/30733
하치만타이 리조트, 드래곤아이 관찰일기
https://www.pref.akita.lg.jp/pages/archive/40618
아키타현 공식 사이트 ‘아름다운 아키타현/야하타 드래곤 아이 발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