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새해, 시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지금 가족, 지인, 나와의 관계를 점검해 본다

2024-01-02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새해가 됐다는 건 정리하고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1.

2023년을 뒤로하고 2024년 푸른 용의 해를 맞았다. 매년 이맘때는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과 지인들의 번호를 확인하며, 통화나 문자로 한 해 동안 수고 많았고 새해에도 원하는 일을 이루길 바란다는 덕담을 나눈다.

마침 올해는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네가 들어와 전화로만 건네는 인사가 아닌 함께 모여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조카를 데리고 홍대 앞에 가서 쇼핑을 했고, 셀프 사진관을 예약해 부모님과 함께 여러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포토타임을 가졌다. 큰아버님들 식구까지 합류한 십수명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이렇게 많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게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동생네 덕에 1년에 한 번 찾아뵙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한자리에서 뵐 수 있었는데, 훌쩍 커 버린 손주들의 등을 연신 두드리며 미소를 띠시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 모임에 잘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부모님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은 뵐 때마다 달라지신다. 걸음도 느려지시고, 빨리 피곤해하시는 등 기력이 이전만큼 못하다. 마음 같지 않은 몸을 느끼시는지 약속을 잡는 일도 외출도 줄이신다. 그러니 함께할 자리를 일부러라도 만들거나 직접 찾아가 봬야 한다. 

#2.

새해가 되거나 명절 때면 안부를 전해오는 후배들이 있다. 잡지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후배들인데, 그 매체를 떠나 다른 매체로 옮겼을 때도 에디터가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어김없이 자신의 근황과 함께 친근한 인사를 보내온다. ‘편집장님’ 하며 말을 걸어올 때마다 같이 잡지를 만들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 시절 나누었던 대화가, 고민했던 지점과 즐거웠던 순간들까지 말이다.

지금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생활하지만, 호칭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때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관계가 없으면 이야기는 거기서 머물고 만다. 지금의 모습으로 그다음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데 사실 있는 자리가 멀어지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올해는 전화로 인사만 전하는 그 후배들을 직접 만나야겠다. 그리고 그 시절의 관심사를 어떻게 펼치며 생활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눠야겠다.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니라 계속되는 관계, 그러니까 우리들의 그다음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게 말이다.  

세상에 그리고 나에게 무뎌지지 않고 나아가는 한 해를 보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Unsplash의Fuu J

#3.

신년 연휴에는 집에 머물며 정리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한 해 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가늠하는데, 지금 내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란 의문이 생겼다.

오십이 넘은 나이, 나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다.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자식이나 부모님 등 돌봐야 할 가족에 신경 쓰는 게 우선이란 생각도 든다. 건강을 챙기며 조용히 속도를 낮추며 살아가는 게 맞는 게 아닐까란 마음으로 몇 년을 지내왔는데 올해는 조금 다른 마음이 생긴다.

통상 해오던 말이 ‘나이 드니 건강이 최고야’였는데, 이 말을 하면 할수록 지난 30년 바쁘게 뛰어다닌 시간이, 만들어보고 싶었던 삶의 모습이, 가지고 있었던 열정이 점점 작아지는 걸 느낀다. 물론 나이에 맞게 스스로를 돌보며 삶을 정리해 가는 게 맞는 일이나, 혹시 내가 너무 급하게 나이라는 팻말 뒤로 들어가 버린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이 안 나,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나, 조금씩 무뎌지는 가슴 이젠 차갑게 식어버린 것 같아’ 얼마 전 ‘골든걸스’라는 팀으로 무대에 오른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의 신곡 ‘원 라스트 타임(One Last Time)’의 가사다.

평균 나이 59.5세, 이미 한국 가요계의 대표적 디바로 자리매김한 이들이 걸그룹이란 콘셉트로 현재의 K-POP신에 합류해 보려는 도전과 그것을 이루어내는 과정은 어쩌면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닮아 보인다. ‘내가 날 잃어버리게’ 했는지 ‘아니면 날 막는 게 바로 나인지’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 답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