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돈 많아" "수출 회복 기대"···부동산 PF 위기 사실상 무대책

지난해 SOC 예산 10%나 줄인 후유증 내년엔 건축 공사 부진까지 겹칠 전망

2023-12-29     이상헌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 네 번째)이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뾰족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근본적인 원인인데도,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수출 회복 등 관련성이 없는 거시 지표에 기대를 걸고 있다.

29일 여성경제신문이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3분기 말 캐피탈사의 부동산 PF 대출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4.14%로 직전 연도 4분기 말 1.71%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또 같은 기간 국내 부동산 PF 대출잔액 규모는 134조3000억원까지 치솟았다.

금융사가 되돌려 받을 수 없는 부실채권을 고정이하여신이라 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날로 규모가 커지는 위험 신호를 애써 무시하며 은행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정부가 부양책은 나 몰라라 하는 실정이다. 

부동산 PF 대출 부실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채무보증을 수행한 금융사의 손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20년 3월 해외 주가 하락에 따른 증권회사 ELS 마진콜 사태, 2022년 4분기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의 불안 등은 기업 부실이 비은행 부문을 통해 확산되면서 금융 안정을 저해했던 단적인 사례다.

증권사 우발부채의 상당 부분은 단기금융상품인 PF ABCP로 구성돼 있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 증권회사의 자산건전성 분류 대상 자산 중 부동산 PF 관련 익스포저(대출 및 채무보증)의 비중은 26.0%를 차지한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얼어붙었던 PF ABCP 시장은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에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란 악재를 겪으면서 활기를 잃었다.

증권회사의 부동산 PF 채무보증 규모는 2023년 3분기 말 21.7조원으로 2022년 말(22.2조원) 대비 2.2% 감소했으나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고정이하 비율이 상승했다. 특히 중소형사의 경우 채무보증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중·뒷순위 비중(74.1%)이 높아 보증이행을 위한 자금 수요가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은행

단기대출은 착공으로 넘어가면 장기대출인 본 PF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레 해소되는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며 이 흐름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말 이후 PF ABCP는 발행량보다 만기도래량이 많은 달이 더 많았다"며 "자금을 단기채에 의존하고 착공이 지연되다 보니 통상 1~3개월마다 차환이 필요해 만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5월 증권사가 지급보증한 PF ABCP를 기초자산과 만기가 일치하는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증권사 입장에서 부실 우려를 직접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김주현 위원장이 "부동산 PF 시장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것"이라며 시행한 조치가 오히려 금융 리스크를 키운 셈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바라보는 용산 대통령실 자세도 산 너머 불구경하는 식이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전일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은행이 지금 돈이 많다"며 "워크아웃으로 금융권과 채권자들이 부담을 나누면 최종적으로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상환 기간을 늘리는 방안은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금융 상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4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에 따르면 내년 국내 건설수주액은 올해(190조1000억원) 보다 1.5% 감소한 187조3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공공 수주는 GTX 공사 등 토목사업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4.6%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난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10% 가까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기저효과도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건설투자액도 하락할 것으로 분석돼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2023년 건축 착공이 감소한 영향으로 2024년 주거용과 비주거용 건축 공사의 부진이 예상된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내년엔 정책 대출을 포함한 전반적 대출 태도의 경직성이 강화됐고, 고금리 장기화가 우려되면서 주택시장은 다시 하락 반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