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 떨어지는 대출금리, 돈 잔치 누명 쓴 은행 “자본 자유화 부작용 탓”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저성장 국면 주식·채권 수익 떨어져 안 팔리는 韓 은행채 가격↓·금리↑ ‘자유 딜레마’ 한은 정책 효과 하락 “의사가 처방할 약이 없어지는 상황”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있지만 대출 금리는 올랐다. 한국은행이 아닌 미 국채 금리에 영향을 받고 있는 탓이다.”
13일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최근 기준금리와 대출 금리의 비 동조화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으로 미 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한국의 대출금리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10월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를 보면 이 기간 은행권의 대출과 예금 금리는 모두 상승했다. 특히 10월 예금은행의 대출 금리는 전달보다 0.07%포인트 상승해 5.24%를 기록했다. 2개월 연속 올랐는데, 이는 지난 2월(5.32%) 이후 최고 금리 수준이다. 기업 대출 금리도 0.06%포인트 올라 5.33%로 집계됐다.
가계 대출 금리는 0.14%포인트 오른 5.04%를 기록했다. 3개월 연속 올랐고 지난 2월(5.32%) 이후 최고치다. 일반신용대출(6.81%)과 전세자금대출(4.28%) 주택담보대출금리(4.56%), 5년물 고정형 은행채(4.53%), 5년물 변동형 은행채(4.64%) 모두 수개월 동안 올랐다.
당시는 한은이 금리 동결을 6연속 단행한 때다. 대신에 미 국채 금리가 긴축 장기화 전망에 급등했다. 10월 12일 기준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8%대를 훌쩍 넘으며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2년물 금리는 5.2%대를 기록하며 17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
“한국 채권 대신에 금리가 높은 미국 채권에 투자하다 보니 국내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만 것이다. 한국의 은행채를 안 사니까 금리를 높여야 자금조달이 가능해진 측면이 있고, 또 채권 수요가 적으니, 가격이 내려가면서 수익률이 올라간 측면이 있다.”
한국의 연속적인 금리동결에도 대출 금리가 상승한 이유다. 결국 기준금리와 대출 금리의 동조는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국제금융의 딜레마 이론이 한국에서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딜레마 이론은 자본자유화를 택한 국가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대로 독립적인 통화정책에 무게를 둔다면 자본자유화를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중국이 후자, 대부분 주요국이 전자를 택하고 있다.
“한국은 자본자유화를 1990년대부터 시작했는데 왜 이제 와서 대출금리가 우리나라 기준금리에 영향을 안 받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저성장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정책과 시장 금리의 비 동조화가 본격화된 원인을 한국경제의 저성장에서 찾았다. 과거 성장경제 시기에는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주가 등 금융상품 가격이 급등해 외국인 투자가 많았다. 그러나 성숙경제에 접어든 한국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고 채권이나 주식 수익률이 이전보다 안 나면서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정책 효율성도 떨어지고 한국은행 정책 효과가 안 난다. 그렇다고 미국 금리 안 따라가면 안 되고 독립적인 정책을 쓸 수가 없다. 정책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다. 금리뿐 아니라 환율 조작 감시도 받기 때문에 환율 정책 수단도 잃고 재정정책밖에 안 남으니, 재정적자가 늘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유로존이 처한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명확히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세계 정부 위치에 올라선 모양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는 미국 금리 정책에 의한 자본 이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한국 금융 감독 정책의 잠식 가능성도 내다봤다. 이는 자본자유화와 금융 안정성, 독립적인 금융 감독 정책의 관계를 나타낸 ‘파이낸셜 트라일레마’라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통화정책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면 금융 감독 정책도 독립적으로 쓸 수가 없다. 투자를 감행한 타국 금융기관의 부실을 감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자유화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이외 주요국 은행이 연준 정책에 동조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행 힘이 약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