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음식(1)
[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싱가포르의 호커 문화 '지역사회의 공동 부엌' 결혼식·장례식에서 나눠 먹는 아제르바이잔의 플랫브레드 사회적 결속력을 구축하는 알제리의 쿠스쿠스
겨울을 준비하며 김장하는 문화는 예로부터 한국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이웃끼리 서로 품앗이로 김장을 도와주며 추운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것은 일 년 중 큰 행사였다.
2013년 유네스코에서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확정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식문화인 ‘김장 문화’가 전 세계인이 함께 보호하고 전승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김장 문화 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호커 문화 "지역사회의 공동 부엌"
유네스코는 싱가포르의 호커 센터를 "지역사회의 공동 부엌"이라고 표현한다.
수십, 수백 개의 작은 음식 노점이 한데 모여 여러 다민족이 공동으로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구역을 호커라고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싱가포르의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호커에 모여 음식을 즐기곤 한다. 꼬치구이인 사테이, 부드러운 닭을 밥 위에 올린 치킨라이스, 락사, 나시고랭과 카야 토스트 등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즐길 수 있다.
호커 문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회적 · 종교적 · 인종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사회의 공동체 상호작용을 강화해 주고 있으며 음식을 통해 서로 포용해 주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써 호커 센터는 서로 다른 문화 공동체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 주며 서로의 종교적,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출신 국가나 사회적 배경과 관계없이 싱가포르 사람들은 수세대에 걸쳐 지속해서 호커 센터에서 식사를 해왔다. 싱가포르 인구의 80% 이상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이 호커 센터를 방문하고 있다고 하니 호커 문화는 다양한 인종, 사회적 배경,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음식을 통해 하나가 되고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지역사회의 공동 부엌인 셈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에도 나누어 먹는 아제르바이잔의 플랫브레드
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과 튀르키예 등 코카서스와 서아시아의 여러 공동체에는 플랫브레드(flatbread)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문화가 있다. 플렛브레드는 효모를 넣지 않고 만들어서 많이 부풀지 않고 납작한 모양의 빵이다. 이 빵을 만들기 위해서 대개는 가족이 동원되며, 반죽 만드는 사람과 굽는 사람 등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 시골 지역은 이웃이 한데 모여 빵을 만들기도 한다.
플랫브레드는 평소에 식사할 때도 먹지만 결혼·생일·장례식·축일 등과 같은 특별한 날이나 기도 기간 때에도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에서는 결혼식 때 라바시를 신부의 어깨 위에 올리거나 머리 위에서 부수어 신혼부부에게 다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고, 튀르키예에서는 신랑 신부의 이웃들에게 플렛브레드를 나누어준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장례식 때에 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동안 여러 사람이 빵을 나누어 먹으면 고인의 다음 생애는 이전보다 나을 것이라고 여긴다. 또한 장례식에서 플랫브레드를 조리하는 것은 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불타는 태양으로부터 고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플랫브레드가 아픈 사람을 돕는다고 믿는다. 이란의 종교의식과 전통 결혼식에서는 신성한 제물의 하나로 플랫브레드를 받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플랫브레드 문화는 공통의 문화적 뿌리를 가진 문화 표현이다. 서로의 문화적 연결 고리를 강화하는 것이며 동시에 환대와 유쾌함, 친선의 증표 역할을 한다.
사회적 결속력을 구축하는 알제리의 쿠스쿠스
쿠스쿠스(Couscous)는 듀럼밀 세몰리나를 갈아 아주 작은 알갱이로 뭉친 마그레비 전통 음식으로 주로 알제리와 모리타니, 모로코, 튀니지에서 먹는다.
보통 육수나 스튜에 익힌 채소, 육류와 함께 곁들여 먹는데 순한 맛의 요리부터 매콤한 요리까지 식감과 맛을 더하는 식재료이다.
쿠스쿠스를 비빌 때는 다리를 펴고 그릇 주위에 앉아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며 특정한 자세를 잡아야 한다. 쿠스쿠스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세대 간 대화를 하면서 보다 친밀하고 강력한 사회적 유대를 구축하게 된다.
쿠스쿠스는 풍요와 섭리를 상징하는 ‘바라카(baraka, 축복)’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쿠스쿠스는 축복받은 음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과 땅이 짝짓기하여 쿠스쿠스를 낳았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튀니지에서는 새신부가 ‘약속의 요리(Gas’sat Errdha)’라는 특별한 쿠스쿠스를 가족에게 보내는 풍습이 있다. 양가가 쿠스쿠스 선물을 받아먹으면서 새로 맺은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유네스코는 유독 무형문화유산으로 음식을 나누고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 한국의 김장도 마을공동체가 품앗이로 서로를 도와주며 김치를 만든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고 싱가포르의 호커 문화나 아제르바이잔의 플랫브레드, 알제리의 쿠스쿠스도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을 높게 평가하였다.
요즘은 김장하는 집도 점차 줄어들고 김치를 사 먹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점차 대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김장이라는 문화도 사라져 가고 있지만 서로서로 도와주며 어려움을 함께하는 김장 문화는 대대손손 이어져가야 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한국의 김장 문화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