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치앙마이 한달살이, 뭐할라고 가는데요?
[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는 자유인으로 심심하고 비어있는 시간 가지기 목표
경아가 그해 치앙마이에서 12월을 보내기로 한 것은 <한달살이> 개념의 여행이 생기기도 전, 살아보기 여행이 유행이라서는 아니다. 첫 번째 이유는 유독 추위가 기세등등한 때였는데 고질적인 호흡기 질환에 따듯한 기온에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고 했고, 항공사 마일리지가 동남아 도시까지 다녀올 수 있는 정도로 남아 있었던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 이름이라 선택했다고 했다.
게다가 치앙마이에서 위생이나 치안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동네에서 사치스럽지도 궁핍하지도 않을 숙소에서 머물 수 있는 비용은 제주도 4박5일 여행 비용과 맞먹었다니 일단 경제적인 고민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경아는 원래 과일이나 쌀국수라면 평생 먹으라고 해도 물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건강 문제로 휴식을 위해 태국으로 떠난 친구 경아에게 치앙마이에서 보낸 한 달은 천국과 같았다고 했다. 경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손짓발짓하면서도 넘치는 친절을 받아 공연히 미안할 때도 많다고 메일을 보내왔었다. 그가 머물던 동네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에 걸어가 먹거리를 쇼핑하고 나면 태국 돈 밧(Baht)을 한국 돈으로 계산하고 나서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몇 번씩 확인할 정도로 싸다고 했다.
7년 전 치앙마이에 다녀온 경아 덕분에 나는 한달살이가 유행하기 전부터 맹렬한 추위의 겨울이 오면 피한처로 치앙마이를 꿈꾸었고, 올봄 드디어 12월 한 달을 혼자 살아보기 위한 티케팅과 숙소 예약을 마쳤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고 구경하는 여행은 어느새 낡은 스타일로 여겨진다. 이제는 거주자처럼 실제로 여행지의 삶을 경험하는 트랜드, 살아보기 여행으로 변하고 있다. 실질적인 삶의 일상에서는 여행자로 지내기를 꿈꾸면서 여행은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의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치앙마이로 오기 전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나의 생활을 위한 루틴을 세워 보았다. 일단 매일 공원에서 열리는 요가 클래스에 참석하는 것이 목표다. 얼마 전부터 오래전 사놓고 써보지도 않고 세워둔 매트가 유독 마음에 걸려 트렁크 속에 가장 먼저 챙겨 넣었다.
치앙마이 루틴, 한 달 동안 매일 요가를 한다. 까지는 정했는데 그다음은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편리함으로부터 떨어져 보는 것이 목표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소비, 판단, 서비스를 벗어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관광지도 찾아두지 않았다.
비어있는 시간, 심심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현대인의 특성이다. 나 역시 돌아보면 여행조차도 하나의 일, 업무 프로젝트처럼 처리하지 않았던가. 몇 시에 일어나 어딜 가고 동선은 어떻게 짜며 무얼 보고 무얼 먹을지까지 정한 후 체크리스트를 지워가듯 실행하는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모르는 곳에 나를 놓아보는 것이 목표다.
사전 정보 없이 이국에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시간을 영위하게 될까? 일부러 혹시라도 치앙마이 관련한 어떤 기사가 눈에 뜨이면 얼른 덮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치앙마이가 나올라치면 서둘러 채널을 바꿨다. 내가 궁금한 것은 나다. 나는 어떻게 즐거움을 찾고,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무얼 보게 될까?
실험대에 나를 올려놓는 기분으로 비행기를 탔다. 한 달. 나는 어떤 여행자로 살다 오게 될지. 무한한 시간을 선물로 받은 사람처럼 어떤 계획이나 원칙도 없이 완전한 자유인으로 보내는 한 달을 앞두고 가슴이 뛴다. 모르는 곳으로, 모르는 나를 찾는 시간 속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