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박진영 무대에서 현역의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오십 대 이후에도 현역이어야 생애 설계 검토가 필요하다

2023-12-05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박진영은 청룡영화상에서 그 누구보다 멋진 축하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유튜브 kbs entertain ‘청룡영화상’ 캡처

과감한 스모키 화장에 화이트 롱 드레스를 입고 당당한 포즈로 무대에 선 박진영 때문에 청룡 영화상 비디오 클립을 몇 번 돌려봤는지 모른다.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달콤한 꿈들은 이렇게 만들어져요), Who Am I to Disagree(누가 그걸 부정하겠어요)” 유리스믹스의 애니 레녹스가 오렌지 컬러의 짧은 머리와 짙은 립스틱, 각진 양복의 모습으로 이 노래를 부른 것처럼 박진영의 모습 역시 자유롭고 전위적이었다.

춤사위가 특별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던 부분이었지만, 비닐 바지로 시작한 가수 박진영이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드러내고 싶은 감성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멋져 보였다. 80년대 신스팝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Sweet Dreams’에서 시작해 얼마 전 발표한 자신의 신곡 ‘Changed Man’까지 4곡을 메들리로 부르는 동안 나 역시 객석에 앉은 배우들처럼 입을 벌리고 무대를 지켜봤다. 

김완선이 출연했다는 뮤직비디오를 찾아본 건 그 뒤였다. 80년대 말 비밀연애를 하던 두 스타가 다시 무대 위에서 만나 춤을 추게 된다는 내용인데 두 사람의 춤은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였다. ‘내 안에 살아있는 Past Man’이란 가사처럼 내가 20대일 때 화면에서 만났던 두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같은 세대인 나에게 기운을 북돋우는 건 물론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박진영이 성시경의 유튜브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30년째 내 안에 있는 아주 무서운 게 있어. 콘서트를 한다고 했는데 표가 안 팔리는 거, 사장님으로 보일까 봐. 그게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이 되면 왠지, 나는 진짜 지금도 음악에 진심인데 뭔가 다른 게 더 중요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표가 매진이 되든 표가 안 팔리든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게 가장 중요하고 큰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표가 안 팔려서 공연을 못하는, 그러니까 현재형의 가수로 살지 못한다면 나머지 자신의 삶은 재산의 크기와 상관없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얼마만큼 현역이란 생각으로 일하고 있는지 돌아봤다. 하고 싶었던 일과 해왔던 일 모두 할 만큼 다 했다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면이 있는 것도 같다. 40대까지 할 수 있는 일과 그 이후는 다르다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머리에 담아두면서 말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주최한 ‘서울4050국제포럼 2023’ 포스터. /사진=서울시 제공

마침 지난주 비슷한 주제를 다룬 포럼에 참석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주최한 ‘서울 4050 국제포럼’인데 ‘변화와 불안의 시대, 미래를 위한 중장년의 생애 설계 전략’을 내용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중장년층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였다.

‘슈퍼 에이지 이펙트(Super Age Effect)’의 저자인 브래들리 셔먼은 한국은 곧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되는데, 이때의 중장년층은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현상을 ‘슈퍼 에이지’라고 부르며 ‘이런 시대에는 인생을 특정 나이대로 정하는 생애주기는 무의미해진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삶의 번영을 누리는 중장년층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직업 등 중장년층의 역량 강화가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미들플러스 세대와 엘더노믹스(eldernomics, 노년층이 취업, 소비, 창업 등 다양한 경제생활의 주체가 되는 현상)가 주목받는 때이니 당연한 일이다. 

셔먼의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에이지즘(ageism)’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오직 나이라는 기준만으로 불공평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나이 든 사람은 기술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부터 시작한 나이에 관한 차별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생각이다. 옷차림이나 행동에 무심코 던진 ‘올드’하다는 언급, ‘나이가 드니 기억이 깜빡’이라는 자조 섞인 말들부터 시작된 편견은 결국은 고령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까지 연결되게 된다.

저자는 책에서 “나이에 대한 편견은 각 개인에게 내면화된 가치관인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제도화된 통념이기도 하다. 에이지즘은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노인들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실업자를 양산하고 인간의 수명을 줄이는 결과는 낳는다.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적 성공의 지체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까지 확장하지 않더라도 나이 듦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부정적인 사고는 나이 든 사람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건 틀림없다.  

어느 나이에서든지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가는 일! 사회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선 나부터라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I traveld world and seven seas(난 전 세계 7대양을 여행했어)’란 ‘Sweet Dreams’의 가사처럼 지금까지 경험한 연륜을 힘으로 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