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K-패션', 메타버스를 품다···정부 지원 합세해 세계화 "가보자고"

K-패션 입은 채 증강현실 런웨이 "이게 한국 옷이라고?" 놀라기도 업계 소명 "K-패션 위상 높이자"

2023-12-04     허아은 인턴기자
송파구 롯데월드몰 1층 아트리움 모드 엣 서울 행사장 /허아은 기자

'K-패션'과 증강현실을 결합해 즐기면서 쇼핑도 할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패션 피플'에게는 트렌디한 국내 패션 브랜드를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디자이너에게는 브랜드를 알리는 홍보의 장이 펼쳐졌다.

지난 1일 여성경제신문이 방문한 서울시 송파구의 롯데월드몰에는 연말을 맞아 많은 쇼핑객이 붐비고 있었다. 그중 아트리움 1층 중심에 자리한 팝업스토어 앞에는 입장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모드 엣 서울(MODE at SEOUL)' 행사장에 들어가려는 방문객들이었다.

모드 앳 서울의 '모드'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제품을 ‘메타버스’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다. 올해 모드에는 총 10개(기준·노앙·뮌·분더캄머·비건타이거·석운 윤·오디너리피플·아이아이·클럿스튜디오·키셰리헤)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참여해 23년 가을-겨울 시즌 패션 아이템을 선보였다.

모드 엣 서울 행사장 내부. 패션 배틀 '런웨이 Z'를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 /허아은 기자

기존 패션 행사와 달리 모드 엣 서울에서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패션 체험이 가능하다. 행사장 가운데 공간에는 패션 토너먼트 배틀 '런웨이 Z'를 위한 무대가 설치돼 방문객은 참여 브랜드의 아이템을 시착한 채 증강현실 플랫폼 '제페토' 속으로 들어가 런웨이를 걷거나 패션으로 다른 이용자와 겨뤄볼 기회도 마련됐다. 제페토는 해외 이용자가 95%를 차지하는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다양한 부류의 방문객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는 행사가 열린 것을 알고 왔다는 방문객보다 우연히 들리게 됐다는 이들이 더 많았다. 50대 L씨는 모드 엣 서울 행사가 열리는 것을 알고 왔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다"라면서 "행사장이 큰데 옷을 파는 것 같길래 들어와 봤다"라고 말했다.

L씨는 평소 '옷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행사장을 메운 패션 아이템 전부가 '국산 브랜드 제품'이라는 것은 몰랐다. L씨는 이어 "젊은 친구들이 (운영)하는 브랜드인 것 같은데 대단한 것 같다. 예쁜 게 많다. 질도 좋더라. 우리나라 (패션 업계) 수준이 올라갔나"라고 덧붙였다. 이날 L씨는 가방을 구매했다.

모드 엣 서울 행사장 방문객 입장 대기 줄 /허아은 기자

패션 산업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은 모드 엣 서울 행사 개최를 반겼다. 방문객 중 골지 원단으로 상하의를 맞추고 귀에는 여러 개의 피어싱을 한 20대 방문객 J씨는 누가 봐도 '패션 피플'이었다. J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브랜드의 아이템을 한 자리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모드 엣 서울을 찾았다.

J씨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 층에서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 관한 선호도가 높다. 그는 그 이유로 '합리적인 가격'과 '신선하고 흔하지 않은 디자인'을 꼽았다. J씨는 "해외 유명 브랜드나 명품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지고 살 사람은 다 사서' 새로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나라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은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증강현실 체험 공간 역시 호평을 받았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방문한 20대 C씨는 "저는 몰랐는데 친구가 제페토를 알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라면서 "상품을 시착한 채로 (증강현실 속에)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외국인도 많이 쓸 것 같아서 홍보가 잘될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국내 패션 업계, 규모에 비해  낮은 위상
명품 vs SPA로 반분···신진·인디 살길은

한국 패션 시장의 규모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50조원에 달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년 47조910억원에서 8.2%나 성장한 수치다.

하지만 한국 토종기업이 이끈 성장세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같은 보고서의 패션기업 분석 결과 루이뷔통코리아·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샤넬코리아·나이키코리아 등 글로벌 명품기업은 크게 성장하며 삼성물산(패션) 또는 LF 등 한국 토종 패션기업을 압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국내 패션계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그리 크지 못하다. K-POP, K-드라마 등 문화 산업의 수출이 활발해지며 한국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K-패션에 대한 관심은 아직 미비하다는 평가다.

한 전문가는 국내 패션 산업계의 '위탁 판매' 방식이 브랜드의 성장을 막는 것으로 진단했다. 이동현 에프씨엘코리아 대표는 2020년 한 패션 전문지에 '왜 우리나라 패션위크는 세계적인 행사가 되지 못할까?'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한국 패션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국내 브랜드가 만든 옷은 '위탁 판매' 방식으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다. 이는 유통업자가 브랜드에서 재고를 '빌려'와 판매하는 방식으로 옷이 예상보다 덜 팔릴 경우 언제라도 브랜드에 재고를 반품할 수 있다. 이 경우 유통업자의 재고 부담이 적어진다.

반면 해외는 유통 방식으로 '직사입(홀세일)'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유통업자(바이어)는 판매가 잘 될 제품을 직접 선택해서 '구매'한 다음 자신의 채널에서 판매한다. 재고가 발생할 경우 부담은 오롯이 유통업자가 지게 되는 방식이다.

위탁 판매의 경우 유통업자는 재고 부담에서 벗어나고 철저한 분석 없이 '매출을 많이 낼 수 있는'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힘을 쏟게 된다. 따라서 유통업자는 매출이 높고 안정적인 대기업의 브랜드에만 관심을 둔다. 이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고 자금력이 부족한 신생 브랜드는 고려 범위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것이다.

바잉(buying)을 하지 않으니 국내의 바이어(buyer) 즉 유통업자는 패션쇼나 패션박람회 등의 행사에도 참석할 일이 없다. 따라서 인디·신진 디자이너가 자신의 아이템을 행사에서 선보이고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해도 매출과 인지도 상승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이겨내고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이뤄낸 브랜드 측 역시 유통구조의 차이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모드 엣 서울 행사장에서 만난 신혜영 분더캄머 대표는 "해외의 홀세일 방식에 맞추기 위해서는 1년 뒤에 판매될 것을 미리 기획하는, 즉 '시즌을 당겨'야 하는 문제점에 부닥친다"면서 "브랜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돈도 없었는데 올해와 내년 시즌을 함께 준비하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신 대표는 브랜드 론칭 초기를 회상하며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분더캄머는 중소기업청이 주최하는 콘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신 대표가 사무실을 지원받으면서 시작됐다. 작업실과 홍보 대행사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 주최 디자인 창작 스튜디오 덕분이다. 분더캄머는 당시 서울시 지원 홍보사업으로 큰 효과를 거뒀다.

이에 신 대표는 "물론 혼자 브랜딩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요즘 친구들은 아는 게 많아서 겁도 많고 (여러모로) 망설이고 있는 것 같던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많이 있으니 꼼꼼히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나서봤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미'를 모티프로 한 의상으로 전 세계적 인정을 받는 이상봉 디자이너 역시 국내 브랜드 세계화를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열린 '2023 콘텐츠 유니버스 코리아'에서 이 디자이너는 "지금의 패션계는 거대 자본을 앞세운 명품 브랜드와 대량생산이 가능한 SPA브랜드로 양분된다”며 “글로벌 패션계가 빠르게 기업화가 되고 있는 만큼 기업 혹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