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 더봄] 정의의 여신은 천륜을 거스르지 않았다!

[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음유시인이 등장하는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오빠의 장례를 치르다 맞이한 죽음과 비극 <안티고네> 얼마나 많은 희생을 겪어야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까

2023-12-03     한형철 오페라 해설가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대중가수 최초로 밥 딜런(Bob Dylan)이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노래 가사의 문학성을 인정한 것이지요. 그를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이라 부르기도 하니까요. 우리나라의 김현식, 정태춘∙박은옥과 같이 읊조리듯 노래하거나 미성으로 담담하게 노래하는 가수들을 그렇게 일컫기도 합니다. 그들의 ‘시처럼, 음악 같은’ 노래에 위안을 받기도 하지요.

베르디가 1853년에 초연한 <일 트로바토레>는 음유시인(트로바토레)이 등장하는 오페라입니다. 옛날 스페인의 백작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집시 노파가 쳐다본 후 작은아들이 병이 나자 백작은 집시 때문이라며 그녀를 불태워 죽입니다. 집시의 딸은 어미의 죽음을 보고 울부짖다가 사라졌는데 잿더미 속에서 갓난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백작의 아들도 없어졌습니다. 

귀족 처녀 레오노라는 예전에 무술 시합에서 우승한 기사 만리코에게 시상자로서 월계관을 씌워주었답니다. 그녀는 첫눈에 반한 그를 마음에 새겼지요. 보름달이 뜬 고즈넉한 어느 밤, 아름다운 음유시인의 노래가 들려오는데 발코니로 가보니 만리코가 서 있습니다. 그녀는 그 모습에 황홀한 희열을 느끼지요. 

그때 레오노라를 연모하는 루나 백작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나타나는데, 레오노라는 어둠 속에서 백작을 만리코라고 착각하여 뛰어가 그를 포옹합니다. 하지만 만리코가 나타나자 당황한 그녀는 백작 대신 그에게 안기지요. 이에 질투심이 불타오른 백작은 그자가 정적인 만리코임을 알고는 결투를 벌입니다.  

산속에 집시들의 역동적인 삶을 힘차게 노래하는 ‘대장간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만리코의 엄마 아주체나는 그녀의 어미가 백작에게 화형당한 충격으로 타오르는 불꽃에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그녀가 아들에게 한 맺힌 사연을 풀어놓습니다. 화형으로 죽어가는 어머니가 “복수해달라”며 절규했고, 그녀는 실성하여 백작의 아들을 불 속으로 집어 던진다는 것이 실수로 자기 아들을 던졌답니다. 

한편 만리코가 결투에서 죽었다고 믿은 레오노라는 상심하여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그 소식을 들은 만리코와 백작은 사랑하는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수녀원으로 달려갑니다. 수녀원에 백작이 부하들을 이끌고 들이닥치는 순간, 때맞춰 만리코가 그들을 습격하여 레오노라를 구하지요. 

레오노라를 빼앗기고 만리코에 대한 총공세를 준비하는 백작에게 아주체나가 잡혀 옵니다. 백작은 동생을 죽인 집시와 그녀의 아들이자 연적인 만리코를 모두 제거할 기회를 잡았네요. 만리코를 유인할 겸 그녀를 화형에 처하려 합니다.

만리코는 아주체나의 화형 소식을 듣자 격정의 아리아 ‘타오르는 저 불꽃을 보라’를 부르고 어미를 구하려 적진으로 향합니다. 이 아리아는 관객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세포를 격동케 하는 리듬에 고음을 짜릿하게 열창하는 곡입니다. 


레오노라는 백작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만리코를 살려 달라고 하지만, 그녀의 약속이 거짓임을 알게 된 백작은 분노에 휩싸여 만리코부터 처형합니다. 그의 마지막 비명 소리를 들은 아주체나는 백작에게 “당신은 동생을 죽인 것”이라고 소리치고, "어머니, 이제야 복수했어요"라며 쓰러집니다. 지독한 비극은 이렇게 모두를 덮쳐 버렸습니다.   

<안티고네>는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연결된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대표 희곡입니다.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이 충돌할 때, 어느 것을 따르고 저항할 것인가를 심오하게 그려냈지요. 그 충돌과 저항의 주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해 보입니다. 

결투하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과 이를 말리는 안티고네(1800경).  조반니 실바니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처참한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관계하여 4자녀를 낳았습니다. 두 아들이 왕권을 놓고 다투다 모두 전사하여 그들의 외삼촌 크레온이 왕이 됩니다. 왕은 조카 중 테베를 지킨 오이디푸스의 장남의 장례는 성대히 치르되, 외부의 힘을 빌려 조국을 공격한 차남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판에 방치한 채 새 떼의 먹이가 되게 하지요.

국왕의 엄명에 모두가 몸을 사리지만, 안티고네는 어명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치러줍니다. 자신을 문책하는 왕에게 안티고네는 “제우스나 정의의 여신(디케)은 법을 그리 행하지 않았다”며 저항하지요. 왕이 승리의 여신(니케)에 취해 정의를 외면하고 있으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천륜이라고 주장합니다.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하다 체포되는 안티고네(1825),  세바스티앙 노블랑. 정당한 일이라고 스스로 믿는 중앙의 안티고네에게 빛을 집중하여 강조한 그림이다.

분노한 왕이 안티고네를 암굴에 가둬 굶겨 죽이라 명하자, 그녀의 약혼자인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 왕자도 함께 죽을 작정으로 그녀가 갇힌 곳에 들어갑니다. 아들을 염려한 왕이 암굴로 달려가니 스스로 목을 매단 안티고네를 끌어안고 울던 왕자는 격분하여 아버지를 칼로 공격하다가 실패하자 자살하지요. 이 사실을 안 왕비도 목숨을 끊으며 참담한 비극을 완성합니다.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2달,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2년···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겪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며,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며 보듬게 될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지’’라는 밥 딜런의 노래 시 'Blowin’ in the wind'가 우리의 마음에 젖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