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기획] 시어머니의 지키지 못한 약속 ‘반지는 네게 주마’

주얼리 공모전 순금상 사연 시어머니가 24시간 끼던 반지 며느리에게 반지 준다던 약속 끝내 지키지 못하고 돌아가셔

2023-12-02     최영은 기자

여성경제신문은 신년기획으로 주얼리 공모전을 기획했습니다. 시즌1, 시즌2에 이어 시즌3인 ‘그 여름날 우리’를 진행했습니다. ‘그 여름날 우리’에서는 여름의 추억과 함께한 주얼리 사연을 받았습니다. 주얼리 공모전은 찬란했던 우리 인생의 한순간과 함께한 주얼리를 꺼내 추억을 소환하면서 어려운 시대 용기와 희망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공모전에 출품한 김민정 님의 작품입니다.

젊은시절 시어머니 왼손에 끼워진 쌍가락지 /김민정

“아가, 시집올 때 애기한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 이 반지 팔아서 폐물 장만해라.”

시어머니는 은으로 만든 두툼한 쌍가락지, 그리고 커다란 루비가 박힌 알반지를 24시간 끼고 사셨다. 목걸이, 팔찌, 귀걸이 기타 주얼리를 제법 가지고 계셨지만, 나에겐 딱 꼬집어 ‘반지를 주마’라고 하셨다.

1994년 10월 남편과 결혼하면서 18k 반지 하나씩 나눠 가진 게 결혼 예물의 전부였다. 결혼 당시 어머님은 아버님과의 불화로 부재중이었고, 몇 년 후 우리는 어머님과 합가했다.

18k 결혼반지 달랑 2개, 없는 살림에는 그것도 돈이 되어야 해서 IMF 지나면서 금은방으로 들고 가 처분하여 1998년에 태어난 아들아이 분유를 샀다. IMF 때문에 삼시세끼 끼니 걱정을 하며 버티던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어머님 빨강 루비 반지보다는 쌍가락지가 더 탐이 났다. 아무것도 보태거나 빠지지 않고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저만의 값어치를 드러내는 가락지의 믿음직스러움에 더 마음이 갔다.

아들 셋을 두셨는데, 결혼 당시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 며느리가 비단 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크게 욕심낼 수 없었다. 바로 위 형님 또한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이므로 루비 반지는 형님에게, 나에겐 가락지를 주셨으면 했다. 탐이 났다.

시어머니 왼손에 끼워진 루비 반지와 쌍가락지 /김민정

2019년 1월 나는 남편과 함께 부산 범일동 금 거래소에 도착했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어머님이 소장하셨던 폐물 중 일부를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처분하고 현금화하는 어머님 폐물 중 루비 반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지는 네게 주마’ 하신 후 수년이 흘렀고, 무엇보다 2019년 1월 당시 어머님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당신 주변 정리를 조금씩 직접 하시던 때였는데, 폐물 정리도 그중 일부였다. 소소한 폐물들을 정리하여 현금 2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어머니께 드렸었는데 그날의 밀고 당김도 대단하기는 하였다.

폐물 판돈을 내게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끝까지 거절하였다. 좋아라며 덥석 받기에는 어머님 건강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그리고 나는 어머니 폐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묵직한 가락지 한 쌍이 좋아 보였을 뿐이다. 나에게도 저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한 믿음직스러운 반지 하나 있었으면 싶었다. 그뿐이었다.

“내가 분명 여기 크림 통 안에 넣어 두었거든. 누가 훔쳐 갔다. 내가 없을 때 누가 가져갔다.”

2021년 10월 어머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병원을 너무나 싫어하셔서 마지막 일 년은 집에서 큰시숙과 비상 대기를 하며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고, 치매증세를 보이셨다. 팔찌 하나를 크림 통 안에 잘 넣어두었는데 누군가 가져갔다면서, 막내며느리인 내가 애꿎은 범인으로 지목되곤 했다.

2년 전 폐물 팔아 현금으로 드렸던 그때 그 돈도 은행 통장으로 바로 입금해 드리지 않았더니 돈이 없어졌다면서 큰아들만 오면 귓속말로 일러주시는 통에 자칫 오해가 싹을 키울 뻔도 하였다. 정작 반지는 받지도 못하고 몇 년에 걸쳐 도둑누명만 뒤집어쓸 뻔하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한동안은 나도 일상을 회복하기 힘들었다. 폐물 도둑 누명을 쓰고, 눈 흘김을 당하고, 다 자란 손자 손녀 붙잡고 막내며느리인 내 욕을 하시던 어머니가 서운하고 싫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어머님 기운 좋으실 때, 어머니 손가락 위 빨강 루비 반지만큼 반짝반짝 빛나실 때 어머니 기운 좋음을 우리가 등골 휘게 만들었다. 먹고 살겠다고 어머님에게 살림살이 맡기고 어린아이 둘 맡기고 새벽밥 얻어먹고 늦은 밤까지 일 다니면서 어머니 기운 다 갉아먹은 것이다. 자식이라는 미명 하에···.

빨강 루비 반지보다 더 붉고 화려하고 기운 넘치던 어머님이셨는데, 못난 자식들 덕분에 은빛 무광 쌍가락지처럼 묵묵히 살기만 하다 돌아가시게 된 것 같아 점차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아팠다. 결국 어머니에게 반지는 물려받지 못했지만, 반지보다 더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따뜻한 정은 내 안 가득 쌓였다.


김민정 님은 “주얼리 공모전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온 가족 도란도란 모여 앉아 어머니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남편은 제게 어머니 쌍가락지를 이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지를 몰랐다면서 당장 선물로 준비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미 지났지만 29주년 결혼기념일 선물로 어머니께서 끼셨던 다른 반지를 선물 주겠다고 합니다. 주얼리 공모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소감을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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