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명쾌·진지한 장애 예술가의 작품, 만나 본 적 있나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장애 예술가들의 전시와 공연을 통해 다른 시각이 주는 더 큰 포용을 느끼다
이 주 전쯤 정은혜 작가의 전시 '해의 시선' 개막식에 참석했다. 혜화동 로터리 근처 정감 있는 한옥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였는데, 그간 선보였던 주요 작품들을 ‘은혜씨가 사랑하는 작업들’이란 이름으로 모아 놓았다.
군산 골목의 풍경부터 엄마와 할머니, 친한 이모들 등 작가를 아껴주는 가족과 지인의 얼굴, 가장 친한 친구인 반려견 지로, 자기 모습을 그린 자화상까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작품을 시기별로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발달장애 작가인 그녀는 작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의 언니 영희 역으로 출연한 이래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전시, 방송, 출판과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물의 마음을 드러내는 듯한 표정과 공간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색감 등 눈길을 끄는 그녀의 작품과는 별개로 또박또박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브라운관 속 모습 역시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어머니인 장차현실 씨는 갤러리 마당에 모인 손님들에게 "은혜가 그림을 시작한 게 23살 때였으니 이제 10년이 되었다"며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자신 역시 20년 넘게 만화를 그리고 있는 창작자이지만 자기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어느 날 딸이 잡지의 광고 사진을 따라 그린 스케치 한 점을 보게 되었고, 단색의 스케치였지만 명쾌한 선들이 눈에 들어왔고 무엇보다 딸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복해하기에 딸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집 근처 문호리 마켓에 주말마다 나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것도 그 이후 일이다. ‘니 얼굴’이란 이름을 달고 지금까지 4000여명의 얼굴을 그려온 그녀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그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올해 초 재단에서 운영하는 KF갤러리에서 스웨덴 글라다후디크 극단이 ‘아름다움의 정의’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워크숍을 촬영한 '아이콘-존재의 권리에 대한 사진전'이 열렸다. 다운증후군 모델들을 촬영한 사진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정은혜 작가와 그녀의 아버지 서동일 씨(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도 연출했다)가 방문했는데 이때 영상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가 기억난다.
"저는 엄마를 닮았으니까 그림 그리는 것도 유전자이고, 엄마처럼 저도 늙어서 오래 계속 그림을 그릴 거예요"라는 작가의 말에 아버지는 "지금까지 4000여명의 사람을 그렸는데 한 번도 힘들어하거나 싫다고 한 적이 없어요. 자기는 작가니까 당연히 그림을 그려야 된다고 생각하고. 자신한테 주어진 일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모습,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지난 6월 KF갤러리에서 개최했던 캐나다 장애인 예술 단체인 국립장애인문화예술센터와 협력한 '모두의 어떤 차이' 전시에서 만난 김현우 작가 역시 하루 24시간 그림을 그리며(생각하며) 생활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픽셀 김(Pixel Kim)’이라 부르는 작가는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픽셀’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그려내고 있다.
“저는 픽셀을 자주 그리고, 꿈에 대한 주제로 자주 그렸습니다. 세상도 그리고, 이름도 넣고, 가족 부서 이름도 넣고, 번호도 넣고, 색도 칠했습니다. 사람들이 픽셀 같다고 했는데 그래서 픽셀 김이라고 지었습니다. 픽셀은 전부 다 기억입니다!”
지난달 또 한 팀의 장애 예술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국내 최초 장애 예술인 표준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이 개관하면서(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공연장이다) 개관프로그램인 연극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를 관람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배우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호주 예술단체 백투백시어터의 초청작인데 1시간 동안 펼쳐진 무대 위에는 배우 세 명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그것이 달라지는 모습에 대해 도발적으로 던지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소위 다르다는 그 지점을, AI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모두가 느끼게 될 것이라는 묵직한 주장을 전달하면서 말이다.
느리고 불분명한 대사와 익숙하지 않은 몸짓이지만 한 장면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연기하는 그들의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올 한 해 여러 장애 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직관적이고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은 솔직하고 과감했다. 자신만의 질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가고 누구보다 집중하며 표현하고 소통한다. 다르다는 것이, 표현하는 데에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표현하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가진 경계를 확장시키고 상처를 치유로 만드는 순간을 나누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