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융·복합형 취미, 비치코밍을 소개합니다
[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ESG의 개인적 실천도량, 비치코밍의 세계 취미가 업이 되고 업이 취미가 되는 사례
“심 봤다~~”
근자에 들어 거의 연일, 가격을 메기기도 힘든 천종삼산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 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심마니라면 평생에 걸쳐 이런 오래 묵은 산삼을 하나라도 캐는 게 천지신명께 감읍할 대단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왠지 심드렁한 남의 일에 지나지 않으니 이게 웬 조화일까? 그 이유는, 필자는 거의 매주 비치코밍을 통해 “심봤다”를 연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비치코밍은 단어 그대로 해변을 산책하면서 무엇을 줍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경한 용어이자, 취미로서는 아직 낯선 단어인 비치코밍은 비치(Beach)에서 코밍(Combing)하듯 무언가를 줍는 행위를 일컫는데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뭇 고상한(?) 취미생활로 자리매김해 왔다. 사실 인류는 비치코밍(채집행위)으로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비치코밍이 내게 연일 '심봤다'를 외치게 하는 사연은 이렇다.
해녀의 삶을 인생3막(은퇴후의 삶) 내 삶의 멘토로 삼고 나무젓가락으로 해녀 그림을 그려 온 나는 해변에 나가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해변에 나간 내게 나날이 변해가는, 아니 망가져 가는 바다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현실은 봉사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나의 가치관과 맺어져 환경에 대한 관심과 해양쓰레기 수거봉사, 그리고 주워 온 것들을 통한 업사이클 작품 창작이라는 분야에 눈을 돌리게 했다.
문만 나서면 바다인 제주에서 비치코밍은 그동안 벼라별 취미를 다 가져 봤던 내게 그야말로 취미생활의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비치코밍을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융합형 취미생활의 끝판 왕’이다.
이제까지의 비치코밍은 외국의 경우, 사색과 힐링의 철학적 경험을 가능케 하고 비치코밍을 통해 진귀한 아이템을 수집하는 취미로 자리잡아 왔으며 우리의 경우엔 근자에 이르러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해양쓰레기 줍기 캠페인이나 예술가들의 업사이클 작품 습득의 행위에 그쳐 있었다.
필자의 경우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비치코밍을 정착시켜 봤다. 기본 방향은 비치코밍을 통한 ESG의 실천이 어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가 즐기면서 각자 나름의 '업'으로 승화할 수 있는 복합적이면서 경제적인 취미생활이 가능한가의 실험적 무대로서 말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비치코밍은 걷고(운동), 보고(관광), 느끼고(생각·아이디어), 봉사하고(해양쓰레기 수거), 얻고(작품 아이템 습득), 만들고(작품활동)를 가능케 했으며 거기에다가 '벌고(경험 공유, 강의 및 집필)'를 더하게 했으니 이보다 더 융합적이고 경제적인 취미활동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융·복합형 취미이다.
바닷가를 거닐며 수많은 세월 마모된 보석 같은 유리조각이나 부유목, 그리고 해외에서 먼 길을 여행해 왔을 법한 희한한 물건들을 주으며 “심봤다”를 외치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그 순간의 환희에 휩싸이게 되니 비치코밍은 거기에 더해 '추억'이라는 보물을 하나 더 얹어 주는 취미활동이다.
취미 활동으로서의 비치코밍 예찬론을 펼치면 많은 이들이 항의조로 묻는다. “선생님이야 바닷가에 사시니 그게 일상의 취미로 가능하겠지만 저희처럼 내륙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연목구어 아닙니까?”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열리고 있는 ESG특별기획전에 내 비치코밍을 통한 업사이클링 작품 설명 및 'ESG와 예술'에 대한 특별강연을 겸해 경북 봉화에 다녀 왔다. 거기서 소개한 사례로 장소의 특이성에 대한 항의(?)를 잠재우고자 한다.
“여러분, 플로깅이란 용어 들어 보셨죠? 비치코밍에서 파급된 취미활동입니다. 비치코밍은 장소를 규정했을 뿐 행위와 의의까지 제한하지는 않습니다. 산에서 행하면 마운틴코밍이고, 계곡에서 행하면 벨리코밍입니다. 리버코밍, 야드코밍, 휠드코밍, 심지어는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사회가, 아니 미래의 핵심가치가 '융·복합'이라면 취미생활에서도 융·복합화는 어떤가? 경제적인 측면이나 나만의 NFT(대체불가능한 재화) 세계를 위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