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팩] 응급실 뺑뺑이는 119 통합 때문···10명 중 8명 경증 북새통
[깐깐한 팩트 탐구] '의사 부족'이 아닌 경증 환자 범람이 원인 1339 폐지하며 중증 환자 우선 원칙 버려 일본, 중앙 센터가 3단계 분류한 뒤 이송
한국의 응급실은 항상 포화 상태다. 왜냐하면 중증과 경증 분류 체계를 갖추지 못해 응급실로 실려 오는 경증 환자가 절반이 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응급실을 제 발로 찾아온 사람까지 포함하면 10명 중 8명이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채우고 있다.
지금껏 양적 완화식의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해 온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의사협회 반발에 부닥쳐 숨 고르기에 들어간 가운데, 의사 수 부족으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국립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대 정원 확대 실무 부서인 교육부가 앞장서 전국 40개 의대를 둔 대학을 대상으로 입학 정원 확대에 관한 수요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당국은 이들 중 3분의 2 이상이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발표를 내놓을 전망이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이 [깐깐한 팩트 탐구] 코너를 통해 응급실 뺑뺑이 원인을 점검한 결과 응급환자 분류 및 이송을 담당하는 1339 전화를 갑자기 폐지한 것이 의료난의 주원인으로 파악됐다.
응급의료정보센터의 1339 전화는 구급대원이나 환자가 전화를 걸면 공중보건의사가 환자를 분류한 뒤 적절한 병원으로 후송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2012년 말 김황식 전 국무총리 주재 회의에서 119에 통합됐다. 당시 소방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1339와 119가 통합된 1년간 구급차 출동 연계가 180%로 급증하면서 시작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그러나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2022년 지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525만171명 가운데 절반 수준인 249만9728명(47.6%)이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도구(KTAS) 상 가장 낮은 4, 5단계의 환자였다. 또 여기에 더해 제 발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까지 포함한 응급의학회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응급실을 채운 경증 환자 비율은 86%로 나타났다.
선진국 다 있는 '응급 트리아지' 원칙
국내선 사라진 지 어느덧 10년 넘어
1339 폐지 당시 소방청은 응급상담 및 출동이 늘어난 반면 비응급 안내가 줄었다며 대응 능력 강화로 해석했다. 하지만 일선 병원과 응급의료 정보를 주고받으며 중증과 경증을 분류하는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불필요한 경우에도 구급차가 무조건 출동하는 구조가 됐다. 물론 통합 이전에도 자원 중복, 협조 불능의 문제 등으로 말은 많았지만 어느 한쪽으로 기능을 완전히 몰아주기보다는 최선의 서비스를 위해 두 기관이 어떻게 협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주였다.
반면 국내에선 사라졌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엔 응급환자 분류 기준 및 이송 체계가 존재한다. 같은 119 번호를 쓰는 일본도 '응급환자 뺑뺑이' 방지책을 50여 년째 가동 중이다. 우선 응급환자가 발생해 119(의료는 7119)에 전화하면 운전사 1명, 구급 구명사 1명을 포함한 3인 1조의 구급차가 10분 이내 환자에게 도착한다. 이후 환자 상태를 파악한 초기 단계부터 중앙센터가 환자 상태를 분류해 중증 응급환자를 우선적으로 실어 나르도록 하는 응급 트리아지(Triage)가 갖춰져 있다.
응급환자는 응급 트리아지에 따라 1차(경증의 환자), 2차(입원 진료가 필요한 환자), 3차(중증 응급 환자)로 분류돼 1차는 당번 의원급 응급실로, 2차는 입원실이 있는 병원급 의료기관, 3차는 구명 구급센터로 배정해 후송된다. 특히 3차 구명 구급센터 가운데 대학병원의 경우는 환자가 임의로 갈 수 없으며 반드시 1차 또는 2차 응급의료기관에서 진료한 의사의 소개서(진료의뢰서)가 있어야만 갈 수 있다.
또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주취자(술에 만취한 사람)의 경우 의식이 없는 경우만 응급실에서 수용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동시에 의료기관이 응급의료 체계를 운영하는 비용도 각 지자체에서 의료기관에 일부 지원을 하고 있다.
경증 구분 없이 물건 배송하듯 놓고가는
119는 운전하는 구급대원이 콘트롤타워
의료 현장에서도 1339 전화 폐지가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부추겼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북대 의료원에서 전문의를 지낸 50대 중반의 의사 김상호 씨(남·가명)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구급차 출동 연계가 급증하며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밀려들었다"며 "이 결과 불필요한 의료비와 함께 소방청 측의 차량 및 인력에 대한 예산만 늘어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소방청이 환자 신고와 후송을 전적으로 도맡게 되면서 경증과 중증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대학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물건 배송하듯 놓고 가니 대학병원에는 늘 환자가 넘쳐나면서 중환자를 받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물론 10년이 지난 한국에도 환자의 상태를 분류하는 절차가 있긴 있다. 운전과 응급처치를 담당한 구급대원의 현장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센터 차원의 응급 트리아지 시스템이 없어 본인이 전국의 병상과 의료진 상황을 파악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김씨는 "1339는 신고자 대부분이 경증 환자라는 사실을 파악해 적절하게 대응해 왔으나 119로 통합되면서 모든 안전장치가 사라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