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어른을 위한 인생 학교···액티브 시니어 인적자산 활용 묘안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대졸까지 들인 비용 얼마나 될까 은퇴자들의 인적 자산 매우 크다 경로당에 가지 않는 액티브 시니어 시민들이 주도하는 어른 학교 필요

2023-11-02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어느 연구소에 의하면 아이를 낳아 대학을 마칠 때까지 기르는데 약 3억원의 경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 글을 보니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잘 낳지 않으려는 심정을 알 것 같다. 일견 그렇게 돈이 많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학비 외에 식비, 병원비, 옷값, 교통비, 용돈 등 각종 잡비를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추 한 알이 익기까지 태풍, 천둥, 벼락이 몇 개가 지나갈 것이며 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이 필요하다는 시가 있다. 하물며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야 어떠하랴. 아기가 태어나서 클 때까지 무수히 많은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땀방울이 들어갔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후 직장을 퇴직할 때까지 들어간 경비도 적지 않다. 결국 은퇴할 때의 시니어가 되면 수많은 비용과 노력이 그에게 투자된 셈이다. 대신 그에게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인적자산이 있다. 그런데 이런 자산이 은퇴와 동시에 그냥 사장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해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재교육을 통해 다시 한번 비상할 기회가 주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은퇴한 사람은 이렇게 삶을 살며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주위에 나누어주고 싶어 한다. 또한 이 나이쯤 되면 가장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주부는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동안 받고 싶었던 교육이 얼마나 많았던가. 개인의 노력에 따라 재교육을 통해 다시 한번 비상할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사회에 어른들을 위한 학교의 필요성을 생각한 것이 바로 여기에서 착안했다. 많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쌓았던 지식과 지혜를 전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한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그동안 들였던 노력과 비용을 계량화한다면 얼마나 크겠는가. 인생학교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나누고 전하는 커뮤니티다.​

위례인생학교 회원 워크샵 /백만기

영국에는 시니어들이 서로 지식을 나누는 인생학교 U3A (University of the 3rd age)가 전국에 1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내가 아는 것은 가르치고 모르는 것은 남들에게 배운다. 강사료나 수강료는 없다. 강사가 모두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 인생학교와 같은 커뮤니티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영국처럼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퇴직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점점 늘어가는데 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경로당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곳에는 이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베이비붐 세대는 오로지 자식들의 교육에만 매진했던 이전 세대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학력도 높고 몸도 건강하다. 의욕도 많다. 이들에게 경로당에 가라고 하면 코웃음부터 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에는 우리나라 사람 중 20%가 65세 이상 고령자일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데 노인과 관련된 여러 지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노인 자살률이 제일 높다. 그 배경에는 마땅히 어울릴 곳이 없다는 외로움이 가장 크다. 인생학교와 같은 커뮤니티가 세워져 이들이 갈 곳을 마련해준다면 노인 자살률도 훨씬 줄어들 거라고 예상된다.

경기인생캠퍼스 교육 프로그램 /경기복지재단

최근 경기도에서 베이비부머기회과를 신설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경기도청 구청사에 경기인생캠퍼스를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50·60세대들이 모여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한편 가장의 역할과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배우고자 하는 욕구도 많다. 그러니까 이런 욕구를 매칭만 시켜주면 된다.

경기인생캠퍼스는 지자체에서 공간과 장비를 지원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직접 운영한다. 이들에게는 강사료가 지급되지 않으며 수강료도 없다. 강사나 운영진이 모두 자원봉사자다. 지자체에서는 인력과 예산을 줄일 수 있고 시민들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정책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산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면 적은 예산으로도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인생학교가 움트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