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태원 핼러윈 D-1 안전 대비···현장은 '합격' 국회는 '실격'

실시간 도시 데이터로 본 핼러윈 주말 번화가 현장 안전 대책 마련은 개선됐지만 '법안 공백'

2023-10-30     김현우 기자
27일 오후 7시경. 이태원역 1번 출구 맞은 편에 소방차들이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서 있다. /김현우 기자

29일 오후 7시 23분 녹사평역 3번 출구로 나와 이태원역 방면으로 걸어가는 길. 두 역 사이의 거리는 800m가량 떨어져 있지만 이미 경찰 병력과 펜스, 수 대의 소방차가 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1년여 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장소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큰길엔 방어벽을 쳐서 좁은 골목에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임시 보행 도로를 만들었다.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 수백 명이 5개 조로 나뉘어 상시 순찰도 하고 있었다. 

29일 여성경제신문이 찾은 이태원 일대의 안전 대책은 '보여주기식 관점'으로 보면 일단 합격으로 보인다. 이날 이태원역을 찾은 시민 이유솔 씨(여·30)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사건 전과 후 현장 안전 대책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면서 "1년 전에 이랬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아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민 송재헌 씨(남·27)는 "뒤늦게 안전 대책을 마련해봤자 이미 사람은 떠났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대처인 느낌도 든다"며 "실질적인 정책적 대책 마련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29일 오후 7시경. 한 경찰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차량 도로를 순찰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인파는 지난 '10·29 이태원 참사' 사고 이후 현저히 줄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를 보면 지난 28일 오후 8~10시 기준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 인파는 1만2000~1만4000명 수준을 보였다. 실시간 도시 데이터는 통신사 기지국의 신호를 기반으로 지역별 인구 통계를 분석하고 혼잡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구역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으로 한정하면 인파 규모는 7500~8000명 안팎에 그친다.

참사가 발생했던 지난해 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 특구에는 오후 6시 기준 밀집 인파가 3만명 이상이었고, 오후 10시 전후 최대 5만7000여명까지 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6호선 이태원역에서 승하차(환승 없음)한 이용객 수는 13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29일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의용소방대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반면 지난 28일 같은 시간대 홍대 관광특구 일대에는 인파가 9만~9만2000명까지 몰렸다. 마포구가 지난해 10월 말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승하차 인원을 바탕으로 이번 핼러윈 기간 4만~7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파다. 

오후 10시를 넘어서도 7만8000~8만명이 홍대 인근에 머물렀고, 29일 새벽 1시를 넘어서야 평소 홍대 유동 인구를 고려했을 때 ‘보통’ 수준인 5만명 이하로 줄었다. 강남역은 오후 3시 전후로 하루 중 가장 많은 5만8000~6만명 수준의 사람들이 몰렸다가 8시 이후에는 5만명 안팎으로 평소 수준까지 줄었다. 건대입구역은 오후 8시 3만~3만2000명, 오후 10시 2만6000~2만8000명으로 평소보다 혼잡한 수준까지 인구가 밀집됐다.

핼러윈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 28일 오후 홍대 관광특구(위)와 이태원 관광특구(아래) 인파 추이.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

정작 법 개정은 '뒷전'···40여 건 '계류 중'
여야 고성만 오고 간 채 끝나는 21대 국회

매년 핼러윈데이가 다가올 때마다 서울시 주요 번화가는 핼러윈을 즐기려는 젊은 인파로 북적인다. 1년 전인 2022년 10월 29일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고 긴 시간 핼러윈을 즐기지 못한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159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치권에선 여야가 서로 책임소재를 다투며 날이 섰고 일부 유가족과 시민은 관련 부처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사고 1년이 지난 지금 사회적 재난의 반복을 막기 위해 국회에선 어떤 방지 시스템을 마련했을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선 2023년 4월 행정안전위원장 명의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법률개정안(재난안전법)'을 제안했다. 이 개정안은 이태원 참사 이후 여야 의원 17명이 합작하여 제안한 것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핵심 원칙과 의무가 재난 발생 시 피해 최소화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회복까지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난지역에 대한 국고보조 등의 지원 대상에 '소상공인'을 포함하도록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7일 당시 여야 원내대표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주재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관련 논의에 나섰으나 서로 이견만 확인한 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김진태 국회의장(중앙)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회동 전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개정안은 행안부 장관이나 지방 자치단체장이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특정 지역의 통신 기지국 접속 정보를 전기 통신 사업자 등으로부터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재난 안전 데이터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며 재난 안전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여 재난 예측 및 대응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4월 27일 본회의에서 승인됐다.

그러나 참사 예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수의 법안은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은 환자가 여러 명이 발생한 경우에 신속한 응급 의료 대응을 위해 재난 의료 지원반을 중앙 응급 의료 센터에 설치하고 이를 규정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지만, 법사위에선 여야 합의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하여 사고를 더 심각하게 한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불법 증축에 대한 이행 강제금을 최대 4배로 올리기 위한 건축 조례 개정안을 제안했지만, 주민의 불편을 이유로 반대 의사가 있어 진행이 막힌 상태다.

참사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과 야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을 제정하여 사건의 원인,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을 조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특별법은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되었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참사의 원인,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을 밝히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위가 진상 규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조사위는 필요하면 특별 검사의 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지난 8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의 CCTV를 국가 재난 관리 정보통신 체계와 연계하는 내용을 담은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 의원은 28일 자신의 SNS에서 "이태원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신속재난대응 CCTV 통합법' 등 재발을 막기 위한 관련법안은 상임위에 계류된 채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며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야당 탓만 해선 안 된다. 민생법안 처리는 집권 여당의 몫"이라며 "거대 야당이 무관심하다면 그것을 설득할 책임도 집권 여당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이후 국회에 발의된 안전 대책 법안은 총 40여 건. 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건 다중운집 사고 우려 상황에서 정부가 기지국 접속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유일하다. 

한편 21대 국회는 내년 5월 종료된다. 국회 의안입법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지난 7월 5일 기준 2만3000여 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단 7000여 건만 처리됐고 1만5000여 건 가량은 계류 상태다. 전체 70%에 달하는 법안이 21대 임기 만료 11개월을 앞두고 여전히 잠자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