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통증' CRPS 환자···장애 인정도 치료도 '산 넘어 산'

애매한 장애 판정 기준 치료 가이드라인 부재 보험 처리도 까다로워

2023-10-26     김정수 수습기자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가 질환을 앓는 왼손 붕대를 풀었을 때의 모습. /연합뉴스

"하루라도 치료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중증 환자입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 강병진 씨(남·30)와 그의 어머니 김미자 씨. 24시간 달고 사는 통증과 하루 몇 차례 발생하는 돌발통이 그들의 일상이다.

CRPS는 외상이나 수술로 인해 손상을 입은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다. 가령 괴사로 신체 일부를 절단했지만 마치 절단한 신체가 있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통증으로 고통받는 이 환자들은 장애 판정 기준과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정신적 고통마저 받는다. 까다로운 보험처리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2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CRPS는 2021년 4월 장애요인으로 공식 인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 인정 기준과 대상, 범위 등은 제한적이다.

한국CRPS환우회 이용우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장애 인정 관련 문제점을 언급했다. 그는 "CRPS 환자를 심하지 않은 장애로 인정하는 점과 2년마다 재심사,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점에서 (다른 질환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또한 "장애 등록도 지체 장애를 잣대로 보기 때문에 통증만 겪는 환자는 장애 진단에서 배제된다"며 "CRPS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데도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CRPS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약물치료, 신경치료, 약물펌프 수술법, 재활치료 등으로 치료를 진행하지만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만성이 된 CRPS 환자들은 재활치료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용우 환우회 회장에 따르면 CRPS 전문 재활클리닉은 국내 분당서울대병원이 유일하다. 그는 본지와 통화에서 "CRPS 환자를 대상으로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은 한정돼 있고 병원 입장에서도 건강보험 규정상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는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경과 전문의는 본지와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재활이라는 것은 운동적인 기능이 낮아지는 경우 그걸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며 "CRPS의 경우 통증 증후군이고 통증은 감각적인 부분이라 일반적인 재활치료로 보기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재활의학과에서 CRPS 환자의 재활치료를 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도 "CRPS로 재활치료를 처방하고 치료 보장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며 CRPS 재활치료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보험 처리도 난제

CRPS 환자들은 보험 처리에서도 곤욕을 겪는다. CRPS 환자의 경우 비 암성 통증이다 보니 마약성진통제의 양이 한정돼 있고 이를 넘어가면 전부 본인이 부담하게 돼 보험이 안 될 경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특히 CRPS 환자는 병이 완치되지 않고 평생 가는 경우가 많아 고통이 심해도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해 보험이 되는 약으로만 버티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주대병원 최종범 교수는 CRPS 치료를 위한 신경치료의 건강보험 횟수 제한 등 유연하지 못한 보험 제도를 지적했다. 그는 본지와 통화에서 "건강보험 급여 항목인 신경차단술이나 마약진통제 같은 경우 암 환자는 무한정 보험이 적용되지만 CRPS 환자는 용량·횟수 제한이 있다"며 "CRPS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는 경우와 허리가 아파서 맞는 경우는 차원이 다른데 기준이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혀 다른 중증도와 질환임에도 횟수 제한을 똑같이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CRPS 환자 보호자 김미자 씨는 "아들이 통증으로 주사를 맞고 싶어도 횟수 제한 때문에 참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산재 승인 과정도 쉽지 않다. 서울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최초 접수 후 산재 범위에 들어오면 그다음부터 요양 기간을 연장할 시 진료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산재 요양 기간 연장 절차에 대해 말했다. 그는 "연장 신청이 들어오면 공단에서는 의학 전문가한테 자문해야 하고 의무기록을 모아야 하므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는 빠르게 자문할 수 있지만 특수과,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경우 온라인 자문이 없어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에 거주하는 CRPS 환자 박병국 씨는 산재 승인 과정에 필요한 의사 면담을 언급하며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생기는데 직접 옷을 벗고 확인받아야 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