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동네 공원의 어머니 자전거 교실을 통해 50년의 버킷리스트 자전거 타기를 시도

2023-10-24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오랫동안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시작을 못 했다. 이번에는 마음먹고 자전거 수업에 참여했다. /Rizki Yulian on unsplash

‘자전거를 사라. 살아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한 에세이에 적은 문장이다. 톰 소여,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여행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즐겼던 것 같다. 48세에 자전거를 타보겠다고 결심한 것을 보면 말이다.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상점으로 가서 ‘새살이 솔솔’ 연고 한 통과 자전거 한 대를 탔다’(자전거 길들이기, 책쥬인)로 시작하는 그의 에세이에는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가 핸들을 움직여 제대로 탈 수 있게 되기까지 10여 일의 과정이 유머러스하게 적혀 있다. 

마크 트웨인의 에세이가 부추긴 건 아니지만 나도 자전거를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매번 넘어지고 다쳐 자연스럽게 자전거와 멀어졌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 내리막길에서 굴러 종아리를 크게 쓸렸고,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여의도 광장에 나가서 호기롭게 자전거를 빌렸는데 안장에 올라가자마자 떨어져 청바지가 찢어졌던 기억도 있다.

서른 살 즈음 마음먹고 다시 타봤는데 앞으로 나가는 건 겨우 성공했지만 방향을 틀다가 여지없이 넘어져 발목을 삐끗했다. ‘이렇게 균형감과 순발력이 떨어져서는 자전거와 친해지기는 힘들겠구나’란 생각에 이후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가 세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자연스럽게 옮겨 타는 걸 보며 다시 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면 아이와 함께 한강변을 천천이라도 달려볼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니 달려가는 자전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어찌나 자유로워 보이는지 부러운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바람을 가르며 움직이는 느낌을 경험하고 싶었다. 집 근처 한강 공원 광장에 ‘어머니 자전거 교실’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띈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달려보기, 내가 자전거를 타며 해 보고 싶은 일이다. /Jonas Jaeken on unsplash

서울시 성동구 자전거연맹에서 운영하는 강습인 듯싶었다. 나처럼 늦깎이로 자전거를 배우려는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클래스인 것 같아 얼른 연락처를 적어 두었다. 오전 시간 수업이라 참여는 못 하고 늘 마음에만 두고 있었는데, 마침 주말 근무 대휴를 며칠 쓸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 본 적은 있어요?” 나보다 열 살 즈음 더 많아 보이는 여성 강사가 친절하게 물었다. 한때 동네에서 ‘자전거 아줌마’로 불렸다는 그녀는 ‘한번 바퀴에 발을 올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어려운 것은 없다’며 용기를 주었다. 그러면서 안장이 높지 않은 자전거 한 대를 꺼내 오셨다. 

한 시간이면 배울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수업 과정은 내 생각과 달랐다. “우선 자전거와 함께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요. 자전거를 옆에 두고 오른쪽으로 10바퀴, 그리고 왼쪽으로 10바퀴 돌아보세요.” 아, 타기 전에 자전거, 그리고 핸들의 감각을 손에 익혀야 하는 거구나. 핸들에 힘을 어떻게 줘야 자전거의 균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옆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자, 이제는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워 두고 그 위에 올라 바퀴를 돌려보세요.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잡아보면서요.” 자전거를 친구처럼 옆에 끼고 광장을 돌고, 제 자리에 세워 두고 페달을 밟는 것으로 강습의 첫 시간은 마무리했다. 자전거와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둘째 날에는 오른발은 페달 위에 올리고 왼발로 깽깽이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했다. 쉬워 보이지만 잘못 힘을 주거나 핸들을 돌리면 바로 기우뚱해진다. 이 자세를 유지하며 편평한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끌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혔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몸의 무게를 자전거에 싣고 발을 떼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직은 페달을 돌리며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야 균형감을 유지하며 안장에 오를 수 있는지는 익힐 수 있었다. 물론 발을 떼고 나아갈 때 무게가 한쪽으로 실리기 일쑤라 비틀거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장에 오르는 연습을 하다 보니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있다. 인생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페달을 돌려야 자전거를 움직일 수 있듯이 사는 것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동작에서 이런 인식을 끄집어내다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타기, 그 위에서 세상 만나기’라는 50년의 버킷 리스트를 시작했으니, 이번에는 자유롭게 달릴 수 있을 때까지 해 볼 생각이다. 균형 잡힌 자전거 위에서 인생의 균형을 느끼는 순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