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살도 연애한다'···황혼 연인 찾기 전에 '상속부터 정리하자'

20대 시절엔 CC(캠퍼스 커플) 80대엔 BC(복지관 커플) 대세 재혼 이어지면 상속 해결해야 "공증받은 부부재산계약 필요"

2023-10-11     김현우 기자
어느 한 커플이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손자·손녀가 명절에 찾아와 'CC(캠퍼스 커플)가 생겼다'면서 자랑하는데... 나는 얼마 전 BC(복지관 커플)가 생겼지요."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하는 82세 김창원 씨는 요새 웃는 일이 많아졌다. 매일 찾는 복지관에서 만난 동갑내기 유명숙 씨와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스물일곱에 결혼해 마흔둘에 아내를 떠나보냈다. 이후 반세기를 혼자 딸 하나 키우며 살았는데, 세상 떠나기 전 설레는 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서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김씨의 여자친구 유씨도 '행복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휴 다 늙어서 쑥스럽다"며 얼굴을 붉혔다. 김씨는 그런 유씨에게 무심한 듯 어깨에 손을 올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10대·20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연애. 최근 들어 80대 후기 고령층 사이에서는 '황혼 연애' 혹은 '황혼 재혼'이라고 불리며 부쩍 연애 상대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3 고령자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 중 재혼 건수는 5308건이다. 2017년 3886건과 비교하면 5년 증가 폭은 커지고 있다. 

11일 여성경제신문이 찾은 한 지역 복지관에선 올해에만 이미 네 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이상범(74)·정선옥(69) 커플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나이들어 사별하고 집에만 갇혀 살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면서 "복지관을 나가게 되었고 이곳에서 스포츠댄스 수업을 듣다 서로를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정씨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젊은 친구들이 연애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그들보다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기 때문에 호감 가는 이성이 생기면 관심이 쏠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A커플은 "나이가 젊었을 때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만났지만, 나이 들어 연애하다 보니 단점도 있다"면서 "아무래도 공공장소에서 손을 잡고 걸으면 대부분이 부부로 착각한다. 그러다 누군가 물어보면 '연애하고 있어요'라고 당당히 말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된다(웃음)"고 했다. 

황혼 연애는 복지관에서 뿐만의 일이 아니었다. 중증 이상 치매에 걸린 노인이 입소하는 노인요양시설에서도 사랑이 피어오른다.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한 요양시설에선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두 환자가 휠체어에 서로 앉아 손을 맞잡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두 커플은 치매 단계가 이미 진행된 상태다. 하지만 매일 오후 2시에 진행되는 동요 부르기 수업에 참석할 때면, 서로 함께 앉아 손을 맞잡는다고 한다. 

이 커플을 간병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B씨는 "매일 이렇게 손을 잡으신다. 서로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면 손잡는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답하면서 항상 이런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황혼 커플이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녀 의존도 먼저 물어요."

복지관 커플 정선옥·이상범 씨는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을 때 자녀 여부와 자녀 의존도를 먼저 서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정씨는 "자녀가 있는지 그리고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나이대 자녀들은 이미 가정을 꾸린 가장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연애하게 되면 그들이 불편할까부터 생각하게 된다. 만약 연애하다 법적 혼인신고 즉 황혼 재혼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재산 상속 문제도 신경이 쓰이더라"라고 말했다. 

자녀들에게 둘의 연애는 아직 비밀이다. 정씨는 아들 내외가 가장 걸린다. "내가 장사를 오래 하면서 여러 사람을 봐 왔는데, 어머니가 시집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아들·며느리 태도가 달라지더라. 나는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

황혼 연애·재혼... 자녀 속 타지 않게 하려면?

황혼 재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이 커플은 재산 상속 문제가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젊은 시절 연애를 하면 가진 게 없으니, 고민거리가 많지 않았다"면서도 "이젠 자녀들 재산 상속 문제가 내 연애에 큰 걸림돌이 되더라"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가정법원 담당 김민석 혜원 법무법인 변호사는 "황혼 재혼은 현실적 한계가 많다. 무엇보다 자녀들의 동의, 사전 재산 정리가 필요하다. 재산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혼인 신고까지 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이미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신 노년 커플의 90%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같이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지인들에게 아내라고 소개하고 각자 집을 따로 두고 두 집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황혼 커플 /게티이미지뱅크

황혼 재혼이 늘면서 실제로 자녀들과 재산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기존 가족 구성원에서 벗어나 새로운 부모 혹은 피가 아예 섞이지 않은 형제도 생기기 때문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부모 사망 후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 충돌이 발생해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가 제기된 건수는 2020년 기준 2095건에 달한다. 이는 최근 5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김민석 변호사는 "황혼 재혼 부부들이 결혼 전에 상속 문제로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혼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민법에 규정된 ‘부부 재산의 약정’ 조항에 따르면,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결혼 후의 재산관리 방법을 미리 정해 등기할 수 있다. 재혼 전에 자녀들에게 법정상속분 이상으로 증여하고 ‘증여받았으므로 앞으로 재산 문제로 다투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해 공증받는 방법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혼전 계약으로 불리는 '부부재산계약'은 부부 합의를 통한 계약 사항들을 만들고 공증사무소에서 전문가의 공증받으면 완료된다. 안전하고 공정한 계약을 위해서는 가급적 변호사 등 전문가의 도움과 함께 공증받는 것이 좋은데, 이때 전문가는 남편이나 아내의 중립적인 위치여야 한다.

유언장을 통해 상속분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김 변호사는 "사후 분쟁을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는 것"이라며 "재혼 부부와 자식 간의 신중한 상의를 통해, 배우자와 자녀가 상속받을 몫을 각각 정해 유언장에 적으면 된다"고 전했다. 유언 내용과 작성일, 주소, 성명 등을 자필로 작성하고 도장을 찍은 자필증서도 유효하고, 공증사무소에서 유언 공증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혼전 계약과 유언장을 공증받았다고 해서 분쟁이 생긴 경우 계약서 내용대로 100%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소송 시 법원에서 중요한 참고 자료 정도로 인정된다. 법원 측은 "이혼·사망으로 인한 재산 분할이나 상속은 미리 알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 계약은 100%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