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과 9·11 버금가는 '정보 실패'···네타냐후 '모사드 분열' 책임론

"가자에서 큰 거 터진다"는 이집트 경고 무시 오슬로 합의 반대 세력 득세 정보기관 정치화

2023-10-10     이상헌 기자
10월 8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군 수뇌부를 불러모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6·25 남침 전쟁과 마찬가지로 '정보 실패'로 비롯된 기습 타격은 회복이 어려운 심각한 피해를 안겨준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모사드를 거느린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도발할 것이란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다.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란 정책결정자에게 적시에 정확하고 완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오판을 초래하고 국가안보 이익을 해친 상황을 뜻한다. 전쟁 이틀 만에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낳은 하마스 도발이 진주만과 9·11테러에 버금가는 정보 실패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0일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하마스의 도발이 있기에 앞서 이집트 정부가 네타냐후 총리 측에 여러 차례 "가자에서 큰 것이 터질 것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고 경고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도발 직전까지 이스라엘은 북쪽의 헤즈볼라 공격에 대비하느라 가자지구 주변을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고 있었다. 남쪽의 하마스와 북쪽의 헤즈볼라가 협공을 펼칠 가능성을 간과한 것으로 네타냐후 정부가 '오슬로 합의'를 반대하는 강경 세력에 영합하는 정책을 펼쳐 온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슬로 합의(Oslo Accords)란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기에 앞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한 양자 간 합의로 역내에서 안전핀 역할을 해왔다.

지난 7월 이스라엘군 1000명이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제닌 난민촌으로 진입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진압 작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 측은 8명이 죽고 80명이 다쳤다. 네타냐후 정부는 서안 지역의 이 같은 소란에 비해 가자지구는 상대적으로 조용해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것.

이스라엘 가자지구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뮤직페스티벌 현장. /유튜브 방송 캡처

진영논리 매몰, 협공 가능성 간과
중동의 시계는 결국 50년 전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19세기 초반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유대인 이주자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던 초기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시오니즘 운동과 함께 대거 이주해 오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발표하면서 발발한 전쟁이 제1차 중동전쟁이다. 이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등을 차지했고, 1973년 제4차 전쟁에서는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점령했다.

이후 1978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고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준 것이 바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었다. 과거 이집트 영토였던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에 남았다.

결국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으로 인정했고 각각의 자치 정부가 수립됐으나 2007년 6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가 구(舊) 정파인 '파타'를 몰아내고 독점적 권력을 확보했다. 이후 가자-이스라엘 전쟁은 지금까지 17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오슬로 합의를 반대하는 강경 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이집트 주변국으로부터 가자 지구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왔음에도 이미 정치적으로 분열된 정보기구 모사드는 제구실 못했다. 송승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은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국경 일대에서 하마스의 공격 예행연습 징후를 포착하고도, 단지 이스라엘군 수뇌부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수작으로 폄하했다"고 지적했다.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 사례로는 단연 진주만 기습과 9·11 테러가 꼽힌다. 전자가 정보의 부족이 원인이었다면 후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간의 견해차를 낳은 분열이 사태를 키웠다. 예컨데 빈 라덴과 연계된 중동인이 상업용 제트기 조종을 배우려는 정보가 입수되었지만 빈 라덴이 아프간에서 수송기 운용을 원한다는 그릇된 결론을 내렸다. 결국 미국 정부는 정보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3년간의 준비 끝에 2004년 미국 내 모든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장실(DNI)을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