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쉰여섯살 미아가 되다···도호쿠 지방 1박2일 단체여행①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18) 이와테현(岩手県) ‘겐비케이(厳美渓)’ 계곡 당고가 하늘을 난다고? 어떻게? 미아가 된 쉰여섯 살, 여행길의 해프닝은 덤

2023-10-11     양은심 번역가(영상/책)·작가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단체 여행에서 미아가 되었다. 내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인솔자의 실수로 내가 버스에 타지도 않았는데 다음 목적지로 출발해 버린 것이다.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여행 이야기.

여행지까지 신칸센으로 이동하는 단체 여행에 참여했다. 목적지는 홋카이도(北海道) 아래쪽 바다 건너에 있는 도호쿠 지방(東北地方)이다. 그중에서도 이와테현(岩手県), 아오모리현(青森県), 아키타현(秋田県)을 돌아보는 1박 2일 일정이다.

여행 신청할 때, 신칸센이 통과하는 도쿄(東京)역, 우에노(上野)역, 사이타마현(埼玉県)의 오미야(大宮)역 중에서 자기가 타고 싶은 역을 선택하면, 여행사에서 사전에 표를 구매했다가, 신칸센 안에서 나누어 준다. 나는 우에노역에서 타기로 했다. 

출발 전날 저녁 인솔자가 전화해서 신칸센 좌석 번호를 알려주었다. 오전 7시 20분 우에노역에 도착하는 ‘하야부사(はやぶさ) 101호’. 좌석은 2호 차 6E. '하야부사'는 '매(隼)'를 뜻한다.

이와테현(岩手県) 겐비케이(厳美渓) 계곡. 울퉁불퉁 다이나믹한 바위 모양이 인상적이다. /사진=양은심

2022년 9월 16일. 일찌감치 집을 나와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교통카드로 쓱쓱 잘 통과되다가 신칸센 개찰구에서 막혔다. 역무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단체 여행객이나 다른 사람이 신칸센 표를 가지고 있을 경우는 '입장권'이라는 걸 사서 들어가야 한단다. 이런 복병이 숨어 있었다니. 역무원이 알려준 창구로 가서 입장권을 사 오느라 10여 분 날아갔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어서 당황하지는 않았다.

미리미리 움직인 나를 칭찬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까지도 꽤 멀었다. 역시 여유 있게 움직여야 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도호쿠 신칸센 ‘하야부사 101호’가 20번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전날 연락받은 좌석에 가서 앉으니, 인솔자가 와서 신칸센 표와 일정표를 준다. 무사히 출발.

도호쿠 신칸센 '하야부사 101호'. 이름은 '매'인데 얼굴은 돌고래를 닮지 않았나? /사진=양은심

신칸센 하야부사는 좌석 앞이 넓어서 쾌적했다. 캐리어를 발밑에 눕히고, 2주일 전 비 내리는 후지산에서 삐끗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리를 폈다. 버스 이동이기는 하나 많이 걸어야 하기에 조심하기로 했다. 아침 달이 수호천사처럼 쫓아온다. 달을 좋아하는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9월 중순의 달은 늦게 뜨고 늦게 진다.

9시 20분. 이와테현 이치노세키(一関, 一ノ関)역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갈아탔다. 들판은 이미 가을빛을 띠기 시작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있는 동안 버스는 첫 목적지인 이와테현의 겐비케이(厳美渓)라는 계곡에 도착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여서인지 한산했다.

가을빛을 띠기 시작한 들판. 벼가 노랗게 익고 있었다. /사진=양은심
주차장에서 '겐비케이 계곡'으로 향하는 길.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적적한 분위기였다. /사진=양은심

계곡의 경치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인솔자가 소개한 '재밌는 체험'을 하기로 했다. 다른 일행들은 볼거리가 많은 계곡 쪽으로 갔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여행 초반에 개인 여행 기분을 맛볼 수 있다니. 나 홀로 타임 시작!

재밌는 체험이란 ‘하늘을 나는 당고(한입 크기로 둥글게 빚은 찰떡)'를 먹는 것. 당고가 하늘을 난다고? 어떻게?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나는지가 궁금했다.

겐비케이의 산책로 등 볼거리 안내판이다. /사진=양은심

당고를 먹을 수 있다는 카페로 갔으나 코로나 때문인지 아쉽게도 휴업 중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인솔자가 보이길래 아쉬운 소리를 하며 계곡으로 향했다. 

잠시 후 인솔자가 '양은심 씨'하고 나를 부른다. 정자에서 주문하는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리란다. 확인해 보겠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이 나서 뒤쫓았다. 인솔자가 두 팔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나는 달리다시피 걸었다.

아쉽게도 휴업 중이었던 카페. 카페 안에서 혹은 야외 테이블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당고를 먹고 싶었다. /사진=양은심

카페를 보고 돌아오면서 계곡에 있는 정자와 그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기는 했으나, 그들이 당고를 먹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라지 않는가. 물어보기라도 했어야지. 입은 뒀다가 뭐 하려고. 뭐가 그리 바쁘다고 물어보지도 않는가 말이다. 지레짐작 포기했던 내가 한심했다.

역시 코로나 때문인지 한가했다. /사진=양은심

정자 옆에 주문할 수 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1세트 500엔. 바구니에 500엔을 넣고, 옆에 있는 나무판을 두드리면, 계곡 건너에 있는 가게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바구니를 당겨 간다. 바구니가 줄을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정자 옆에 당고를 주문할 수 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1세트 500엔. 바구니에 500엔을 넣고, 옆에 있는 나무판을 두드리면, 계곡 건너에 있는 가게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바구니를 당겨 간다. /사진=양은심

당고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계곡 경치를 구경했다. 묵묵히 서 있는 바위, 연못 같은 계곡물, 아직은 푸르른 나무들.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자연스레 숨이 깊어진다.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고. 강물 대신 내 마음이 헐거워져 흐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숨을 멈춘 듯했던 경치. 그러나 자연스레 심호흡하게 했던 경치다. /사진=양은심

올라갔던 바구니가 줄을 타고 '하늘을 날아' 온다. 둥실둥실. 마치 놀이기구 같다. 한입 크기의 당고가 5개씩 끼어있는 것이 세 꼬치나 들어있다. 1인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녹차가 두 잔 있는 걸 보니 2인분이다. 

검은깨 맛, 팥 맛, 간장 맛을 즐길 수 있는 세트다. 2인분에 500엔이면 아주 저렴하다. 개인 여행이라면 이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도 있겠다. 녹차 두 잔에 검은깨 맛을 먹고, 나머지 두 개는 가방에 챙겼다.

올라갔던 바구니가 줄을 타고 '하늘을 날아' 온다. 둥실둥실. 마치 놀이기구 같다. /사진=양은심
바구니 속에는 한입 크기의 당고가 5개씩 끼어있는 것이 세 꼬치나 들어있다. 1인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녹차가 두 잔 있는 걸 보니 2인분이다. /사진=양은심

TV에 소개된 곳이어서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붐볐을 터였다. 한가한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없었고 수다 떨 일행도 없으니, 볼거리가 많은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작은 도리이가 있고 큰 나무 사이로 난 길은 마치 오솔길 같았다. 거리도 적당하여 당고를 먹은 후의 산책에 적당했다.

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 그다지 높지도 않건만 나는 엉덩이를 빼고 조심조심 건넜다. /사진=양은심

단체 여행에 참여했을 때의 내 철칙은 '화장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기'이다. 화장실 가는 길에 스테인드글라스 제품을 파는 상점이 보였으나 들어가 볼 시간은 없었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나오는 일행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자, 이제 주차장으로 가서 버스에 타면 된다.

그. 런. 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왜 없지? 내가 장소를 잘못 알고 있었나?” 그야말로 '멘붕'이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버스도 사람들도 싹 사라지고 없다. 내가 늦었나? 시간을 확인했다. 아니다, 딱 집합 시간이다. 내가 당황하고 서성인 시간을 생각하면 적어도 나는 늦지 않았다. 그리고 늦었다면 인솔자가 나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떼놓고 가버리지는 않는다. 

인솔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양은심인데요. 버스가···”까지 말했을 때, 인솔자가 누군가에게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가야겠어요. 손님 한 분이 남아계셨어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네네, 그 맘 알아요. 빨리 와 주세요.'

내가 일본에 살고 있고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나라였으면 눈앞이 캄캄했을 일이다. 인솔자가 바로 알아볼 수 있게 주차장 입구로 이동했다. 몇 분 전에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5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속 좀 타겠네.' 인솔자가 안쓰럽기는 했지만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재밌기까지 했다.

인솔자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날 맞이한다. 내가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한 후, "인솔자 생활 27년에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인다. 일행들이 웃는다. 그래, 이럴 땐 웃어줘야 해. 그래야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여행길에서의 우발적인 해프닝은 덤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인솔자와 일행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일행들의 얼굴은 잊었지만 버스 안에서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게(어쩌면 일행들에게도) 이야깃거리를 남겨 준 여행. 56년 살아오면서 처음 겪어 본 '미아 체험'이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지 싶다.

인솔자가 죄송했다며 과자 상자를 들고 찾아와서 고백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 그랬는지 12명이라고 확신했거든요.” 우리 일행은 13명이었다. 살다 보면 이유도 근거도 없이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종종 그런 실수를 한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 맘고생 하지 마시라고 했다.

"친절한 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재밌는 추억이 생겼어요 하하하.”

가게 주인이 바구니를 당기고 있다. 겐비케이 계곡의 '하늘을 나는 당고'. 잊지 못할 여행지가 되었다. /사진=양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