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50대의 우정, 고마울 수밖에 없다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친구를 위해 고등학교 찐친들이 모였다
요즘 들어 자주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미안해지기도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필요해 보일 때) 얼마나 기꺼이 시간을 냈는지 마음을 주었는지 돌이켜보기도 하는데, 많이 모자랐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어떻게 지내는지 먼저 물어볼걸, 조금 더 걱정하고 내 일처럼 움직일걸, 가끔은 일없이도 만나 농담이라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낼 걸 등 후회되는 지점들이 꼬리를 문다. 기대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어떤 관계보다 친구가 우선되는 10대와 20대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건 지금은 친구들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내 친구 누가 아니더라도, 그/그녀의 삶 자체가 있는 그대로 느껴질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이해도 가능하고 예측도 할 수 있다. 50년 이상 인지상정을 체험하며 살았으니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고 표정을 짓는지 자연스레 연결할 수 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육아를 하고 회사에서 일정한 책임을 지게 되는 30대와 40대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친구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아이, 집안일, 회사 업무 등 눈앞에 챙기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친구는 우선순위가 되지 못한다.
그러다 그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50대 이후가 되면 다시 친구들을 돌아보게 된다. 20대에는 감정과 일상 등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 친구라는 강박이 있었지만, 50대의 친구는 관계에 대한 긴장감 없이 언제든 만나 관심사를 나누고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방문을 했는데, 그 계기로 5년 만에 다 함께 만나게 된 것이다. 청와대도 돌아보고, 광장시장에 가서 빈대떡도 먹고, 청계천도 걷고, 명동에도 나가 보고, 친구가 가보고 싶다고 한 곳들을 50대 여성들이 깔깔대며 돌아다녔다. 마치 예전 학창 시절처럼 말이다.
저녁 시간에는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아예 파티룸으로 쓰는 에어비앤비를 대여했다. 지난 몇 년간의 근황과 현재의 각자 상황, 고민을 이야기하게 됐고 놀랍도록 솔직한 코멘트와 조언이 이어졌다.
“자식 우리 맘대로 안 돼, 그러니 지금처럼 지켜보는 게 맞다고 본다.” “남편이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려고.” “왜 그렇게 생각해, 너에게 중요한 건 지금 그 일이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시도해 봐야지.” 다른 자리에서 들었더라면 당황했을 정도의 집요한 질문과 주장도 보태면서 말이다.
누구를 만나든 유연하게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지나온 삶의 궤적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에 느끼는 안정감이 다르다. 편한 마음으로 ‘저런 이야기까지 해도 될까’하는 내용도 서슴없이 전한다.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성격이었지’, ‘나와는 그 시절 이런 고민을 나눴지’ 등 관계의 시간성이 친구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긴장감 덜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하며 이야기를 나눈 그 날밤 이후 든든한 내 편을 확인해서인지 일상의 안정감과 기운이 생긴 듯했다.
과학저널리스트인 리디아 덴워스는 그녀의 책 <우정의 과학>(흐름출판)에서 최상의 우정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안전망을 펼쳐준다고 전한다.
인생의 시기별로 중요해지는 사회적 관계에 관한 연구를 언급하며(시기별 고립의 이유와 사망률과의 관계 연구였다), 저자는 60세가 넘으면 배우자보다 친구라는 사회적 유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족과의 이별이 어쩔 수 없이 벌어질 때 지탱할 힘은 친구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자연스레 친구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노년이 되어 은퇴하게 되면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건강 상태도 이전과는 달라져 외출하는 횟수도 감소한다. 저자는 외로움을 예방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우정을 받아들이고 우정에 투자하고 우정을 쌓도록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접 만나 안부를 나누지 못하더라도 SNS를 사용하거나 전화와 문자를 남기는 등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플랫폼으로 소통하는 일상에 관심이 없다며 그동안 멀리했는데 그렇게라도 들여다보고 말을 건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한 김에 이번 추석 연휴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열어 친구들의 사진도 보고 안부도 남겨봐야겠다. 하트를 꾹 누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