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유명인도 처음엔 무명인이었다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연기가 좋아 오늘도 무대에 오르는 무명 배우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인이 되기를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으로 유명한 화가. 하얀 캔버스에 검은 정사각형 하나가 달랑 그려져 있다.
모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무심코 내가 뱉은 말, "이 그림, 나도 그리겠다. 화가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단 말인가?" 3초 보고 다른 그림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상할 것이 없었다. 무미건조했다. "이게 뭐람."
그러나, 이 그림은 지금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엄청난 고가의 그림이다. 원인이 뭘까?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나오기 전, 그 당시 그림의 소재는 현실이었다. 그림을 보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림이 없었던 것이다.
말레비치는 현실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그리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 결과, 누구도 그리지 않았던 기하학적 형태를 생각해 냈고 그것을 캔버스에 그렸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검은색의 사각형이다. 여러 가지 형태 중 가장 본질적인 형태가 사각형이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는 것, 이 사실을 말레비치는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을까? 카지미르 말레비치만 알았을까?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냥 지나친 것 아닐까? 한 꼭짓점을 바닥에 세워 돌리면 원이 되고, 대각선으로 자르면 삼각형이 되고, 상하로 수직으로 자르면 직사각형이 되는 정사각형.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생각은 새로운 사조의 기하학적 그림이 그려진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의 바탕이 된 그림, 검은 사각형.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그림을 찾아 캔버스에 옮긴 이 단순한 그림이 말레비치를 유명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로 유명한 조앤 롤링. 28살에 어린 딸을 데리고 이혼녀가 된 그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산 가난뱅이였다. 현재 그녀는 엄청난 거부이다. 무엇이 그녀를 부자로 만들었을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가 <해리포터>를 써서 12개 출판사에 보냈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유명 작가가 아니라서, 허무맹랑한 판타지 소설이어서···. 결론은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소규모 출판사인 블룸즈베리 출판사와 겨우 200만원을 받고 〈해리포터〉를 출간하기로 했다. 출판 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포터 시리즈. 그녀가 상상력을 발휘해 판타지 소설을 쓰고자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 배우 윤여정. 이혼 후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서 온 예전의 윤여정을 누구도 선뜻 배우로 캐스팅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했기에 단역이라도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고 한다.
윤여정은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위트 있는 말솜씨로 인터뷰어를 웃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통쾌한 웃음으로 이끈 그녀의 재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 우리 모두는 그녀를 대배우로 인정한다. 윤여정은 지금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배우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 고민하는 사람, 세상에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사람, 자신이 하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며 더 나은 자기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지금 무명인인 우리는 유명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무명인이다. 나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유명한 화가가 될지 세계적인 작가가 될지 황금종려상을 받을 배우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날이 오길 희망하는 사람들은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작은 것 하나도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어느 날 세상 밖으로 나올 나의 그 무엇이, 당신의 어떤 것이, 유명인으로 만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낡은 작업실에서 붓을 놀리며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무명의 화가, 늦은 밤 자신의 책을 기다릴 독자들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 차가운 겨울날 작은 역할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을 무명 배우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원으로 만감이 교차할 때 나를 배우로 불러 준 선배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선배가 나를 생각하고 기억해 준 것에 감사하다. 아울러 무명 배우로 또 한 번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에 더더욱 감사하다. “저 미국 유학 갈 거예요”라는 한 줄의 대사를 외우면서 어떤 표정, 어떤 목소리로 연기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부라보”를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