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미국인 지지하는 자동차노조 파업, 다시 인플레이션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미국 성인 54% 자동차노조 파업 찬성 소득격차 공감···자동찻값 상승 불가피 고물가 우려, 대선 앞 먹구름 낀 바이든
노동조합의 파업은 대체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한다. 트럭이나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주요 물류망이 중지되는 극단적 사태에 이르기 전까지 파업은 대체로 일부 노사 간 암투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한 업종의 파업에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바로 미국 자동차 3사인 GM, 포드, 스텔란티스를 망라하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에 관해서다. 언론은 연일 UAW 위원장인 숀 페인(Shawn Fain)의 동정과 인터뷰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막강한 자동차 3사 CEO의 견해는 저리 가라다.
이렇게 언론이 UAW 파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최초의 직선 노조위원장인 페인의 강성 투쟁 노선 때문이다. 그는 참신함과 도덕성을 무기로 조합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며 사측을 코너로 몰고 있다. 거기에다 대다수의 미국인도 파업에 대하여 지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54%가 자동차노조의 파업에 찬성하고 있다. 반대는 18%에 불과하다. 노조가 파업하면 일반 미국인들의 생활에도 피해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가격의 인상이다. 팬데믹 기간 반도체 등 부품 공급 부족으로 상승했던 자동차 가격이 신차 생산라인이 멈추면 더 오를 수 있다.
실제 자동차는 미국인에게는 생활필수품이다. 버스나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이 미미한 상태에서 미국인들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운전을 배우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대씩 차량을 구매한다. 다섯 대의 차가 마당 안팎에 빼곡하게 주차하고 있는 모습은 미국에서는 흔히 보는 일상의 풍경이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 가계에는 자동차 가격의 인상이 달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이 자동차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은 자동차노조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자동차 3사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생사의 기로에 섰었다. GM은 파산했다가 오바마 행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겨우 기사회생했다.
금융위기 자동차 3사 생사기로 노동자 희생
정상화 후 경영진-노동자 소득격차 극심
그 과정에서 자동차 3사에 투자한 주주도 손해를 봤지만 노동자들의 희생도 컸다. 오랜 기간 땀 흘려 모은 연금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했고 임금 삭감도 받아들여야 했다. 회사 경영이 정상화된 이후에도 임금 상승은 더디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에 대한 보상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예를 들어 GM의 CEO인 매리 바라(Mary Barra)의 임금은 2019년 이후 34% 상승했다. 다른 회사 CEO에 대한 보상도 최근 4년간 40% 넘게 늘어났다. 매리 바라의 연봉은 평균 노동자 임금의 362배에 달한다. 1970년대 이전에도 CEO 연봉은 높았지만 노동자보다 20~30배 높은 수준이었다.
이와 같은 소득격차는 미국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 됐다. S&P500 기업의 CEO 임금은 일반 노동자의 200배 안팎에 달한다. 소득격차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단순하다. 상위직과 하위직 간 임금 인상 속도에 현격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79년 이후 상위 1% 상위직의 물가 조정 후 임금 상승률은 145%였지만 하위 90%의 임금은 물가 조정 후 16% 오르는 데 그쳤다. 연평균 0.5%에도 못 미쳤다. 한편, 이 기간 미국의 연평균 실질 GDP 성장률은 2.5%가 넘었다. 경제 성장 과실의 대부분이 상위 1%에 갔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일반 가정이 소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결과다.
이렇게 일반 노동자의 임금 상승 속도가 더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노조 위상의 추락이다. 미국에서 노조 조직률은 1945년 33%로 가장 높았다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1985년에는 18%로 하락했고 최근 노조 조직률은 10%에 불과하다.
공장 해외 이전·근로권리법 노조 위상 하락
전기차 육성 美 정부 등 돌리는 자동차 노조
대선 앞둔 親노조 바이든 '인플레 난감하네'
노조의 위상 하락에는 1994년 발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크게 기여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나프타의 시행 이후 미국 제조업 생산기지가 대폭 멕시코로 이전했다. 2001년 이후에는 또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다.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웠다.
또, 많은 주가 이른바 ‘근로권리법(RTW, right to work)’을 제정해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다. 주로 남부와 중서부의 보수적 정치지형 하에 있는 주들은 RTW법에 의거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물론 이들 주에서는 노조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파업에 신물이 난 많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남부로 옮기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보잉이다. 보잉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항구도시인 찰스턴에 생산기지를 세웠다. 해외 투자자들도 이들 남부 주를 선호했다. 현대와 기아도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공장을 세웠다.
대부분의 정치권도 해외 투자 자본의 유치에만 열을 올릴 뿐 노조의 위상 약화와 저조한 임금 상승에는 무관심했다. 그런데 그 흐름을 바꾼 대통령이 등장했다. 바로 조 바이든이다. 펜실베이니아의 노동자 집안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는 가장 친노조적 대통령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조 운동의 지지자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을 전폭 지지해 미시간주 표를 몰아줌으로써 승리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노조가 그를 또다시 지지할지는 미지수다. 바이든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육성이 마뜩잖기 때문이다. 그의 정책으로 인해 주력인 내연차 생산이 타격을 입는 반면, 전기차 공장은 상당 부분 노조가 약한 남부에 위치해 있다.
또한, UAW 파업 자체도 미 경제에 적지 않은 그늘을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이 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대로 향후 4년간 40%에 가까운 임금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파업의 심리적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유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와중에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도 현재보다 크게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임금 인상은 또 제품가격 인상으로 전가돼 물가 상승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나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 같은 물가 상승 압력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발목을 잡아 고금리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고비용 사회로의 전이 가능성을 높인다. 결국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면서 실물경제는 추락하고 덩달아 가격 버블이 잔뜩 낀 자본시장도 붕괴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UAW 파업이 한 업종 노동자들의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 가드너웹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퍼먼대학교에서 재무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