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활자로만 존재하는 연구실 안전 수칙 “도움 안 돼”
영상 교육 편법 이수 인터넷상 공유 실습현장서 문제 발생 시 활용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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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서울 소재 대학 정보통신과학 석사과정 대학원생인 A씨(26)는 최근 연구실 안전교육을 이수했다. 학내 규정에 따라 연구실에 밤늦게까지 있으려면 온라인 안전교육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컴퓨터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자신의 연구실이 안전교육이 필요할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매 학기 받는 안전교육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A씨는 편법으로 안전교육을 수강했다. A씨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직접 영상을 보지 않고도 교육을 이수할 수 있었다. 3시간짜리 교육 영상을 다 보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안전교육을 이수하려면 시험도 통과해야 하는데, A씨는 시험에 대화형 인공지능(챗GPT)을 활용했다. 챗GPT에 시험 문제를 입력하자 곧바로 정답이 나왔다. A씨는 챗GPT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적어 넣어 시험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A씨처럼 연구실에 소속되거나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학생은 1년에 2차례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매년 증가하는 연구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2005년 제정된 연구실안전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 연구실 안전사고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연구실 안전사고는 2019년 232건에서 2021년 292건으로 크게 늘었다. 연구실 안전교육이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지적의 배경이다.
기계공학 전공인 대학생 B씨(24)는 지난 학기에 ‘종합설계 실습’ 과목을 들으며 실습 때 드릴, 인두, 절단기 등 위험한 장비를 사용했다. B씨는 실습이 시작되기 전인 3월에 안전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안전교육이 실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B씨는 교육 내용을 활용할 기회가 없었다. B씨는 실습 중에 배터리가 열을 받아 부풀어 오른 적이 있었는데, 대처법을 알지 못해 당황했다. 그가 안전교육에서 배운 실험 안전 수칙이 원론 수준이어서 안전교육이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생물·가스 분야 등 30종류에 한정
현장과 연동한 콘텐츠 다양화 필요
연구실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NRSH)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안전교육 대상자는 130만 8579명이다. 반면 안전교육은 생물, 가스 분야 등 30종류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교육 내용이 구성되다 보니 개개인에게 필요한 내용은 정작 빠질 수밖에 없다.
안전교육은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안전교육은 NRSH가 대학교 등 연구기관에 위탁해 실시하고 있다. NRSH가 직접 운영하는 교육시스템과 달리 기관별 교육용 서버는 허술한 점이 많다. A씨 사례처럼 안전교육을 편법으로 수강하기 쉬운 구조다.
대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안전교육 이수 시기가 되면 ‘편법 수강’ 관련 글이 우후죽순 쏟아진다. ‘안전교육 영상 안 보고 건너뛰기’, ‘안전교육 16배속으로 듣기’, ‘안전교육 시험 답안’ 등의 내용을 에브리타임 게시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학생 C씨(23)는 에브리타임에서 배운 방법으로 안전교육을 편법으로 수강했다. C씨는 교내 교육용 서버의 허점을 이용해 안전교육을 16배속으로 수강했다. 또한, 인터넷에 올라온 답안을 그대로 옮겨 적어 시험을 통과했다. C씨는 “많은 학생이 모두 똑같이 한다”며 “낡은 영상을 꼼수로 보는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연구자가 연구실 내 위험 요인을 미리 알고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교육은 필수다. 하지만, 현행 연구실 안전교육은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NRSH 연구실교육팀 김민형 팀장은 “(안전)교육 콘텐츠를 수요자별로 매년 다양화하고 있다”며 “연구 현장에 맞도록 안전교육을 지속해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반영윤 고려대 수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