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0면] 잠잠하던 인플레 빼꼼···석유·농산물價 압력에 물가 전쟁 ‘경보’

8월 생산자물가 전월보다 0.9%↑ 16개월만 최고치 전년 比 1.0%↑ 국제유가 상승세·폭염·폭우 타격 시차 두고 소비자물가 영향 우려

2023-09-20     최주연 기자

경제 이슈는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해서 등장한다. 범람하는 뉴스 중에도 우선순위는 있다. [경제 0면]은 동시대 전체 경제 윤곽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졌다. 1면보다 더 중요한 0면이다.

다달이 집계되는 물가, 금리, 원자재 가격과 같은 거시 경제의 근간부터 원자력 발전, 반도체, 2차 전지 등 미래 지향적인 산업 이슈로 친근하게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한국은 세계 공통적인 물가 상승 요인인 국제 유가 상승뿐 아니라 올해 폭염과 폭우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8월 생산자물가상승률은 16개월 만에 최고치다. 사진은 러시아 타타르스탄 지역에 있는 원유 펌프잭 /TASS=연합뉴스

잠잠하던 물가가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전 세계는 유가 상승과 공급망 경색에 기인한 인플레이션으로 한바탕 긴축 전쟁을 치렀다. 작년 하반기부터 둔화 추세를 보이던 국내 물가는 전 세계 금융당국의 공통 목표인 2%대까지 찍었다. 그런데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유가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물가는 8월을 기점으로 이미 상승 전환했다. 단숨에 3%대를 훌쩍 넘었다. 한국은 세계 공통적인 물가 상승 요인인 국제 유가 상승뿐 아니라 올해 폭염과 폭우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8월 생산자물가상승률은 16개월 만에 최고치다.

생산자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이된다. 수출도 재정도 어려운 상황에서 유일하게 물가 둔화로 숨 한 번 돌리는가 싶더니 또다시 인플레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 소비자물가는 8월을 기점으로 이미 상승 전환했다. /최주연 기자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1.16(2015년 수준 100)으로 7월(120.08)보다 0.9% 상승했다. 전달(0.3%) 상승 전환 이후 두 달 연속 상승이다. 심지어 지난해 4월(1.6%)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지난해 8월과 비교해도 1.0% 높은 상승률이다. 국제 유가 하락에 지난 6월(-0.3%)과 7월(-0.3%) 두 달 연속 하락했지만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세계 인플레이션 두 개의 축 석유와 식료품
생산자물가 시차 두고 소비자물가 상방 압력
장바구니 물가-임금 연쇄 상승 악순환 시동

물가 상승 요인의 두 가지 축은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었다. 국제 유가 추이와 직결되는 석탄·석유 제품이 전달 대비 11.3% 상승했다. 기업의 생산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투입되는 원재료와 중간재로 쓰이다 보니 자연히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영향을 준다.

이 제품 가격의 상승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부터 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나라가 연말까지 감산 연장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3대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모두 넘어섰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에 이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마저 90달러대를 기록한 것은 작년 11월 이후 열 달 만이다. (관련 기사 : 국제유가 열 달 만에 90달러대···배회하는 '오일 쇼크' 유령)

또 다른 한 축은 식료품 가격의 상승이다. 이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합성어가 생길 정도로 전 세계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올해 엘니뇨 영향으로 폭우와 폭염 등 이상기후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13.5%나 올랐다. 전체적으로 보면 농림수산물이 7.3% 상승하며 2018년 8월(8.0%) 이후 5년 만에 최고 상승 폭을 기록했다. 수산물은 보합, 축산물은 1.5% 상승했다. 농산물 가격이 전체 농림수산물 물가를 추켜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산물 상승세는 2020년 8월(16%) 이후 최고 폭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자물가의 상승이 1~2개월가량 시차를 두고 실제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기업에 투입되는 재룟값이 오르면서 소비자 가격도 오르는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의 경우 소비자가 실제 체감하는 물가로 기대인플레이션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임금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시차를 두고 임금 상승을 ‘실현’시킨다. /최주연 기자

특히 장바구니 물가의 경우 소비자가 실제 체감하는 물가로 기대인플레이션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임금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시차를 두고 임금 상승을 ‘실현’시킨다. 임금 상승은 원가 상승을 가져오며 이는 상품에 대한 가격 전가로 이어진다. 결국 물가가 오르고 다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며 근로자는 임금 상승을 요구한다. 기대인플레 상승→임금 인상→물가 상승→기대인플레 상승→임금 인상→물가 상승 순환이 움직이게 된다. ‘물가-임금 연쇄 상승 악순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농산물 대외의존도 높은 韓 엘니뇨 변수 남아
美 물가 상승세 연준 “금리 인상 준비돼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국내외 식료품 물가(food inflation) 흐름 평가 및 리스크 요인'에 따르면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집중호우와 폭염, 태풍 등 기상 여건 악화 요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국내외 식료품 물가(food inflation) 흐름 평가 및 리스크 요인'에 따르면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집중호우와 폭염, 태풍 등 기상 여건 악화 요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또 흑해 곡물 협정 중단 등이 겹치면서 전 세계적인 식료품 물가 상승→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곡물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로서 국제 식량 가격 변동이 국내 물가에 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국제 식량 가격의 가장 큰 상방 리스크로 잠재해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엘니뇨 기간 이후에는 국제 식량 가격 상승기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1℃ 상승할 때 평균적으로 1~2년의 시차를 두고 국제 식량 가격이 5~7%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관련 기사 : 사과 한 알 4000원 시대···장바구니 물가 불붙었다)

미국 8월 물가도 전년 대비 3.7% 상승하며 지난 6월 이후 상승세다. 대부분의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장기적으로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달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물가 전쟁이 올해 안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8월 물가도 전년 대비 3.7% 상승하며 지난 6월 이후 상승세다. /최주연 기자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여지는 열어두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개막 연설에서 “우리는 적절한 경우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제한적인 수준에서 정책을 유지할 계획”이라면서도 한편으론 “신중하게 (통화정책을)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해 9월 FOMC까지 발표되는 경제 지표와 금리 정책의 연관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