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당신의 인생이 연극이라면 지금 어느 단계일까?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중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을까 입원하신 아버지의 위기는?

2023-10-06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연극도 뒤풀이도 끝났다. 겨울이 저만치서 나를 끌어당긴다. 한겨울의 매서움이 나를 꽁꽁 묶어 붙잡는다. 어린 시절, 겨울은 신나는 계절이었다. 벙어리 장갑을 끼고 얼음이 꽝꽝 언 논에서 썰매를 탔다. 손발이 시러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에서 나온 뽀얀 입김이 얼굴을 덮쳐도 신났다.

그 썰매 놀이는 배꼽 시계가 신호를 보내야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궁이에서 막 구워진 고구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껍질을 벗기면 노란 속살이 드러나고 동시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올랐다. 입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후후 불며 입 안에서 이리저리 돌려 먹었던 그 고구마는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었는지···.

그런데 이번 겨울은 어린시절의 그 아름다웠던 추억의 겨울이 아니다. 찬바람이 쌩쌩 분다. 유난히 춥다. 털 코트를 입고 있어도 매서운 바람이 내 살을 에는 강추위다.

아버지께서 입원을 하셨다.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은 아버지는 절대로 병원은 안 가겠다고 하셨다. 의사가 왕진을 왔다. 쿨록거리는 기침과 뱉어내는 가래는 옆에 있는 사람의 몸도 움찔하게 했다. 결국 입원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연극의 클라이막스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막 내릴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아주 오래 전, 그 어느 겨울에 신나게 썰매를 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군고구마를 드셨을 것이다. 청년이 되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화창한 가을에 어여쁜 여인을 만나 새 보금자리를 꾸리고 빛나는 미래를 설계하셨을 것이다. 연극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어떤 위기를 겪었을까? 두 번의 수술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와의 갈등이었을까?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인생은 오르막에서 오래 머물다가 아주 짧은 순간에 끝났으면 하고 바란다. 위 그래프 같은 인생, 있을까? /픽사베이

지금 아버지의 이 위기 상황은 어떻게 해결될까? 구급차에서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셨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엄마의 눈도 한동안 감겨 있었다. 말이 없었다. 아버지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슬픔에 젖어 있었다. 두 분은 말 없는 가운데 같은 생각을 나누고 계시는 것 같았다. 

인생을 연극이라고 가정해 보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부분에서 나는, 아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금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는 걸까? A는 전개 단계, B는 절정 단계, 그리고 C는 결말 단계. 인생의 출발선에 선 A는 어떤 내용의 극본을 계획하고 있을까? 절정 단계인 B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연기하며 살아갈까? 그리고 마지막 결말 부분에 있는 C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만족한 인생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병원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 때문 아닐까? 의사와 간호사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아버지와 나는 그들의 태연함에 애가 탄다. 병원에서 며칠동안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그때 , 전화가 왔다. 연극을 같이 해보자는 선배의 전화.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병원 침상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픽사베이

회진하고 나가는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아버지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지난번과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폐에 물이 고여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그러니 상황을 지켜 보자. 

폐렴이 위험한 질병이 아니냐고 묻는 나에게 아버지의 상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2주 정도 지나면 퇴원할 수 있다고. (결국 우여곡절을 겪고 5주 후 퇴원하셨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현재 위기 상황은 의료 기술의 힘을 빌어 잘 해결될 것 같았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의사가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고 두 번이나 말했으니···.

그리고 연극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선배와의 연극에 동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