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공연 도중 있었던 돌발상황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관객 반응에 순간 긴장했으나 이사장님의 재치로 넘어가고 멋지게 공연을 마무리했다 "너무 재미있었어"였기를···

2023-09-08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지난 회에서 이어짐)

관객들의 닭 울음소리와 푸드덕 날갯짓 흉내의 경합이 끝나자 해설자가 무대 위에 있는 닭들을 소개한다. 왕초 닭을 제일 먼저 소개한다. “여러분, 닭들은 날지 않는다고 주장하시는 분, 우리들의 왕초 닭입니다.”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 자는 척 누워있던 나는 뒷짐을 지고 거만한 태도로 두 발짝 걸어 나가 손을 들어 턱을 앞으로 내민다.

왕초 닭은 보스로서의 체면을 살리고자 머리를 숙이지 않고 손만 들어서 절도있게 움직이며 인사를 대신한다. 관객들이 박수를 친다. 뒤이어 참모 1과 참모 2가 재빨리 등장하며 대사를 하자 한순간에 관객들이 조용해진다. 이제부터 배우들의 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왕초 닭, 참모 1, 참모 2가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다. 그동안 연습한 모습 그대로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열연한다.

왕초 닭 : “아니 이것들이 워째 지랄이여 지랄이, 잠 좀 잘라니께.”

참모 1 :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 새로 들어 온 녀석이. 그러니까 아까 보고드렸던 살짝 맛이 갔다는 녀석.”

왕초 닭 : “그려 알어, 거 뭐시냐 지가 새라고 했다는 놈? 그런디, 저놈 머리가 살짝 희뜩거린다는 야그는 들었지만 말이여, 워째서 저기에 올라앉아 있는겨? 자네들은 아는감?”

참모 2 : “아예, 그래서 저희가 저놈을 쫓아내려고 지금...”

군데군데 재미있는 대사와 참모들의 굽신거림에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소리가 들린다. 새로 등장한 신참 닭은 닭도 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고 그 소리를 듣는 왕초 닭은 썩을 놈이 개소리한다는 듯 비웃는다. 관객들은 날려다 엎어지는 신참 닭을 보면서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왕초 닭과 신참 닭의 대사를 들으며 전개되는 상황을 눈여겨본다.

닭도 날 수 있다는 신참 닭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무시하던 닭들도 신참에게 설득당한 후, 쉬지 않고 나는 연습을 한다. /사진=김정희

상황 설명을 하는 해설사가 다시 등장하고 사라지자 관객들과 같이 객석에 앉아있던 사육사가 벌떡 일어난다. 그 뒤를 따라 개가 졸졸 따라가자 관객들의 눈이 그쪽으로 쏠린다. 검은 옷에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사육사가 전지용 가위를 들고 어느 관객 앞에 선다.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오늘은 예쁘게 발톱을 손질하는 날이에요”라고 말하자 관객이 양말 신은 발을 내민다. 무대 위에 있던 나는 그 돌발상황에 움찔했다.

왜냐하면 연습할 때 “발톱을 손질하는 날이예요”라는 사육사의 말이 끝나면 손을  얌전히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처음 이 연극을 접한 관객은 사육사의 대사대로 발톱을 깎는 날이라고 하니 발을 내민 것이었다.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을까? 객석에 같이 앉아 있던 이사장님께서 “저 깎아주세요”라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아주 오랫동안 TV에서 연출자로 자리매김한 이사장님은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다는 듯 그렇게 매끄럽게 상황을 이끌어갔다. 무대 위에 있던 배우들은 긴장과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이 드신 웬 할아버지가 아이 같은 목소리로 “저 깎아주세요”라고 말하자 관객들의 시선이 모두 이사장님 쪽으로 향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육사는 가위를 들고 가서 이사장님의 손톱을 깎는 흉내를 냈다. 아니 발톱 깎는 흉내를 냈다. 입으로 “또가닥 또가닥” 소리를 내자 관객 몇몇이 웃었다.

이렇게 관객이 참여하는 연극은 예기치 않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관객의 호응 정도에 따라 그 장면을 조금 더 길게도 가져갈 수 있는 묘미가 있었다. 이사장님의 뒤를 이어 몇 사람 더 손톱을 깎는 사육사의 모습은 아주 스릴 있는 장면이었다. 사육사와 개의 주고받는 대사에서도 재미있는 대사들이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뒤를 이어 닭들이 주고 받는 대사로 연극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참 닭은 열심히 노력하면 닭도 날 수 있다며 왕초 닭과 참모 닭에게 나는 연습을 시켰고, 신참 닭에게 정신 교육까지 받은 닭들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닭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전에 수의사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끝난다.

닭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전에 수의사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진=김정희

해설자의 마무리 대사에 이어 한바탕 춤이 이어지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무대 뒤로 내려온 우리는 활짝 웃으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안도와 기쁨의 순간이었다. 지도 선생님께서 칭찬을 듬뿍 해주셨다.

우리는 90분 또는 120분의 영화를 보고 “어땠어?”라는 질문에 “좋았어! 너무 좋았어.” 또는 “감동이야, 너무 슬펐어, 기대했는데 실망이야. 재미 하나 없었어.” 이 몇 마디 말로 영화를 평한다. 

오늘 우리가 공연한 연극에 대해 “어땠어?”라는 물음에 “시간이 휙 지나갔어. 너무 재미있었어”라고 말하면 성공적인 연극 아닐까! 오늘의 연극이 그러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