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이대남·이대녀가 보는 젠더 갈등
“상대 의견 듣지 않고 대화 주제로 못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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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 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서울 S대에 재학 중인 20대 여성 박모 씨는 1년간 만난 남자친구 김모 씨에게 최근 “남녀가 어디까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김 씨는 “당연히 평등해야 하지만 처지를 바꿨을 때 불공정하면 안 된다”며 “애초에 여학생이 공대에 가지 않고 남학생이 교대를 지원하지 않는다. 성별로 특혜를 주는 건 불평등하다”라고 답했다. 대화를 어물쩍 넘긴 박 씨는 그날 이후로 고민이 많아졌다. 박 씨는 “단순한 견해차 이상으로 다가왔다. ‘김 씨는 나와 내 삶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이대남’(20대 남성)과 이대녀(20대 여성)는 젠더 갈등을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권 직장·대학교를 다니는 20대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인터뷰 결과, 남성은 ‘공정’에 여성은 ‘차별’에 각각 방점을 두고 이 문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20대 여성들은 대체로 “젠더 갈등이 심각한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민정(여·23) 씨는 “이 문제를 한 번도 접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의견이 없는 20대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생 정모(여·22) 씨도 “인터넷을 조금만 둘러봐도 젠더 이슈로 싸우는 걸 쉽게 볼 수 있고, 주변 이성 친구들과도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대다수 남성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반감을 갖고 시작해 관련 얘기를 피한다”라고 했다.
“말하기도 꺼리는 분위기”
젠더 갈등이 첨예하다고 보는 남성도 적지 않다. 권민규(23·고려대 3학년) 씨는 “남녀 간 의견 차이가 만연하다. 그러나 대부분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서로의 의견을 알려고 하지도 않아서 대립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권모(21·서울 성북구) 씨는 “꼭 페미니즘, 반페미니즘이 아니어도 젠더 이슈에 관한 태도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젠더 갈등”이라며 “지역 갈등, 이념 갈등처럼 젠더 갈등은 청년 세대의 주된 갈등이 됐다”라고 했다.
대학생 김모(22·서울 송파구) 씨도 “커뮤니티나 대자보를 보면 이전보다 (갈등이) 심해진 듯하다”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 종사하는 A(여·26) 씨는 “대화 주제로 올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갈등을 서로 체감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젠더 갈등이 과장됐다”라는 반응도 있다. 대학생 김인엽(24·통일외교안보 전공) 씨는 “지난 대선에서 20대 남녀의 표가 갈린 것도 양 진영의 갈라치기가 선행했고 뒤따라 젠더 갈등이 등장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광고업에 종사하는 임승찬(22·서울 강남구) 씨는 “극단에 있는 소수가 격하게 갈등하고 있고 이것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젠더 갈등이 청년의 주요 의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B(28) 씨도 “페미니즘은 온라인상에서 극성을 떠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커뮤니티에서 갈등 심해져”
여성 대부분은 구조적인 남녀 차별 문제에 주목한다. 김민정 씨는 “이성 연인은 여성에게 불합리한 일들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본 적이 없어 공감을 못 하고, 그게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안 간다. 그런 차별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C(여·27·서울 양천구) 씨는 “여자인 친구들이 모이면 페미니즘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최근에는 지인으로부터 직장 상사가 모두 남자라는 말을 듣고 아직 유리천장을 부수기는 쉽지 않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여의도 직장인 D(26) 씨는 “주변 친구들이 ‘여자친구가 젠더 갈등으로 인한 남성 혐오 감정을 지니고 있다’ ‘여자친구로부터 존중감을 못 느낀다’라는 고충을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상당수 남성도 공정성 문제 등으로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몇몇 이대남은 군 복무로 인해 여자보다 취업에서 큰 불이익을 당한다고 느낀다. 또, 공공기관이 여성 우대 성별 할당제를 시행하는 것을 역차별로 생각한다. 임승찬 씨는 “성별 간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내게 비합리적인 차별을 해소하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민규 씨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해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여성 인권이 올라간다고 해서 반대급부로 남성 인권이 낮아지는 게 아니다. 남성의 인권이나 삶의 질도 훨씬 좋아질 것”이라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잘 몰라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20대 남녀의 교제까지 막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E(여·25) 씨는 “페미니즘 지지 여부가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F(21) 씨도 “갈등이 있다는 이유로 만남을 피한다면 갈등에 지나치게 매몰된 탓”이라고 했다.
“정치 성향과 비슷”
하지만 젠더 갈등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남녀관계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대학생 최은주(여·23·서울 강남구) 씨는 “정치 성향과 비슷하다. 나와 정치색이 다르다는 게 연애에 큰 문제는 아니지 않으냐? 투표도 비밀 투표다. 굳이 젠더 문제에 입장을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나 성격만 맞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모(22) 씨도 “직장 상사와 정치 얘기를 하지 않아도 소통에 문제가 없고 잘 지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 사회교육과에 재학 중인 G(여·23) 씨는 “연인과 성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눴다. 의견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다. 공통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권민규 씨도 “연인관계가 오래 이어지려면 젠더 문제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윤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