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 더봄] 멜론 농사에 도전했다 실패···원인은?

[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이웃의 남은 묘종 심었다가 잎이 타들어가 2/3가 사라져 알고 보니 바이러스에 감염 포기 않고 정성을 쏟았더니

2023-08-11     정진권 남인수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나는 올해로 고향 진주에서 3년 차 귀농생활을 하고 있다. 농사일은 어릴 적에 어머님이 하시던 일을 주말이나 방학 때 내려와서 도와드렸던 기억이 다다. 서울에서 작은 텃밭 가꾸던 그 실력으로 고향 땅에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다는 일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의 판단과 행동이 무지였는지 용감했던 건지 구별이 잘 안 간다.

나는 늙어서 도시에서 할 일 없이 빈둥빈둥 지하철이나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싫었다. 그래서 귀촌해서 벼농사나 지으면서 노후를 보내려고 낙향을 결심했는데 행운이었는지 아내가 동행해 주었다. 아내는 다니던 직장도 정리하고 내려와 하우스 농사를 해보겠다고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고향 친구의 권유로 멜론 농사를 짓기로 했다. 친구가 멜론 농사를 아주 잘 지었다는 그 믿음 하나만으로 5월 25일 멜론 모종 600주를 심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겨울에 하는 호박(주키니) 농사는 두 번을 했다. 첫해는 늙은 모종을 땅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심었었는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인근에 사는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도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나도 처음으로 짓는 농사에 큰 역할을 해 주었던 호박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마지막으로 호박을 처리할 때는 재를 올려 주었다. 작년 겨울에는 호박 가격이 얼마나 많이 치솟았던지 이삼십 년 하우스 호박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도 이런 경사는 처음이라고 하였다.

봄철에 시작하는 오이 농사도 올해로 두 번째이다. 작년 가을에도 오이 농사에 도전했었는데 노균병이 온 것을 알지 못해 방재를 망설이다가 단 며칠 사이에 하우스 전체에 병이 번져서 작물 수확에 실패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식물에는 좋은 균과 나쁜 균이 항상 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식물에 좋은 균이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뛰어난 농부가 아닐까.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누구에게나 암 인자가 있고 시시각각 암이 발생하지만 몸의 주인이 암이 생존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느냐 암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느냐에 따라 암 환자가 되기도 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삶과 죽음도 우리가 영위하는 삶 속에 이미 죽음이 내재하여 있다고 본다. 식물의 푸른 잎들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드는 것은 원래 그런 색상이 푸른잎 속에 내재되어 있다가 가을철이 되어 환경 조건이 변함에 따라 푸른색은 사라지고 붉고 노란 색이 드러나는 것과 같이···.

아내가 비닐하우스에서 멜론의 모종을 심고 있다. /정진권

두 번째 오이 농사에서도 바이러스로 실패도 하고 그나마 성공도 했다. 성공이라고 해 보아야 고작 우리가 노력한 인건비를 건졌다는 것이다. 농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지은 농산물에 대한 가격 결정 권한이 거의 없다. 농민들은 농사일의 70%는 하늘(햇빛)이 지어주고 수입은 정부의 수매가나 서울이나 각 지역의 경매장에서 매일 정해지는 시장의 가격이 결정한다고 여긴다.  

농부들은 아주 단순하고 무척 순수하다. 순수하지 않으면 농부가 될 수가 없을 터이다. 그리고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절대 남의 탓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살아간다. 대부분 농민은 땀 흘려 일하고 그 노력의 대가를 받기를 원한다. 물론 시설하우스도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사업으로 크게 벌여서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국인이라면 도시에 살거나 어촌에 살거나 농촌에 살거나 혹은 직업이 광부든 그 어떤 직업이든지, 또 지역적으로 어느 지역에 살든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대중매체를 공유하고 사니까 모두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고향에 와서 어린 시절 알던 동네 분들과 또 어릴 적 친구들과 생활하는데도 나는 가끔 너무나 딴 세상에 온 느낌을 종종 받는다.

웬만큼 자란 멜론 나무. 왼쪽 고랑에는 살아남은 나무가 몇 그루 되지 않는다. /정진권

고향 친구의 권유로 멜론 농사를 짓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멜론 농사에 완전 실패했다. 친구가 멜론 농사를 아주 잘 지었다는 그 믿음 하나만으로 5월 25일 멜론 모종 600주를 심었다.

사람이 잘사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고 가난하게 사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실패한 첫 번째 이유는 농사지을 멜론에 대해서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실패 요인은 더운 여름날 모종을 심으면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에 심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우리의 잘못은 멜론은 40도가 넘게 아주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만 듣고 더운 여름날 하우스 문을 닫아서 매우 고온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모종을 육묘장에 주문하거나 직접 키워서 심은 것이 아니라 인근 어느 농부가 심고 남은 늙은 모종을 사서 심었다는 것이다. 멜론은 원산지가 북아프리카라서 물을 싫어하는데 나는 오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물을 많이 주었다거나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다.

멜론의 잎이 타들어가기 시작하자 나와 아내의 입술도 타들어갔다.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진권

모종을 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린 멜론의 잎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불안하니까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는데 나라고 아는 바가 있을 리 없었다. 대부분의 잎이 노랗게 변하고 말라가기 시작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600주 중에서 400주가 사라지는 판이었다.

나와 아내는 모든 정성을 다 들였지만 하루하루 입술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정성과 노력도 아랑곳없이 멜론은 맥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서 나는 경상국립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의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마침 당시에 멜론에 대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우리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멜론의 사진을 찍어서 문의를 드렸더니 교수님께서 바로 답을 주셨다. “이것은 바이러스입니다. 멜론은 거의 과실이 완성될 때도 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도 올해 봄에 이 바이러스로 자신이 관리하는 농장의 멜론이 전부 죽었다고 하셨다.

이 바이러스는 원래 뉴질랜드에 있던 병균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전 세계로 전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치료 농약은 없고 예방 농약만 있는데 그 농약도 100% 보장이 없단다.

보통 농부들은 이런 상황이 생기면 바로 농작물을 갈아엎는다. 그런데 나는 아내에게 이것으로 우리가 공부를 해보자고 제의했다. 훌륭한 권투선수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상대방의 주먹을 맞는 순간까지도 확실하게 본다고 한다. 이런 권투선수처럼 우리도 바이러스가 원인인 이 병의 진행 상황을 끝까지 관찰해 대처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현재 8월 8일, 앞으로 마지막 출하가 약 보름 정도 남았는데 우리에게 남은 멜론 나무는 50주가 채 안 된다. 그나마도 제대로 상품이 될 만한 나무는 20주(3%)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와 아내는 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멜론 나무들을 정성껏 돌보아왔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내는 뜨거운 하우스 안에 들어가 멜론을 돌보고 있다.

수확을 앞두고 있는 현재 멜론 나무는 50주가 채 안 된다. 600주를 심어 50주라면 10%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정진권

농부라는 직업은 일이 끝이 없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그날의 일손을 놓는다. 때로는 아내도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밤에도 전등을 켜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농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산 너머로 동이 틀 무렵에 동녘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 하루를 시작하는 농부의 가슴이 뛴다. 그리고 일과를 마치고 저녁노을을 보면 붉게 물드는 석양은 마치 신이 나에게 오늘 고생했다고 위로를 해 주는 듯하다.

나는 멜론 농사에 실패했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되새긴다. 나는 긴 여정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실패를 하였다. 실패를 하고 나서 반성하고 참회하는 과정에서 인생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가족이나 내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어질고 자비스러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나는 때로는 ‘내가 정말 성공만 하고 살아왔더라면 과연 이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놀라곤 한다. 

우리들은 기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 등등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간다. 비록 멜론 농사는 실패했지만 그것이 나나 아내에게, 혹은 우리를 바라보는 주위 분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서도 매일 하나씩 죽음을 맞이하는 멜론에 대한 애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다. 처음 만나는 그 순간에 이미 이별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
잘 가거라, 멜론들아!
너희가 함께 있어 주어서 행복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