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지금 한국 정치는 최악? 강민석, "발전하는 중인 걸요"

'뇌물 정치'에서 공정 요구하는 '2류 정치'로 갈등의 시대, 여야 공존 '까치밥 정치' 실현해야

2023-08-07     김미리·반유진·우동현

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 개설된 미래뉴스실습 강좌에 수강한 학부 학생들이 작성한 기사를 연재합니다.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양선희 미래뉴스실습 책임교수의 지도하에 한 학기 동안 취재하고 쓴 기사들입니다. 양 교수와 학생들은 '업커밍(Upcoming)'이란 잡지도 발행했습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양 교수와 학생들의 동의를 받고 학생들의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는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 /반유진

전 청와대 대변인 강민석은 정치 낙관론자다. 그는 문민정부 시절부터 29년간 정치부 기자였고 2020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으며 지금은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이다. 그는 왜 낙관론을 내세우게 됐을까? 서울대의 한 강의실에서 강 대변인의 말을 들어봤다.

 

정치가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1.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128억원의 잔액이 찍힌 예금 잔액 조회 전표를 세상에 공개했다. 그는 이 전표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주장했고, 이 소식은 단숨에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이 장면을 필두로 '노태우 비자금 공화국'의 전말이 속속 밝혀졌다. 검찰 조사 결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그마치 46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으로부터 이권을 약속하고 받은 뒷돈이었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비자금이 밝혀진 것은 금융실명제 덕분이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실명으로만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덕에 불법적 자금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스캔들은 뇌물 정치의 시대가 저물어 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보다 투명한 정치를 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2. IMF 외환 위기 직후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DJ) 정부 시절이었다. DJ는 당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대한민국을 다시 살릴 방도가 없겠습니까?" 두 사람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브로드밴드라고 답했다. DJ는 흔쾌히 동의한 후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브로드밴드가 무엇입니까?" 당시만 해도 DJ는 브로드밴드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DJ 정부는 임기 내내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해 나갔다. 덕분에 DJ가 취임한 당시 약 1만명이었던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는 그가 퇴임할 때쯤 약 1000만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국가적 위기에 맞선 지도자의 결단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IT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빌 게이츠가 청와대에서 접견하는 모습 /국가 기록사진

갈등 심각한 지금, 정치 진보 증거는?

그래도 지금은 공정을 요구하고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비자금 공화국' 시절에는 어떤 언론도 공정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공정은 시대 정신이 됐다. 노태우 비자금이 밝혀지던 때가 보여주듯 한국 정치는 정반합적으로 발전해 왔다. 어느 시대에나 모순은 존재한다. 정치의 모순이 극대화될 때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에 의해 부정의가 해결된다. 이러한 과정 덕에 대통령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던 시절의 '낙제점 정치'에서 그래도 2류쯤은 되는 오늘날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모순적 갈등의 발생과 그 해결이 서로 꼬리를 무는 정반합의 과정이 정치 발전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이다.

 

정치 발전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하나

1987년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뤄진 해다.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로의 개헌이 이뤄지며 당시의 시민들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그러나 이 '87년 체제'도 시간이 지나니 낡은 제도로 전락해 버렸다. 지금의 헌법이 오늘날의 문제 상황 해결에 유효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은 더 이상 민주화가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세대・성별 등의 심각한 갈등이 쟁점이 됐다. 이 해결책으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이 논의되지만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개헌을 위한 3분의 2 의석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소선거구제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중·대선거구제를 추진하는 것은 더욱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혁이 필요한 시점은 맞다. 오히려 이 모순이 더욱 심화한다면 그 반작용으로 국민 주도의 개헌이라는 과정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까치밥 정치'다. 까치밥은 감나무의 감을 다 수확하지 않고 하나씩 남겨 까치들이 먹도록 하는 시골의 풍습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여당과 야당은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공존의 가치 실현이라는 까치밥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정치 문화가 형성돼야 한국 정치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기자방담]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 기자들의 생각은?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의 한국 정치 진단은 '정반합적 발전에 대한 낙관론'과 '공존의 메시지'로 간추릴 수 있었습니다. 강 대변인의 인터뷰 후, 기자방담으로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Q1. 정말 한국 정치가 나아지고 있을까요? 강민석 대변인의 낙관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리: 개인적으로 강민석 대변인의 낙관론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입니다. 그의 말처럼 비리와 부패 측면에서는 한국 정치가 확실히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덧붙이자면, 정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민의 정치권 감시가 더 활발해졌다는 측면에서 낙관론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진: 저는 한국 정치가 부분적으로는 나아지고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많이 해결됐지만, 사회 양극화 현상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는 나아진 게 없어요. 양극화 현상이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에 비해 정부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죠. 오히려 양극화를 정치에 이용해 표를 얻는 모습을 보면, 정치가 발전 중이라고 단언하기 힘든 것 같아요.

동현: 저도 정치제도와 문화는 조금 비관적으로 평가하고 싶어요. 양당의 지대 추구 행위를 제어하기가 어렵고,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거대 양당이 경쟁만을 위한 경쟁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사법적 투쟁, 팬덤 정치, 상대 당의 악마화, 위성정당 창당 등은 대리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지 못한 정치인들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정치 풍토라고 생각합니다. 

Q2. 개헌, 중대선거구제 등 강 대변인이 제시한 해결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리: 개인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에 매우 공감하고,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된 것으로 보여요. 한국리서치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국민은 무려 70%였어요. 하지만 현 상황에서 당장 개헌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서 개헌은 시대적 과제라기보다는 정파 싸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개헌에 필요한 200석 충족이 요원하기 때문이에요. 선거구제 개편 역시 지역 구도 해결이라는 근본적인 목표보다 정쟁에 이용되고 있어 유감입니다.

유진: 지난 총선에서 문제가 된 위성정당 창당을 막기 위해선 이번 선거제 개편 논의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진지한 고민에 기반한 토론과 타협이 보이지 않아 시간에 쫓기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되네요. 또 제8회 동시지방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했으나 양당 집중 현상은 개선되지 않았어요. 물론 시범 실시 지역이 몇 안 되기 때문에 이 결과를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개편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동현: 위성정당에 대한 국민 여론으로 인해 선거제 개편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지게 될 것으로 보이고,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당들에서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선거제 개편에 포함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중대선거구제 자체가 좋은 해결 방안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어요.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구제에 비해 선거구가 커지고 후보가 많아지는데요. 이에 후보자에게 필요한 선거 비용이 높아지고 유권자가 후보를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돈이 많거나 이미 유명한 후보가 더욱 유리해지는 거죠. 뿐만 아니라 같은 당의 후보 간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정책보다는 개인 중심의, 보다 사적인 형태의 선거 운동이 나타나고 당내 파벌 경쟁이 심화될 수도 있어요.

Q3. 지역 갈등의 영향력은 오늘날 여전하다고 생각하세요? 이외에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갈등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미리: 저는 전통적인 영호남 갈등은 많이 사라졌다고 봐요. 다만 서울-비서울 간의 지역 갈등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각종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며 '서울공화국', '지방소멸론' 등의 단어가 나온지도 오래잖아요. 지방은 열악한 의료 여건 및 문화시설, 적은 인구, 낮은 재정 자립도 등으로 인해 살기 힘든 곳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고 봅니다.

유진: 지역갈등도 문제지만, 요즘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성 갈등인 것 같습니다. 당장 SNS나 기사 댓글만 보더라도 성별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성별과 엮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하지만 강 대변인의 말씀처럼 모순이 극대화되어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면 남녀가 서로를 향해 갖고 있던 불만과 분노의 표출이 극대화되었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현: 사실 갈등 구조 자체는 그 형태만 달라질 뿐 항상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저는 갈등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으로 보는 입장에서, 존재해서는 안되는 영속적인 갈등 구조가  지금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대 갈등의 경우에도, 세대 간 가치관이 같기는 어렵기에 항상 어느 정도는 존재합니다. '요즘 것들은~'으로 시작하는 말들은 언제나 있었다는 거죠. 같은 맥락에서, 'MZ 세대'와 '꼰대', 각각의 워딩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들도 보다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의 등장에 따른 사회적 논의의 부산물이지, 서로 좀 익숙해지면 이런 식의 세대 갈등은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Q4. 강민석 대변인은 한국 정치의 과제를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했죠.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의 과제를 키워드 한 마디로 정리해본다면?

미리: 한국 정치인들에게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인이 공천권과 득표에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쟁보다는 정의를 우선 고려하는 일말의 진정성을 보였으면 해요.

동현: 저는 '밀착'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싶어요. 요즘 국민들은 정치가 내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정치인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제시해 높은 무당파 비율을 줄여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진: 저는 '대응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이나 정책에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는 안 되고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미리 서울대 사회학과 학생

반유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학생

우동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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