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바이든의 방만한 국가 예산 운용에 빨간불 켠 피치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국채 신용등급 'AAA→AA+' 하향 긴축 재정으로 건전성부터 찾아야 미국발 세계 경기침체 강타 우려
사람의 혀는 칼끝보다 위태로우니 조심하라 했다. 또한 성경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하고 비방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타인의 평판을 깎아내릴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회사는 경영과 역사로부터 쌓아온 명성을 중시한다. 그 명성이 자사 제품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명성과 재무적 실적이 어우러져 신용도가 된다. 신용도가 낮으면 자금을 마련할 때 차입비용이 커진다. 그만큼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회사의 신용도는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점수로 매겨지고 수시로 점검된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신용평가기관은 회사가 투자자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시장에서 발행한 채권에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그 회사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평가로 A+로 시작하는 학점을 받듯이 회사의 채권은 신용도에 대한 평점으로 AAA로부터 내려가는 신용등급을 받게 된다. 특히 미국 채권시장에서 신규 채권을 무난하게 발행하려면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S&P·피치 중 한 곳의 등급을 받아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자국 통화가 아니라 달러화나 외화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면 이들 3대 평가기관으로부터 양호한 신용등급을 받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국가가 외화 채권을 직접 발행하지 않을 때도 국가신용등급은 큰 의미를 가진다.
그 나라 금융기관과 기업의 신용도가 국가신용등급을 바탕으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대개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신용등급은 국가 등급보다 아래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신용평가기관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이들에게 자국의 건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들 신용평가기관은 과거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전에는 위험도가 큰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기반한 주택저당채권(MBS)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해 빈축을 샀다. 이들 MBS가 부도나면서 금융위기가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용평가기관은 뒷북을 잘 치기로도 유명하다. 회사나 국가의 신용도가 안에서부터 곪아 갈 때는 팔짱을 끼고 유유자적하다가 눈에 띄게 실적이 악화하거나 유동성 문제가 생긴 후에야 경고하고 신용등급 강등에 나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뒷북 치기 강등하고는 그 강등을 합리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추가 신용등급 낮추기에 나선 적도 많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나 금융위기를 겪은 많은 국가들이 이들의 뒤늦은 칼부림에 큰 피해를 보았다.
이들의 과거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과거 2008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베어스턴스나 최근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도 무디스 다운그레이드(downgrade, 강등)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금융시장 파워를 자랑하는 미국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신용도는 어떨까? 주지하다시피 미 국채는 부도 위험이 거의 없다. 채권의 원리금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 채권을 발행해 시장에 팔아 받은 돈으로 그 원리금을 상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 채권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을 경우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 미 채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정성이 높은 금융자산으로 널리 인식되어 있다. 미 국채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미 국채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그때는 중앙은행인 연준이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찍고 그 돈으로 국채를 사들이면 된다. 물론 연준이 직접 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는 데는 법적 문제가 있다. 따라서 연준이 시장에서 다른 국채를 증권사로부터 사들이고 그 증권사들이 연준이 발행한 신규 채권을 소화하면 된다.
부도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미 국채의 신용등급은 트리플-A, 즉 AAA일까? 그렇지 않다. 무디스는 미 국채에 트리플-A 등급을 부여해 변경하지 않고 있지만 S&P와 피치는 AA+로 등급을 낮췄다. 특히 피치는 최근에 미 국채 신용등급을 강등시켜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미 국채가 건전성이 높은 독일·덴마크·네덜란드 등 선진 유럽 국가 채권보다 신용도가 낮을 수는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민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존슨앤존슨의 채권도 미 국채보다 높은 트리플-A 등급이다. 대체 무엇이 미 국채의 신용도를 이 기업보다 아래로 떨어뜨렸을까?
피치가 미 국채를 다운그레이드하면서 든 신용등급 강등의 주된 요인으로 꼽은 것은 누적된 미국의 재정적자와 악화 일로를 겪고 있는 부채 문제다. 미국의 재정수지는 2차 대전 종전 후 1950년대까지는 대체로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베트남전쟁과 사회 보장 비용으로 인한 지출이 증가하며 재정적자가 누적되기 시작됐다.
1980년대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기업적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1990년대 말에는 예외적으로 재정수지가 잠깐 흑자로 돌아섰다. 균형재정의 중요성을 간파한 빌 클린턴 행정부의 노력 덕택이었다. 전후 최장기 호황도 재정 흑자를 도왔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으로 재정적자가 심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으로 인해 적자 폭이 가파르게 커졌다. 그 이후 적자 폭이 다소 줄어들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정책과 코로나 팬데믹 당시의 경기부양으로 적자 폭은 미 GDP(국내총생산)의 15%까지 늘었다.
이는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적자 폭을 월등히 상회하는 수준으로 2차 대전 당시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재정적자였다. 문제는 팬데믹이 거의 끝난 2022회계연도에도 재정적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인 GDP의 5%를 상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피치는 미 재정적자가 2023 회계연도에는 GDP의 6.3%로 늘어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국가 채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팬데믹 당시 미국 나랏빚 규모는 한때 GDP의 135%까지 늘어났다. 현재는 GDP의 119%로 하락한 상태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현재 미국 정부 빚은 32조70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2033년까지 이자 비용만 GDP의 3.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렇게 재정적자와 나랏빚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원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방만한 예산 운용에 있다. 나랏빚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의 신조로 무장한 진보세력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랏빚은 당연히 걱정해야 한다.
현재 빚을 당겨서 쓰면 미래세대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진다. 국채가 채권시장을 점령하면 민간기업이 채권을 팔 공간이 사라진다. 가뜩이나 경제의 중추인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있는 마당에 국가마저 되는 대로 빚을 내 흥청망청 써버리고 있으니 국가 전망이 좋을 리 없다.
피치는 저간의 이런 사정을 감안해 다운그레이드한 것이고 그것은 시의적절했다. 무엇보다 피치가 약한 톤이나마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 주식시장의 랠리에 고무돼 장밋빛 유포리아에 갇힌 투자자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매우 심각한 미국발 경기침체가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전 세계를 강타할 가능성이 크다. 유의할 시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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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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