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귀농인은 작목 선택, 귀촌인은 농법 선택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귀농인은 영농에 대한 경영전략 수립부터 시작해야 자급자족 목적인 귀촌인은 생태친화적 농법 관심을
얼마전 예전 직장의 후배들을 만났다. 십수 년만의 만남이었지만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들인 듯 그간 별일 없었냐는 인사말을 짧게 끝내고 예전과 똑같이 웃고 떠들었다. 신기하다. 친구란 이런 것인가 보다. 오래전 함께 했던 추억들을 보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역시나 나의 직업 때문인지 귀농귀촌에 대한 호기심이 질문으로 이어졌다.
회사를 그만두면 농촌으로 가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우리 남편이 농사를 너무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뭘 준비해야 하나요?
귀농귀촌을 하면 돈이 되나요?
늘 하던 상담 내용이라 척척 대답을 해주었는데 마지막 질문의 답만큼은 반응이 조금 심드렁했다.
“귀농귀촌은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란다.”
“그러면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다들 오십을 넘긴 나이인지라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귀농귀촌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물어보니 지금보다는 여유로운 삶이 필요해서란다. 그리고 지금 수준의 소득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단다. 여유롭게 사는데 돈도 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반대의 경우는 많이 보았다. 무지하게 바쁜데 돈을 못 버는 삶이 있다. 그래서 백수가 과로사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바쁘고 퍽퍽한 도시에서의 삶보다 자연에 가까운 농촌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분명 늘었다. 그럼에도 귀농귀촌 인구가 확실하게 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귀농귀촌의 삶도 마냥 느긋하기만 하지 않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참 바쁘다. 귀농귀촌인들은 더 바쁘다. 귀농귀촌을 처음 하면 무척 바쁘다. 뭘 몰라서 그런 거다. 익숙하지 않은 초보이기 때문에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그래도 뭐든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으니까 스스로 위로한다. 실패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무언가를 몇 번 하면 노하우가 생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아쉬운 게 하나 있다.
귀농귀촌도 역시 새로운 창업이다. 작목을 선택해서 경작하고 소득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잘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다. 여유롭게 사는데 돈을 버는 삶에 가까워진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작목 선택이 중요하다. 작목 선택 과정을 나열했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어렵다. 결과는 농사가 끝나봐야 알기 때문에 작목 선택은 무척 어렵다.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건 어떤 작물이 돈이 되는가이다. 출발점이 돈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 돈이 될지 안 될지는 나중에 수확하고 팔아 봐야 안다. 농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농사는 로또같이 보인다. 어떤 농부의 작물이 대풍작이라 하면 사람들은 그에게 축하하겠지만 그는 속이 탄다. 대풍작이 그저 좋아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풍작은 오히려 가격폭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 어려운 문제이다.
귀농자와 귀촌자는 심는 작물이 다르다. 귀농자는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물 선정과 더불어 영농에 대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시작해야 한다. 작물의 시장성, 유통 상황, 수입농산물 대체 여부, 지난 3년간의 가격 동향 등을 살피면서 가야 한다.
귀촌자의 경우는 사정이 좀 낫다. 판매보다는 자급자족이 목적에 더 가까우므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나는 귀촌자에게 작목 선택보다는 농법 선택을 권유한다. 특히 생태농업을 권유해 준다.
생태 농업은 자연의 다양성에 기초하여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종자와 식물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생태 친화적으로 수분하고 해충을 제거하는 것이다. 쉬운 예가 혼작이다. 여러 가지 작물을 섞어 심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게 대체로 20가지 정도라고 하는데 이걸 한 밭에서 같이 심어서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식물끼리 서로 잘 자라고 벌레도 잘 안 끼고 물도 아낄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먹을게 다양해지니까 좋다. 여기에 닭 몇 마리 같이 키우는 것이다. 내다 팔 게 아니니까 부담 없다. 닭과 농작물의 입장에서는 생태적으로도 매우 좋다. 닭이 벌레를 잡아먹고, 닭의똥은 작물의 양분이 된다. 어떤가?
영농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3년에서 5년이 걸린다고 보통 이야기한다. 첫해에는 수확의 변동이 심하고 둘째 해에 수확이 좀 잡힌다 싶다. 그렇지만 3년 차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4년 차 이후부터는 평균 작황이 나오게 된다. 청년농들에게 3년간 기본소득을 지원해 주는 이유도 3년간은 영농기술이 확 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밭작물 다르고 과수 다르고 버섯 다르고 축산물 다르니까 한 분야를 습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선택이 신중해진다.
전업농은 경영 자금과 판매량에 따라서 재배면적을 결정하고 투입되는 노동력을 결정해야 한다. 노동력은 재배면적에 따라 달라지고 작목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1년 내내 사람을 쓰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을 집중적으로 써야 할 시기가 있는데 시골은 사람 구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인력 수급이 어렵다.
작업 시기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니까 적당한 양의 작물을 심어야 한다. 대략 500평 정도면 부부가 사람 안 쓰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필리핀 가정부를 200만원에 고용해서 쓸 수 있다면서 외국인 가정부를 소개하는데 농촌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이다. 농업에 투입될 외국인 노동자 소식은 왜 안 나올까.
역시나 지역적 특색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별로 특화된 작목이 있다면 훨씬 선택하기가 수월하다. 지역 특산물은 지역 주민들이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또 판매가 잘 되고 있기 때문에 부담 없다.
다시 직장 후배들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들 모두 귀농귀촌은 안 하기로 했다. 지금의 삶이 아직은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대신 생태농업은 해 보기로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상추를 심어 보고 주말농장에 나가는 남편을 따라 혼작을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장을 볼 때마다 식재료의 원산지와 재배 방식을 유심히 보기로 했다. 농촌에 가지 않더라도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방법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