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주 아이파크·인천 검단 붕괴 책임 건축사가 LH 뼈 없는 아파트 감리

다양한 형태라 국토부 설계 탓 해명 부족 광장건축사무소 이번에도 감리로 참여 LH 전관 감리업체 재취업해 영향력 행사

2023-08-02     이상헌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달 30일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공공분양 아파트 보강철근 누락 등의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15곳의 부실 공사 원인이 설계와 철근 배근 문제 때문이라는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가 단순히 설계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LH를 중심으로 하는 이권 카르텔이 부실 공사 현장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2일 여성경제신문이 LH 전자조달시스템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38층 외벽이 무너져 근로자 6명이 사망한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감독·관리 책임이 있는 광장건축사무소가 이번 LH 발주 공사 아파트 두 곳의 감리를 맡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 아니라 올해 4월 지하 주차장 붕괴로 충격을 안겨준 인천 검단 신도시 건설사업관리용역 업체로 참가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 설명처럼 단순한 실수에 따른 철근 배근 누락이 아니라 하청업체 등이 감리 업체와 짜고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고의로 빼먹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또 더 나아가 LH 현장뿐 아니라 전국 곳곳 공사 현장의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는 앞서 철근(전단 보강 근)이 빠진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 15곳은 모두 '무량판 구조'로 설계됐다고 밝혔다. 무게를 버티는 보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받치는 무량판 구조는 설계와 시공을 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부주의하고 안일한 작업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철근 누락 사태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원희룡 장관이 지난 5월 2일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 지하 주차장 붕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조 설계'는 건물에 작용할 수 있는 각종 하중을 계산해 각 부위가 하중을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번에 적발된 15개 단지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개 단지가 이를 누락하거나 계산을 잘못해 철근을 빼먹었다. 가장 심각한 양주 회천 A15 단지의 경우 지하 주차장 무량판 기둥에 하중을 버티기 위한 보강 철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계산을 아예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 154개 무량판 기둥 중 154개 전부에 보강 철근이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파주 운정 A34 단지와 수서역세권 A3 단지, 파주 운정3 A23 단지 역시 설계 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 해당 구간의 구조 계산을 누락하는 바람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양산 사송 A8 단지는 구조 계산 과정에서 보강 철근을 넣어야 하는 범위를 잘못 적용해 기둥 241개 중 72개에 철근이 누락됐다. 인천 가정2 A1 단지는 철근의 크기를 잘못 적용해 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 무량판 기둥 123개 가운데 82%에 달하는 101개에 철근이 빠진 음성 금석 A2 단지와 302개 기둥 중 126개가 누락된 남양주 별내 A25 단지의 경우 현장 근로자들이 다른 층 도면을 보고 철근을 배근해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장건축사무소는 지난 2019년 12월 착공을 시작한 충남도청 이전 도시 RH11과 오산 세교2 A6에 대한 감리를 진행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부실 공사에 대해 전수 조사를 원희룡 장관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다양한 형태의 부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지하 주차장에 한정된 조사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국내외 아파트 및 플랜트 설계 경험을 보유한 한 건설사 전문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통 공사장 입구에서 샘플을 뜨고 타설을 진행하는데 여러 가지 부실 가능성이 나타난 만큼 설계 탓으로 돌리긴 어려워 보인다"며 "샘플 테스트를 통과한 뒤엔 전반적인 관리가 되지 않는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면 중동에 메이저 오일 컴퍼니는 감독관이 수행할 모든 절차가 단계별로 정해져 있어 따르지 않을 경우 레미콘 트럭을 돌려보낸다"며 "근로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붕괴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를 참고해 원인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이 붕괴해 내려앉은 모습 /연합뉴스

지하 주자장 전수조사 조치로는 역부족
샘플 통과하면 다음은 무조건 OK 구조
LH 전관 업체 부실 감리 집중 조사 필요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38층부터 외벽 붕괴가 시작된 광주 화정아이파크의 경우 시공 방식이 설계와 다르게 무단으로 변경되면서 하중의 전달 경로가 바뀌었고, 3개 층에 걸쳐 있어야 하는 가설 지지대가 조기에 철거돼 연속적인 붕괴를 초래했다. 또 여기에 콘크리트 원재료 불량에 시공 부실까지 겹쳐 강도가 기준에 크게 미달했다.

결국 전체적인 시공관리를 부실하게 진행한 원도급사인 현대산업개발 해당 201동을 포함해 8개 동 전체를 전면 철거한 후 재시공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현대산업개발에 영업정지 6개월과 4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광장건축사무소도 감리 부실 책임으로 경기도지사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도 수주받은 기존의 공사는 진행할 수 있기에 부실 감리 업체가 부실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는 형국이 연출됐다.

국토부는 전관예우, 불법 하도급 문제, 발주·설계·시공·감리 등의 봐주기식 감독과 공사, 건설노조 불법 행위 등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고 집중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감사원이 2016년 1월부터 2021년 3월 사이 LH에서 3급 이상(차장급)으로 퇴직한 604명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 실태’를 감사한 결과 LH와의 계약 실적이 있는 회사에 재취업한 사람이 304명에 달했다.

2022년 6월의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LH 내부 심사·평가위원 59명이 2276억 원 상당의 58개 용역 관련 심사에서 재취업 퇴직자와 사전 접촉을 했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았고, 설계 공모 심사 외부 심사위원이 업체의 사전접촉 사실을 신고했으나 해당 업체에 경고장을 발급하는 데 그친 사례도 있었다. LH 퇴직자 절반이 LH가 발주한 설계, 감리회사에 몸담으면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셈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광장건축사무소 내 LH 전관 재직자 수는 총 4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LH가 퇴직자가 대표이사, 이사, 감사 등으로 재직하고 있는 업체와의 수의계약금지 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고 심사평가 위원을 모두 외부 위원으로 선정하도록 규칙을 개정했으나, 이는 실효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