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엄마는 시간표가 없다
유현숙 <엄마의 방> 연재 11화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시간 계절도 잃어버려 매번 옥신각신 수십 년 전 속 시간에 사는 엄마 생각이 곧 현실인 뒤죽박죽 인식
엄마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했다. 그러다 보니 삶의 시간표는 사라졌다. 어쩌면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고 있는 듯했다. 치매 시간이 오면 밤도 낮도 새벽도 없이 행동한다. 왜 하필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할 나의 제2의 사춘기, 갱년기에 엄마에게 치매가 왔을까? 슬픈 갱년기에 더 슬픈 내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이제 배려 따위는 없다. 본인의 본능만 남았다. 내가 슬픈지 기쁜지 속상한지 따위는 엄마 사전에 없다. 내가 아파도 관심이 없었다. 동생들마저 내가 아픈 이유가 운동 안 하고 몸 관리를 못 해서라고 할 때는 다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맑은 정신보다 치매 시간이 점점 깊어져 갔다. 그만큼 내 힘든 시간도 늘어갔다. 엄마와 만든 옥상 정원에 올라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일도 내 일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귀찮다며 다 네가 하라고 했다. 그리고 블루베리 나무가 열매도 안 맺는다며 구박했다.
엄마에게는 예정된 시간표도 없고 현재의 시간표도 없었다. 엄마도 혼란스럽겠지만 바라보는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한여름에 갑자기 스토브(난로)를 켜놓고 겨울 이불을 꺼내 덮었다. 너무 추워서라고 했다. 스토브는 불이 날 위험이 있어 감춰뒀는데 꼭 다시 꺼내왔다.
“엄마, 지금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야 해요.”
“네가 미친 거 아냐? 이 추위에 왜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틀어. 그 여름 원피스는 왜 입은 거야? 삼 먹고 열났냐?”
엄마의 머릿속 계절은 당연히 겨울이었고, 여름옷을 입은 내가 비정상으로 보였다. 엄마는 계절의 시간표도 뛰어넘었다. 계절이 여름이라고 알려주면 추운데 무슨 소리냐고 추궁했다. 이럴 때 엄마를 만류하거나 대꾸하면 성격이 포악해져 버린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알기에 몸이 더워지길 기다리고 슬그머니 스토브를 껐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엄마 시간표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계절의 시간표도 없었고 현실도 사라졌다.
“야, 둘째가 오고 있어. 골목에 좀 나가봐.”
“둘째는 남미에 있는데 언제 와요?”
“비행기 타고 왔어. 마중 나가.”
엄마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현실이었다. 자기 생각을 현실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지시를 따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의 생각도 못 한 괴력과 부딪친다. 엄마가 치매 상황이 오면 그 마른 몸매에서 어찌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나를 밀어버려 몇 번이나 머리를 다쳤다.
엄마는 평소 딸처럼 살뜰했던 둘째가 많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둘째 아들이 엄마의 머릿속에는 골목에 몇 번이나 등장했는지 모른다. 나와 둘째는 거절할 줄 모르는 것, 모질지 못한 것, 남에게 퍼주기 좋아하는 것까지 모두 닮았다. 성격 유하면서도 일단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는 것까지 같다. 엄마가 나를 힘들게 할 때, 내 몸이 아프거나 슬플 때도 둘째에게 의지했다. 내게는 여동생같이 편안한 존재였다. 엄마가 집착하는 과거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 때였다. 수십 년 전의 시간에 살 때가 많았다.
“작은 집 뒤에 있는 밭에 내가 참깨를 엄청 심어놨거든. 그 참깨가 다 벌어져 하루라도 빨리 털어야 해서 갔어. 그런데 그 밭이 다 사라지고 큰 도로가 생겨버렸어. 누가 그 밭을 팔았니?”
엄마가 몰래 나가서 한강 둔덕을 힘들게 올라가니 올림픽 도로가 보였던 모양이다. 엄마 머릿속의 그 밭은 엄마가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밭이 예전에는 평지였는데, 왜 언덕이 생기고 도로가 생긴 거니?”
“엄마, 여기는 서울 복판이고 그 밭은 시골에 있어요.”
“아니야. 내가 분명 심었어. 비 오는 날 모종도 했고.”
서울에 산 지 수십 년인데 엄마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자 옥상 위에 엄마가 원하는 품목을 다 심었다. 생각지도 못한 감자며 콩까지 심어 엄마의 목마름을 풀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심을 때만 좋아할 뿐 곧 잊어버렸다. 엄마는 지금은 사라진 본가의 큰 밤나무며 나는 기억에도 없는 무슨 나뭇잎을 따서 튀각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옆집이나 앞집 사람들의 이름도 정확히 기억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이름들이었다. 엄마의 이런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난감했다. 엄마의 시간표는 현실보다 과거 속을 헤맸다. 과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거침없이 과거로 돌아가려 했다. 나도 엄마의 시간표를 알 수 없었고, 엄마 역시 시간표가 뒤죽박죽이었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 <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