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노후 챙길 여유 없는 'MZ'···생활고에 '무지출' 챌린지까지

가족 간 유대감도 없어 '내 시간이 우선' 저축할 여유도 없어···소비 시장 침체로

2023-07-31     김현우 기자
챗GPT를 활용, AI가 그린 '가난한 MZ세대' 이미지. /챗GPT

"취업난·고물가 때문에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부모님 노후까지 챙기기란 어려워요." -MZ세대 A씨

"모을 돈이 어디 있어요. 한 푼이라도 안 쓰기 바빠요." -MZ세대 B씨

'부모님은 자식이 챙겨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이 바뀌고 있다. 20~30대 젊은 세대를 일컫는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모님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7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세대는 생활고에 내몰려 일명 '무지출' 챌린지라는 새로운 소비 흐름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31일 한국사회복지단체협회가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서울시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1993~1998년생 890명을 대상으로 한 '부모님 노후 돌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641명)가 '부모님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당장 내 자신이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가 가장 컸다. 조사에 참여한 김기문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한국 사회 특성상 '부모 노후는 자녀가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깊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최근 젊은 세대의 부모 노후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고물가 시대에 겹쳐 취업난까지 이어지면서 각자 먹고 사는 문제에 치이다 보니 부모님 노후까지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 간의 유대나 희생보다 개인적인 성공을 중요시하는 문화도 사회 변화에 일조했다. 이로 인해 과거 유교적인 문화가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캐롤 박사 연구팀이 지난해 11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주제로 분석한 자료에서 캐롤 박사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문화'가 한국 젊은이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면서 “(한국은) 유교적인 문화가 자리 잡은 국가지만 최근 들어 그 문화적 흐름이 유럽화되고 있다. 과거 가정 중심의 노동 문화가 국가 발전을 거치면서 사회적 노동 시장으로 바뀌었고 경쟁, 일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 시간’을 중요시하는 분위기 변화도 큰 몫을 한다. 이에 대해 캐롤 박사는 “젊은 세대의 경우 독신 가정이 늘고 있고, 부모와의 유대감보다는 개인주의 및 사회적 유대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하루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의미인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 중인 한 독자가 보낸 사진. 서울 문정동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A씨(27)는 집에서 싸 온 즉석밥과 닭가슴살을 활용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하게 살 MZ세대?
저축도 사치, 지출 0원 챌린지 최근 유행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젊은이들의 인식은 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캐롤 박사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젊은이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모 세대는 경제적 자립이 가능했지만 MZ세대의 경우 불가능한 것으로 대부분 응답했다.

‘무지출 챌린지’는 MZ세대의 자기 삶에 대한 ‘웃픈’ 전망을 반영한다. 무지출 챌린지란 물가 급등 위기 속에서 하루 지출을 '0원'으로 만드는 2030세대의 신소비 트렌드다.

이를 실천하고 있는 MZ세대는 도시락을 싸 들고 출퇴근하면서 식비를 절약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월 약 10만원의 기름값을 절약하고 있다.

인천에 살고 있는 이모 씨(28세)는 "최근 외식비나 유가 등 모든 것이 올라 점심값이 부담되기 시작했다"며 "매일 도시락을 챙겨 다니고, 사정이 여의찮으면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먹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MZ세대 직장인 신모 씨(29·하남시)는 교통비를 제외한 그밖에 다른 비용을 절약한다.

신씨는 "즐겨 마시던 커피도 끊고 직접 요리를 해서 힘들긴 하지만 계속 오르는 물가에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 어떠한 구매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생활고로 인한 결정이라면 이들은 부모 세대 노후는커녕, 본인들의 노후조차 신경 쓸 수 없다는 얘기다. 다른 세대에 비해 구조적으로 경제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세대가 MZ세대"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라며 "청년세대의 고독사나 은둔형 외톨이 이슈가 사회 문제로 부상하기도 하는데, 현 청년 세대가 모이고 노는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장치 그리고 저축과 소비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