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의 더봄] 그림을 시작하며 - 당신에게 보낸 편지
[최익준의 청춘 블루스] 돈벌이에 빠져 접어두었던 학창 시절 꿈 인생 2막에 펼치기 위해 미술학원 등록 치열하게 살아온 나 자신에게 주는 위로
아~ 드디어 또 사고를 쳤습니다!
소년 시절 가고 싶어도 못 가던 미술학원을 기어코 다시 찾아 문을 두드리는데 수십 년이 걸렸지 말입니다.
'배고픈 화가가 될 것도 아닌데 굳이 잘 못 그리는 그림을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적 생각과, '이왕 시작한다면 스케치북 한 권만 채워보자'는 소박한 꿈이 시시각각 각을 세워 갈등하고 부딪히며 일 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했지요. 또 일 년이 그냥 지나면 후회의 감정이 나를 많이 괴롭힐 것이란 결론을 얻고, 쑥스러움을 감추고 용기를 내어 살금살금 미술학원을 찾아 들어갔지요.
나의 첫 미술 선생님은 따뜻했고, 친절하게 그림 세상의 문을 열어 주시며 스케칭의 황금분할법과 원근법을 차근히 가르쳐 주셨지요. 어반 스케칭(Urban Sketching) 첫 그림을 끙끙대며 완성하고 보니 학창 시절 미술학원 문 앞에서 서성거렸던 그때의 제가 환하게 웃으며 지금의 저를 토닥이며 안아 줍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새로운 별을 찾아낸 것을 축하해." 아~ 이 얼마나 가슴 시리고 콧날 찡한 소년과의 만남인가?
어반 스케칭을 배우면서 초보자가 될 용기가 필요함을 깨달았지요. 초보자가 된다는 것은 내 삶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새로운 관점과 관계에 온기를 불어넣는 초심자가 된다는 것 아닐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문학예술에 담을 쌓고 혁신과 경쟁의 돈벌이에 빠져 새벽 별 보기로 시작한 고단한 하루들이 시련의 태양을 돌고 돌아 야근과 주말 특근의 나날들로 제 삶의 시간이 채워졌지요.
아이들이 FM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달콤한 음악을 들을 때, 당신과 나는 충혈된 눈으로 회사 앞 실빗집 창문 너머 별을 바라보다 소맥 한두 잔 단숨에 털어 넣고 하루를 마감하는 세월 몇십 년을 정신없이 보냈지요.
60년 전 1인당 국민소득 고작 82달러의 원조를 받는 후진국 'Republic of Korea'에서 태어난 우리는 이 깨물고 신들린 듯 수십 켤레 닳은 신발을 갈아 신고 무좀이 떠날 새 없이 세계시장을 구석구석 돌고 돌아다녔지요.
2022년 GDP 3만 3000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은 60년 전에 비해 400배만큼의 부를 쌓은 전무후무한 역사를 썼지요. 그래서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을 '60-400-33000, Miracle Korea'라고 부르지요.
비록 부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과 기후변화 등 고민할 숙제가 쌓여 있기는 하지만, 단 60년 만에 배고픔을 해결하고 산업화국가, 민주화 국가 그리고 선진국 3관왕의 성공을 쟁취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기여한 것은 정말 잘했다고, 제 가슴속 문학 소년이 올여름 미술학원에 처음 등록한 초로의 신사에게 따뜻하게 격려합니다.
소년은 말합니다. "이젠 당신의 그림 천천히 맘껏 그려도 돼요~. 못 그려도 상관없어요. 당신의 그림이니까~." 소년의 이 한마디에 그만···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별을 잊고 근로의 세계에서 일에 중독된 수십 년 동안, 소년이 애정하던 윤동주 시인의 푸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책장 귀퉁이들이 찢어진 채 책장 속 곰팡이를 먹은 유물이 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했지요.
시집의 한편에 "나는 그림 그리고 시를 쓰며 자서전을 남기고 죽을 것이다"라는 사십 년 전 메모를 발견했지요. 이 한 문장은 유년 시절 뛰놀던 산등성이 바위틈 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 놓아둔 인생 2막 비망록이니, 기쁘게 글 쓰고 그림 그리며 살아볼 작정입니다.
타인이 보기에 별것 아닌 초보자의 그림 한 점, 문학 소년의 문장 한 줄이지만 우리에게 꿈이 되고 빛나는 북극성 같은 것, 그것이야말로 고단한 삶의 길을 환하게 비춰 주는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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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Socrates) 형님이 말하길··· "나 다운 나로 산다는 것, 즉 실존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 했다지요. 독일의 철학자 칸트 (Kant) 형님은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실존이 되는 것"이라 했다지요.
Q1 : 열심히 살아온 당신이 잊고 지낸 또 다른 꿈이 있었을지요?
Q2 : 그렇다면 가슴속 묻어 둔 그 꿈은 무엇인지요?
Q3 : 당신이 지금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생애 처음으로 찾아간 미술학원에서 첫 스케치를 마치고 벅찬 질문들이 떠올라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께 보냅니다.
답신은 안 주셔도 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