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나라빚 늘어나는데···국회, 재정준칙 법제화 10개월째 공전
OECD 중 韓 등 3개국 미시행 야당 "헐렁한 기준" 유보적 전경련 "조속히 법제화해야"
저출산 상황에서 미래 세대 부담을 덜기 위해 재정 적자에 제한을 두는 재정준칙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21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70년 7137조6000억원(GDP 대비 192.6%)으로 연평균 4.0% 증가한다. 현행 세입·세출 구조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수지 적자 누적으로 국가채무 및 국가채무 GDP 대비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한국의 재정이 갈수록 악화하는 이유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복지·연금 등에 지출이 급증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은 저출산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2023년 현재 5200만명에서 2041년 4000만명대에 진입하고 2070년 3800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정한 규범을 말한다. 나라 살림 적자(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되,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60%를 넘기면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OECD 38개국 중 한국과 튀르키예, 캐나다를 제외한 35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도입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10개월이 넘도록 국회 계류 중인 상태다.
지난 정권 때부터 '확장 재정'을 중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기재위 회의에서 "재정준칙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를 상당히 이뤄가는 과정"이라면서도 "현재 재정준칙은 오히려 재정 건전화 측면에서는 굉장히 헐렁한 기준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부의 재정지출 절감과 기금 구조조정 등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재정준칙 도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유동수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민주당은 제정준칙이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지는 않다"며 "정부안도 병합해서 법안을 심사하는데 좀 미비한 부분이 있거나 쟁점이 남아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게 아직 통과되고 있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당에서 발의한 법을 포함해 위원들이 그냥 함부로 폐기하거나 하진 않는다. 민주당의 발목 잡기가 아니라 늦어지는 것"이라며 "협의를 해나가는 단계일 뿐이지 언제 통과가 된다는 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내년에 건전재정을 유지하기로 한 만큼 예산 절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저출산, 이로 인한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잠재 성장률 위축,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급증으로 미래 재정 여력의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이와 별도로 연금 충당 부채 등 잠재적인 국가부채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 세대를 깎아 먹는 추경 대신 긴축 재정, 건전재정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라며 "민주당은 미래세대를 약탈하는 강제 추경법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재정준칙 도입 등 건전한 재정 도입에 즉각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계에서도 재정준칙 필요성을 주장했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부장은 지난 17일 "재정준칙의 조속한 법제화와 함께 적극적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건전재정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