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캐리비안 해적의 '데비 존스' 바위?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군마현 '탄바라 라벤더 파크 버스 여행 5만 그루 라벤더의 향기와 색에 취하고 복숭아 따기 체험하고 채소 선물 받고 동양의 나이아가라 후키와레 폭포 장관
"7월에 도쿄 가는데 당일치기 여행 어때?"
"좋지. 찾아볼게. 언제가 좋아?"
"7월 11일."
6월 초 친정 나들이를 겸해서 제주를 방문했을 때, 서울에서 내려와 숲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와의 대화다. 4월부터 일이 떨어져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남는 건 시간이고 빠져나가는 건 돈이다. 슬슬 일이 들어와야 하는데 라는 걱정을 하면서도,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쓸까 궁리하게 되는 요즘이다.
친구와 참가하기로 한 관광버스 여행의 행선지는 군마현(群馬県). 라벤더 파크 구경하고, 복숭아 따는 체험하고, 동양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후키와레 폭포'를 보러 가는 코스. 코로나가 풀려서 참가자가 늘 것이 예상되므로 한 명당 1000엔을 추가 지불하여 앞 좌석(1열~3열까지)을 예약했다.
여행 전날인 7월 10일, 도쿄는 섭씨 35도를 넘었다. 여행 당일도 엄청 더울 것이라는 일기예보다. 단단히 각오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 6시 25분, 신주쿠 서쪽 출구에서 친구와 합류하고 집합 장소로 향했다. 집합은 45분, 버스 출발은 7시. 약 12시간 여정의 시작이다.
휴게소 시간을 포함해 세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첫 번째 목적지인 '탄바라(玉原/TAMBARA) 라벤더 파크'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에서는 최대의 규모란다. 5만 그루의 라벤더가 피기 시작했다. 빨리 피는 것에서부터 늦게 피는 것까지 같은 라벤더라 해도 품종이 다양하다. 7월 1일부터 8월 27일까지 즐길 수 있단다. 중학생 이상 입장료 1200엔. 관광버스 여행 경비에 포함되어 있으니 우리는 그냥 통과.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일행에게 들려주는 설명에 따르면,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쓰이는 곳이란다. 검색해 보니 겨울에는 '탄바라 스키 파크'가 된다. 특별한 정보도 없이 참가한 여행이라 뒷사람이 풀어내는 여행 정보는 쏠쏠했다. 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고맙기도 했다.
코로나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화를 자제하고, 마시는 것은 탈수증 예방을 위한 음료 정도, 먹거리는 사탕 정도로 한정되었더랬다. 지금은 마스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집에서 들고 오거나 휴게소에서 산 먹거리를 버스 안에서 먹을 수도 있다. 웃음꽃이 피는 자유로운 대화. 코로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탄바라 라벤더 파크는 아주 시원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쩜 이렇게 도쿄와 다를까? 왜 이렇게 바람이 시원하지? 그야말로 '피서지'였다. 라벤더 향기를 실은 바람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시원할 만도 하다. 표고 1300m의 고원이어서다. 기온은 섭씨 25도. 아주 쾌적하다. 이 쾌적함을 맛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만족스러웠다.
버스로 돌아가기 전 소프트크림을 사서 먹으며 내려왔다.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그치?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한 거야~."
"맞다 맞다."
제주에서부터 친구와 내가 먹은 음식은, 신기할 정도로 다 맛있었다. 이번에 도쿄 진보초에서 먹은 인도 카레 집은 친구가 귀국하기 전에 한 번 더 먹으러 갈 정도였다. 아마도 이 친구와는 여행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라벤더를 즐긴 다음은 점심시간과 복숭아 따기 체험이다. 뷔페식 점심이었지만 농원에서 복숭아를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을 자제했다. 배가 부르면 못 먹으니까.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복숭아 2개를 따서 집에 가져갈 수 있을 뿐이었다. 딱 두 개이니 실패할 수 없다. 잘 골라서 제대로 따야 한다.
비틀어 따는 줄 알았는데 그냥 떼어내듯이 따야 한다고 했다. 그게 의외로 어려웠다. 과육을 누르는 내 손가락을 원망하며 일단 손을 댄 복숭아는 끝까지 책임졌다.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과일이었지만, 현장에서 먹는 재미가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여행의 덤이었다. 처음 해 보는 복숭아 따기 체험. 해봤으니 만족이다.
버스로 돌아오니 채소 세트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마토, 가지, 오이. 그러고 보니 소소한 선물이 있는 것도 버스 여행의 재미다. 채소 선물을 받으며 새삼스레 군마현은 농산물의 고장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특히 오이 생산량은 일본 2위다. 어쩐지 점심 식사 때 통 오이가 얼음물에 둥실둥실 떠 있더라니. 배부를 것 같아서 안 먹었지만 분명 맛있었을 거다. 집에 가져와서 먹은 오이가 별미였으니 말이다.
마지막 행선지는 '후키와레 폭포(吹割の滝)'다. '동양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고 있단다.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 이름만 거창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사전 조사도 하지 않고 왔으니 알 턱이 없다. 적어도 옆으로 길게 퍼지는 폭포려니 하며 일행을 따라갔다.
가서 본 느낌은 "오~ 나이아가라 닮았네"였다. 절대 실망은 없었다. 높지는 않지만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웅장했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폭포 끝으로 이어지는 바위였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호의 선장 '데비 존스'를 떠올리게 하는 바위가 강렬했다. 마치 '널 지켜보고 있다'는 듯한 시선. 자꾸만 뒤돌아보게 했다. 사진을 본 아들은 절대 닮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데비 존스 바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하.
한동안 나 홀로 여행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6월 7월 두 번에 걸친 친구와의 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좋고, 마음이 통하는 벗과의 여행은 둘의 생각을 공유하고 확장해 나가는 매력이 있다. 나무를 좋아하는 친구와 꽃을 좋아하는 나. 덧붙여 둘 다 숲을 좋아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날 만도 하다. 역시 우리는 여행 궁합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