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먹고사는 문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

[송미옥의 살다보면2] 배 고프면 음식 갖고 서로 싸우게 되고 배 부르면 자존감 높아지고 여유 생겨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면서 알게 된 것

2023-07-16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종은 달라도 배가 부르면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도시 외곽마을이다. 휴게소가 가깝다 보니 거기서 유기되었다는 소문만큼 유기견이나 유기묘가 많이 돌아다닌다. 유기센터에 신고를 하지만 잡으면 살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너나없이 측은지심으로 사료를 놓아둔다. 정이 많은 동네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에 고양이 한마리가 기거하기 시작한 요즘에 일어난 일이다. 아침 먹이를 내 놓으면 어디서 오는지 별별 고양이들이 모여 현관 앞이 전쟁터가 되었다. 꺼멍이 얼룩이 점박이 등등 아침이면 빠지지 않고 출근하는데 얼마나 살벌한지 모른다.

우리 집을 터전으로 잡은 노랑줄무늬 고양이의 밥그릇 사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얼마 전엔 한 녀석의 눈두덩이 찢어지고 어떤 녀석은 귀에서 피가 흘렀다. 치료를 해주고 싶어도 내가 나가면 모두 도망간다. 싸우는 건 영역다툼 때문인데 야생동물들의 타고난 습성이라 했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듣기에도 예민해진다. 왜 하필 우리 마당에서 어수선하게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딸은 친정에 올 때마다 고양이 간식을 한보따리 들고 온다. 눈치 보며 기웃거리는 그들이 애잔해서 여기저기 간식을 놓아주며 이름을 지어 부른다. 치즈, 다롱이, 까망이 등등 이름도 예쁘다. 언젠가부터 딸의 모습이 보이면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서도 쏜살같이 달려와 야옹거리며 딸의 바짓단을 몸으로 슬쩍 비비거나 잡아당긴다. 밥 주는 나에겐 본척만척하는 녀석들인데 그렇다면 사람을 차별해서 알아본다는 거다.

얼마 전 지인의 집에 가서 본 풍경이 생각났다. 고양이 사육장도 아닌데 마당에 고양이 무리가 서로 어울려 놀고 있었다. 거기 녀석들도 유기묘라고 했다. 사람에게 손을 안 주지만 피하지 않고 유령 보듯 서로 스쳐 지나다녔다. 한 마리가 친구를 부르고 새끼를 낳고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지금은 고양이 공원이 되었단다.

고양이들이 모여 있어도 싸우지 않았다. 농원도 볼거리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는 듯한 모습은 더 눈길이 가고 신비했다. 우리 집 녀석들은 만나면 싸우고 다치니 보는 마음도 상그럽다고 푸념하며 평화로운 동물 공원 같은 지인네 마당을 딸에게 보여주었다.

지인의 농원마당. 한 무리는 외출 나가고 반 정도가 남아 마당에서 놀고있다. /사진=송미옥

딸이 사진을 보더니 진즉에 말하고 싶었던 풍경이라며 슬쩍 돌려서 말한다.

“고양이 눈으로 보면 엄마네 집은 뉴스에 나오는 못된 원장이 경영하는 고아원이지. 밥을 쬐금밖에 안 주잖아.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공평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랍니다. 호호호.”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반찬이라곤 푸성귀 찢어 넣은 커다란 양푼에 보리밥을 쓱쓱 비벼주면 투덕거리면서도 함께 먹었다. 꽁보리밥이라도 배가 부르면 그냥 행복했다. 배고픔은 살아있는 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최대의 적이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는 탈북민도 첫 번째 이유가 배고픔이라고 한다. 지금도 전쟁 중인, 땅을 뺏기지 않으려는 작은 나라도 뺏으려는 큰 나라도 먹거리 전쟁에서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한 놈이라도 배불리 못 먹을 만큼 작은 밥그릇이 문제였다. 우리 집 밥그릇이 ‘나만’을 위한 거라면 거기엔 ‘함께’라는 그릇이다.

데크에서 오수를 즐기는 냥이들. 배고플 땐 마주치면 으르렁거리더니 배가 부르니 자세도 느긋하다. /사진=송미옥

며칠전까지만 해도 작은 밥그릇을 일등으로 차지한 놈은 양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위협받는 고난을 치러야 했다. 지인의 마당처럼 우리 집에도 밥그릇과 물그릇을 폭이 넓은 그릇으로 바꾸었더니 요즘은 거짓말같이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도 밤새 어디서 헤매다 왔는지 세 마리가 모여 함께 주둥이를 박고 아침을 먹는다. 배가 부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여유가 생기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 함께 밥 먹는 모습을 보며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