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 더봄] 농사가 쉬워 보인다고요? 볍씨 길러 모내기까지 A to Z
[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벼농사의 시작은 볍씨 고르기부터 올해는 모를 사서 이앙기로 모내기 모낸 뒤에도 잡초 뽑고 물 신경 써야
모내기는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남녘 지방에서는 주로 5월 20일경 시작하여 6월 20일경이면 끝이 난다. 귀농 3년 차인 나는 올해는 못자리를 직접 만들지 않고 육묘장에 맡겼다. 65세 이상 농민에게는 육묘장에서 모를 사면 지자체에서 모 구매비에서 일부 금액을 지원해 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우리 내외가 직접 모 싹을 틔우고 모판을 만들어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하기 한두 달 전(4월 중순이나 말경)에 볍씨를 골라서 소금물이나 요즘은 벼 소독약이 나오는데 소독약을 섞은 물에 깨끗이 씻어서 다시 물에 담가 둔다. 그래도 물에 담그면 둥둥 뜨는 쭉정이 볍씨들이 많이 올라온다.
물 위로 떠 오르는 볍씨들은 그물망으로 거두어서 버리고 남은 볍씨들은 소쿠리에 담아서 물기를 뺀 다음 망이나 자루 등 적당한 용기에 담는다. 물기를 머금은 볍씨를 천이나 이불로 덮어서 빛을 가리고 온도를 따뜻하게 해 준다. 2~3일이 지나면 볍씨의 눈에서 우리 눈에는 보일 듯 말 듯 아주 자그마한 싹이 돋아 나온다.
이때쯤 모내기할 마른 논을 트랙터로 1차 갈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약 열흘이나 보름 후에 2차로 논을 갈아주는데, 이때는 논두렁도 새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냥 두면 두더지들이 논두렁을 안에서 파헤쳐서 논의 물이 새어 나가기 때문이다.
발아된 볍씨는 다시 두 번째 작업에 들어가는데 보통 모내기하기 20일이나 한 달 전이다. 모 상자에 패드를 깔고 싹이 튼 볍씨를 흩고 그 위에 상토로 덮는다. 그 뒤 모 상자들을 마당이나 넓적한 공간을 확보하여 아래에는 물 빠짐이 좋게 비닐이나 스티로폼, 패널을 깔고 그 위에 차곡차곡 쌓는다. 그런 뒤 다시 이불이나 부직포로 빛을 차단하고 덮어둔다. 그다음 매일 한 차례씩 덮은 이불을 젖히고 물을 뿌려준다.
이렇게 볍씨를 발아시키는 동안 모 상자를 넣을 못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논의 앞쪽 일부 부분에 물을 넣고 트랙터로 갈아서 흙을 고른 다음 물을 넣은 상태에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준다. 물을 넣고 이랑을 만드는 이유는 모 상자를 올렸을 때 전체의 높이가 같아야 물을 넣어도 똑같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그 뒤 농부는 널빤지를 이용해 모 상자 얹을 자리를 반듯하게 다듬는다. 엎드려서 하는 일이고 허릿심으로 밀어붙여야 하므로 이 일은 무척 힘들다.
모 상자는 폭 30cm 길이 60cm인데 3300㎡(1000평)에 약 100개의 모 상자가 필요하다. 6600㎡(2000평)의 논에 벼농사를 지으려면 모 상자 200개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못자리를 폭 4m 길이 20m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모 상자를 덮고 매일 물을 주어서 정성스럽게 일주일 정도 키우고 나면 노랗게 잎이 나오고 하얀 뿌리가 내린다. 그 모 상자를 만들어 놓은 못자리로 옮겨서 흙과 물이 풍부한 곳에서 보름이나 20일 정도 더 키워야 한다. 이때에도 매일 모 상태를 살피면서 물을 넣었다가 빼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물을 넣어서 양분을 풍족하게 먹게 하고 물을 빼어서 뿌리를 썩지 않게 하고 호흡하게 하여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모내기 철이 되면 비도 자주 오기 마련인데 어쩌다 가뭄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온 동네가 난리가 난다. 강에서 논까지 도랑을 파서 모내기 물을 확보해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동원되기 때문이다.
물이 확보되면 본격적인 모내기 작업에 들어간다. 모내기할 논에 물을 대고 트랙터가 들어와서 논을 갈기 시작한다. 이때는 온 들판이 한꺼번에 물을 대고 논을 갈기 때문에 다들 오직 자기 논에 몰두한다. 물을 가득 넣고 논을 갈아야 흙이 물에 실려서 골고루 퍼진다. 논의 높낮이가 크게 차이가 나면 모내기 후에도 농사를 짓는 데 애로를 겪는다. 물을 대어도 언제나 물이 빠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높은 부분은 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논을 갈고 난 이후에는 다시 물을 빼는데 이는 이앙기로 모를 심을 때 잘 심기게 하기 위해서이다. 논을 갈고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물이 어느 정도 빠지기 때문에 못자리에서 잘 자란 모를 심을 논으로 옮긴다.
모를 심을 땐 비료와 제초제도 함께 이앙기에 넣어서 뿌리는데 작년에는 함께 넣은 제초제가 실패했다. 기계가 사람보다 더 정확할 것 같지만 그렇게 무턱대고 믿으면 안 된다. 기계로 모를 심지만 심기지 않는 부분도 나오고 비료도 많이 뿌려지거나 빠지는 경우도 있고 제초제도 일정하게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작년에는 기계를 믿고 그냥 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논 중앙 고랑에 피가 쫙 깔렸다. 그 부분에 제초제가 뿌려지지 않았던 거다. 피도 너무 자라고 벼도 자라서 낫으로 피를 베어서 들고나올 수도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눕혀 놓았다. 고랑에 피가 가득 차니 벼가 숨을 쉬기 힘들어서 썩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5월 말에 논을 갈고 모를 심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제초제를 빼고 심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논에 물을 넣고 제초제를 뿌렸다. 처음 제초제를 뿌리고 난 뒤 약 20일이 지나서 다시 제초제를 한 번 더 뿌렸다. 그래도 땅이 높은 곳에서는 잡초가 많이 나서 벼가 더 자라기 전에 직접 논을 매주었다.
어릴 적엔 우리 집 논이 약 6000평 정도 되었는데 우리 집 논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강 쪽에 많았다. 도시 학교에 진학하여 다닐 적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철에는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와서 농사일을 거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내기 때 제일 힘들었던 일 세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 모내기 전에 보리타작을 하는데 주로 밤에 작업을 했다. 이때 보리 수염 가시가 목이나 허리 등을 타고 들어가서 피부를 긁어 쓰라렸다.
두 번째는 모내기할 때 모판에서 모를 찌고 거머리가 물어도 모를 들고나오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모를 지고 모를 심을 논에 가져가서 논 전체에 적당히 던져 놓는 일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모를 심고 나서 벼가 많이 자라기 전에 논에 난 잡초를 직접 손으로 매는 일이었다. 이 일은 농부들도 매우 힘들어서 혼자서 하지 않고 여럿이 모여서 일렬로 줄을 서서 논 전체를 함께 매어서 나아갔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등에는 대나무 가지를 걸치고 밀짚모자를 쓰고 서로 손을 맞추어 논을 매는데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처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진흙 논은 그래도 좀 나은데 자갈논은 마치고 나오면 손가락 열 마디 하나하나 쑤시고 아려온다.
모내기하는 것으로 벼농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농부들은 여름철이면 아침저녁으로 벼가 자라는 논을 둘러보러 들판으로 나간다. 물을 대기도 하고 막기도 하여 벼가 잘 자라도록 보살펴야 한다. 올해 나는 ‘새청무’ 종자로 벼를 심었는데 트럭을 끌고 다니면서 논을 살핀다.
30년 전에 장사하러 당진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당진에는 많은 논이 공단으로 개발되어 토지 보상으로 부자가 된 농부들이 많았다. 농부들은 그랜저에 삽을 싣고 다니며 논을 돌아보았다. 그 광경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해서 충격이었다. 당시에는 ‘그랜저를 끌 정도로 부자가 되었으면 농사를 왜 짓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거의 모든 농사꾼이 그렇게 하고 있다.
농민들이 여유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인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도 도시인 못지않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이란 마치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없는 것일까?
한 스푼의 흙 속에는 1억 5000만 마리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쓴 시가 있었다. 1억 5000만 년 전에도 땅은 여기 있었고 1억 5000만 년 후에도 이 땅은 그대로 있을 터이다.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경작하기 전에도 누군가 이 땅을 관리하고 있었고 언젠가 내가 떠난 이후에도 이 논을 경작하는 어느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먼 미래에도 잡초는 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할 것이다. 그리고 농부는 여전히 농작물을 키우고 잡초와 싸우면서 살아가겠지. 돌아서면 다시 그 잡초와 마주치면서 말이다. 눈 감으니 내 마음의 밭에도 무수한 잡초들이 쉼 없이 나타난다. 내가 잡초인가? 잡초가 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