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낮도 밤도 새벽도 엄마는 사라진다

유현숙 <엄마의 방> 연재 8화 1호선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어 올림픽대로 밑 들깨 모종 가고 새벽 5시 교회에서 발견되기도

2023-07-13     최영은 기자

치매의 형태는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밖에서 배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치매 환자 보호자들에게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이 일이다.

엄마가 처음 사라진 날은 집을 찾아올 만큼 인지능력이 있었다. 엄마는 미국 막내아들 집에서부터 생각했던 펌을 하려고 다니시던 미용실로 말없이 사라져 우리를 애태우게 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상은 아니었다. 집으로 왔지만 말도 없이 빈손으로 미용실 갔다는 것도 정상일 수 없었다. 치매 초기라고 믿어 엄마가 혼자 모임 장소를 가겠다고 해서 보냈다.

“엄마, 모임 장소가 어디고 어떻게 가는 줄 아세요?”

“내가 바보로 보이니? 여기서 2호선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고,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고대 앞에 식당이 있어. 매달 가는데 왜 못 찾아가!”

그렇게 당당하게 집을 나간 엄마가 불안해서 도착할 시간에 맞춰 엄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엄마 도착하셨어요?”

“아직 안 왔어. 좀 늦나 보지.”

그런데 엄마는 1시간이 지나도 3시간이 지나도 전화도 안 받고 도착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제 안 되겠어요. 사실 엄마가 치매세요. 모임 날도 아닌데 어느 땐 모임 연락을 받았다고 하세요. 경찰에 엄마 찾는 전화를 해놨으니 찾을 거예요. 앞으로는 못 나가실 것 같으니 모임 전화를 하지 말아 주세요.”

112에서 전화 추적을 통해 엄마가 도봉역이라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쪽 경찰들에게 보호를 부탁하고 동생이 모시러 갔다. 엄마는 1호선을 타고는 어디 내릴지 잊고 한없이 갔던 모양이다. 엄마는 식사도 거른 채 몹시 불안한 상태였다고 했다. 엄마의 가방에는 많지는 않아도 돈이 들어 있었는데 사서 먹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를 찾았다는 안도감도 며칠 가지 못했다. 엄마가 또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가방과 외출복 중 즐겨 입던 보랏빛 롱파카가 없었다. 112에 다시 신고를 했다.

신호가 성수역 쪽에서 잡힌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와서 엄마와 같은 옷이나 차림새를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신호도 그쪽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아마도 휴대폰 배터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112에 신고가 되면 차림새, 나이, 이름이 경찰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는 스멀스멀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애간장이 탈 무렵 한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목걸이에 적힌 내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한 것이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아주머니, 정말 염치없는데요. 저희 엄마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드셨을 거예요. 치매에 당뇨 환자라 당이 떨어지면 쓰러지실 수 있으니 따뜻한 초코우유 한 개만 사주실 수 있을까요? 엄마 가방에 돈이 있어요.”

잠시 뒤 아주머니는 따뜻한 초코우유를 엄마가 달게 드셨다고 자신이 그냥 사주셨다고 전화를 했다. 정말 감사한데,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주저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세상은 정말 살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제가 모시러 가면 그동안 떨고 계실 수 있고, 또 어디로 갈 수도 있으니 택시 좀 잡아 태우시고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택시 기사와 통화를 하고 택시비를 10만원 드리겠다고 했다. 돈은 아깝지 않았다. 엄마가 무사히 돌아오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아주머니에게도 시간 내서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했더니 누구나 그랬을 거라고 했다.

염려 말라고 해서 사례를 하려고 계좌번호라도 달라고 했더니 아니라며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눈 쌓인 길을 달려와 준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택시 안에 대변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12만원을 요구했다. 사실 미터기대로 하면 5만원이면 충분할 터였다. 하지만 그저 모시고 와준 게 고마워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돈을 다 지불했다.

집으로 모셔 와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옷을 벗겨보니 기저귀에 대변이 달라붙어 있었다. 아기 기저귀처럼 입는 기저귀라 밖에는 새지 않았다. 마침 아들이 집에 있어 지친 나 대신 할머니 머리를 감기고 대변 묻은 몸까지 깨끗이 닦아드렸다. 눈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몸을 말리고 잠옷까지 입혀 누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음식을 챙겼다. 아들은 할머니 힘드시니까 침대에서 드시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쟁반에 받쳐 들고 가서 할머니의 밥을 떠먹였다. 후식까지 챙기고는 나에게 먼저 내려가 쉬라고 한 뒤 할머니가 잠드신 후에야 내려왔다.

나도 엄마 아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이제 아들이 그러고 있어 흐뭇했다. 주위에서 다른 애들은 할머니 냄새나니까 빨리 요양원 보내라고 한단다. 그런데 내가 힘들어하면 언제든 나서서 이렇게 해주는 아들이 정말 고마웠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이쯤 되자 우리는 경찰에 치매 등록을 했다. 그리고 한강이나 집 근처에만 있으니 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모처럼 엄마와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재래시장이고 익숙한 공간이라 무척 즐거워했다. 그동안은 엄마가 몰래 시장을 찾아갔다가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바람에 112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엄마는 시장을 둘러보다가 인삼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고는 재래시장 지하에 형성된 인삼 시장으로 앞장서 내려갔다. 수십 년 오랜 단골이던 인삼 가게로 직행했다. 주인은 엄마를 만나자 너무 반가워했다. 따뜻한 인삼차도 한잔 마시고 수삼을 사 가지고 나왔다. 꽃을 좋아해서 지하에 붙어 있는 단골가게에서 꽃도 샀다.

“이제 밥 먹자. 예전에 먹었던 순댓국 먹고 싶어.”

시장에 나올 때면 자주 가던 아우내 순댓국을 드시고 싶다 했다. 정말 배가 고프셨는지, 드시고 싶던 것이라서인지 평소답지 않게 한 그릇을 가볍게 비웠다.

“이 집 순댓국은 언제나 맛있어.”

엄마가 만족해해서 나는 가끔 이 집 순댓국을 사다 날랐다. 시장 안 닭집이 보이자 엄마는 닭발을 사자고 했다. 내 아들의 초등학교 친구 집이라 잘 아는 엄마의 단골집이었다.

나는 엄마가 가자고 하는 대로 물건도 사고 들고 다니며 따라다녔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니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하고 나온 게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단골 주단 가게로 향했고, 엄마는 주단집 간판을 읽더니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은 서로 반가워했다.

“내 한복은 여기서만 했지?”

“네. 엄마가 바느질도 천도 좋은 것만 쓴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나는 사장님에게 엄마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각 천들을 부탁했다. 사장님은 색색의 모양도 제각각인 천 조각을 한 가방 주시고는 돈 지불도 거부했다.

“이 천 쓰레기들을 왜 가져가려고 해,”

“엄마가 예전에 조각보도 만드시고, 나 어려서는 아빠 글 쓸 때 쓰라고 팔꿈치 베개도 만드셨잖아요. 나 그거 꼭 갖고 싶어요.”

사실 색색의 천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은 엄마의 치매에 아주 좋은 수업이었다. 뜨개질을 하게 했는데 이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뜨개질은 색깔도 모양도 여러 가지로 된 수세미를 뜨게 하고 그것을 선물하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뜨개질은 안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조각보였다.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안 쓰고 책도 보고 바늘귀도 꿰시니 가능할 것 같았다.

특히 조각보는 색의 조화를 위해 색도 고르고 자르고 바느질을 하므로 뇌에 자극을 주어 좋다는 생각이었다. 치매가 멈추고 맑은 정신이 찾아오면 조각보 만들기를 하게 하고 멋지다고 부추겼다. 색의 조화를 맞추는 것도 재미난 모양이었다.

엄마는 바느질이 예전만 못했지만 조각을 이어 나갔다. 엄마는 새로운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했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예 치료를 위해 꾸민 옥상 텃밭도 잘 올라가지 않았고 내 일만 하나 늘어버렸다.

그래도 새로운 일에 흥미가 생기면 무작정 혼자 밖으로 나가는 일은 줄어들었다.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던 엄마는 일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제 모든 공부도 운동도 안 하겠다며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보낼 만큼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집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떠 넣어주는 몇 숟가락의 음식을 마지못해 드셨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밤늦게 사라졌다. 동생과 나는 112에 거의 동시에 신고를 했고, 마침내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누나, 엄마 구로역 파출소에 계신다네. 내가 지금 모시러 가고 있어.”

엄마는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구로역에 내려 배회했던 모양이다. 올케와 동생이 엄마를 모셔 온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왜 나갔느냐고 물으니 만날 사람이 있어서였다고만 하고 말문을 닫았다.

며칠간은 잠잠하더니 또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손에는 호미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낮 동안에 사라지면 좀 기다리거나 가까운 곳으로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마을 아저씨가 한강으로 가는 어머니를 보고 어딜 가냐고 물었다고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몰라 이층으로 올라가 엄마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사라진 지 오래 걸리지 않고 돌아왔다.

“엄마, 호미 들고 어디 다녀와요?”

“밭에 갔는데 웬 언덕이 생겼더라. 힘들게 올라갔는데 차들이 쌩쌩 다녀서 그냥 왔어.”

표지 /창해

엄마는 가까운 곳에 밭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들깨 모종을 하러 갔단다. 언덕이라 하는 곳은 올림픽도로 아래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랐던 것이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지 거리 감각도 없고 생각나면 무작정 나간다. 또한 시공간이 흩어져 버려 수 시간 거리에 있는 곳도 금방 갈 수 있고 가깝다고 믿었다.

“여기 중앙교회인데요. 제가 어머님을 모시고 있어요. 추위에 떨고 계셔서 교회 안으로 모시고 들어왔어요. 목걸이에 전화번호가 있어서 편찮은 분이구나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신호등 몇 개를 건너 달려가면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이렇게 감사한 일을 하셨어요?”

“제가 새벽기도를 나왔는데, 삼성 4차 아파트 앞에서 서성이시다가 건너오시더라고요. 새벽예배를 나왔느냐고 물으니 아들네 집에 가신다는데, 잘 모르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 집은 삼성 래미안 3차예요. 갑자기 아들이 보고 싶으셨나 봐요. 생각이 나면 대책 없이 바로 나가세요.”

엄마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분을 만나 무사히 집으로 왔지만, 놀란 내 가슴은 바로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내 감시망을 피해 엄마는 밤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몰래 나가서 수시로 사라졌다.

아마 치매 가족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치매 가족을 묶어두거나 감금할 수도 없고, 잠깐 사이에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치매 환자 때문에 가족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 <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