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걷다 보면 답을 만날 수 있어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43일간 스님들의 인도 순례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며 마음으로 들어가게 도와주는 걷기의 힘을 다시 느끼다
모처럼 집에 머문 주말이었다. 퇴근 후에 할 수 없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주말이 늘 분주하곤 했는데, 이번 주말은 특별한 일 없이 집에 머물 수 있었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는 아이는 진작에 스터디 카페에 갔고, 남편도 집 근처 도서관에 나간 터라 고즈넉이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집안일을 마친 후 차가운 차 한잔을 만들어 TV 앞에 앉았다. 별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는데, 흙먼지 가득한 길에 가사 장삼을 갖춰 입은 스님들이 긴 행렬로 걷고 있는 장면을 마주하게 됐다. 지난 석가탄신일에 방영되었던 KBS 특선다큐멘터리 <부처님과 함께 걷다>의 재방송인데, 못 보고 놓쳤던 것이 아쉬웠던 프로그램이라 잘 됐다 싶었다.
‘부처님과 함께 걷다’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유관 단체인 상월결사에서 주관해 올해 초 다녀온 인도 순례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스님과 신도 등 100여명의 순례단이 인도에서 네팔로 이어진 1167km를 43일간 걸었던 대장정을 나레이션 없이 스님들의 인터뷰로 구성했다.
길에서 태어나 길을 따라 걸으며 설법하고 길에서 열반한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걷는 이 순례를 통해 참가자들은 부처님이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성도지(成道地) 보드가야, 첫 여성 출가자를 받아들인 곳 바이샬리, 열반지인 쿠시나가르 및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등 불교의 7대 성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순례 첫날부터 마지막 날 회향식을 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하루 25~30km 이상을 걷는 강행군과 이 고행의 과정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는 부처의 마음을 스님들의 육성을 통해 담담하게 전한다.
허허 스님(김해 성조암 주지)은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걷는다고 말하고, 제정 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은 ‘부처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죽이고, 조사님을 만나면 조사님을 죽여라. 긍정이듯 부정이듯 모든 걸 깨부수듯이 상(相)에 대해서 철저히 파괴하는’ 불교의 법문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고 전한다.
순례의 발걸음과 함께 담아서인지 스님들이 전하는 출가의 과정과 수행의 어려움, 열반을 향한 간절함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수십 년을 수행자로 살아온 스님들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수행의 시간을 돌아보고 부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인도의 흙길 속에서 또렷하게 보였다.
‘걷는 것은 기계처럼 걷고 있지만 발바닥에 닿는 촉감을 관찰하며 반복하다 보면 지혜와 삼매(三昧, 순수한 집중을 통해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로 불교 수행의 이상적인 경지를 말함)의 힘이 생기는데 이는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영일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것이야말로 걷는 행위가 주는 힘이 아니까 싶었다.
몸의 감각을 벗어나 얻게 되는 마음이 정화되고 모이는 상태, 이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은 길을 찾아 나선다. 어려운 순례길이 아니더라도 동네 뒷산을, 지역의 둘레길을 걸으려고 나가는 이유가 된다.
3년 전 겨울 인왕산과 백악산, 남산을 잇는 18km의 한양도성길을 혼자 걸었던 적이 있다. 하루에 한 코스씩 6일을 걸었는데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 오롯이 걷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쌓여있던 불편한 생각과 감정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숨이 차고 얼굴과 몸에 열이 오른 채 한참을 더 걸으면 어느새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어지럽고 헝클어진 마음이 걷는다는 행위 하나로 모인 후 다시 정리가 되는 그 경험을 나 역시 가져본 적이 있기에 그 이후에는 습관처럼 시간만 되면 신발을 갈아신고 밖으로 나가 걷고는 했다. 종교적 의미를 찾아 참배하는 순례는 아니었지만 마음을 모으는 명상의 과정으로는 충분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한동안 걷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올해 새롭게 시작한 업무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고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점심시간 한 시간이라도 걸어야겠다 싶었다. 청계천변 양쪽으로 마주한 시장들로, 종로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명동성당 주변 골목들로 회사 주변 동네의 걷기 계획을 세우며 가벼운 운동화를 가방에 챙겼다. 걸으면서 버리고, 벼리는 시간을 다시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