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속 열린 퀴어축제···임신 8개월 차 동성 부부 결혼식도 열렸다
올해 서울시내 최대 성소수자 모임 미국·영국·캐나다 등의 대사도 참석 류호정·홍석천 등 유명인도 '거리로' 한편에선 종교단체 '동성애' 반대도
임신 8개월 차 동성 부부인 김규진 씨(31)·김세연 씨(34)는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거리 한복판에서 특별한 결혼식을 올렸다. 무지개색 끈이 달린 부케가 허공에 떠오르자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김씨 부부는 지난 2019년 미국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지난해엔 벨기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에 성공했다. 김세연 씨는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같이 있고 싶은데 출산휴가를 받을 수 없다”며 “동성결혼 법제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동성 커플 중 한 명인 백팩(활동명) 씨도 “8년가량 동거한 데다 양가 가족끼리 왕래하는 사이인데도 병원에서 서로 보호자가 되지 못한다”며 “동성 커플을 위한 결혼제도가 생기면 정식으로 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주 토요일 을지로 일대에선 성소수자를 위한 '2023 서울퀴어문화축제’(퀴퍼)가 열렸다. 올해 퀴퍼 슬로건은 '피어나라 퀴어나라'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우리의 삶이 피어나기를, 여러분의 웃음이 피어나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기를, 그런 세상을 꿈꾸는 마음"이라며 "아직 우리나라에 혐오와 차별이 가득하지만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세상은 분명히 올 것"이라고 말했다.
체감온도가 35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을지로 일대 2차선 도로는 무지개 머리띠와 팔찌를 두른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행사장에는 성소수자 연대단체의 부스 58개가 설치됐다. 행사장 가운데에는 성 중립 화장실도 마련됐다. 미국·영국·캐나다·독일 등 각국 대사관도 부스를 설치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등 각국 대사들은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7년째 퀴퍼에 참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최초로 연대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염형국 인권위 차별시정국장은 “인권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 정부의 성소수자 정책은 딱히 없다. 관련해 어떠한 정책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해도 된다”며 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퀴어퍼레이드는 오후 4시 30분부터는 을지로~삼일대로~퇴계로~명동역~종로~종각역 일대 행진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축제에는 약 15만명, 거리 행진에는 약 3만5000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모습을 드러냈다. 2일 류 의원 페이스북에 따르면 전날 "오늘 본 모든 것이 자랑스러웠어요"라는 문구와 함께 서울 을지로와 종로 일대에서 진행된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류 의원은 파란색 배꼽티와 청 스커트를 입고,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부채를 펼쳐 든 모습이었다. 셔츠 뒷면에는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요청하는 문구가 프린팅돼 있었다.
‘국내 연예인 커밍아웃 1호’ 홍석천 씨도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홍씨는 성소수자 모임을 반대하는 세력을 비판하면서 “(성소수자에게) 하루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는 외침이 거세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1년에 딱 하루 자유가 주어진 날(성정체성‧성적지향을) 드러내면 무조건 죽여버리겠다는 구시대적 공포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종교단체 집회도 열렸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는 서울시의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퀴어문화축제를 규탄했다. 이들은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고 트럭 위에서 북을 치는 등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또 퀴어축제 장소 인근에서는 1인 시위 등을 하며 동성애를 규탄했다. 다만 두 집단 간에 큰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축제에 앞서 50여 개 기동대를 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