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하버드대 흑인 커트라인 낮춘 'AA', 역차별 위헌 판결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아시아인-흑인 하버드 합격 점수 126점 차이 미국 연방대법원 과반 넘게 '위헌'에 손들어 "AA 위헌은 개인 실력 강조한 기념비적 결정"

2023-07-03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60여 년간 이어진 미국 대입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 어퍼머티브 액션(AA)이 위헌이라 판결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AA가 좋은 의도와 선의로 시행됐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정책은 아니었다면서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1980년대 영국은 마거릿 대처 총리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강행으로 폐광이 늘어나고 있었다. 장기 파업으로 정부에 맞서던 강성 노조원의 아들 '빌리'는 탄광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발레 수업에 푹 빠진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아버지도 빌리에게서 천재적 능력이 있음을 알아챈다.

그는 파업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 일터에 복귀한다. 아내의 유품인 결혼반지를 팔아 빌리가 발레 학교 입시에 참가할 수 있도록 여비를 마련한다. 마침내 빌리는 로열발레단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 기쁨에 오열한다.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런던의 유명한 발레리노로 성장한 아이의 스토리와 아버지의 뜨거운 부성애를 다룬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공동체를 지배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교육임을 알고 아들의 입시를 적극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신분제 사회는 양반 관료가 되어야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시스템이었다. 양반 관료가 되려면 과거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이 시험 합격을 지원하기 위해 아내는 밤낮없이 바느질 품삯을 팔았고 어머니는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또 빌었다.

현대에 와서는 논밭을 팔고 재산 밑천을 소를 잡아 자녀의 대학 학비를 마련했다. 그래서 대학의 높은 상아탑은 농촌의 소뼈로 쌓아 올렸다 하여 '우골탑'이라 불렸다.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은 신분 상승의 중요한 사다리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메리트(merit) 시스템이라 불리는 실력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의 핵심 국가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만큼 학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나라도 드물다. 뉴욕과 대도시의 일류 로펌에 들어가려면 상위 14위의 로스쿨을 나와야 한다고 한다. 

아이비리그(ivy league)라는 동부의 8개 명문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한 것도 이들이 가장 높은 급여를 지급하는 최고의 직장인 월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투자은행에 취직하려면 이런 명문 사립대나 탑 공립대의 최고 경영대를 졸업해야 한다. 좋은 병원 의사가 되려면 마찬가지로 좋은 의대를 나와야 한다.

따라서 명문대 입시에서 합격증을 받는다는 건 졸업 후 취업에서 훨씬 많은 기회를 얻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명문대에 들어가기란 정말 어렵다. 상위 아이비리그 대학의 합격률은 5% 안팎이다. 100명이 지원하면 그중 다섯 명만 합격증을 얻는다는 얘기다.

졸업 후 취업보다는 법대·의대·경영대학원이나 박사과정을 주로 목표로 하는 소수 정예 대학인 명문 리버럴아츠(liberal arts) 대학도 마찬가지다. 합격률 자체는 다소 높지만 그 지역에서 최고의 수재들끼리 경쟁하므로 입학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미국 대입에서 아시아계 학생 역차별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한 연구 결과 하버드 합격자 가운데 아시아계의 평균 수능점수는 1600점 만점에 1534점인 반면 백인은 1490점, 그리고 아프리카계는 1408점으로 인종에 따른 합격 점수가 상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렇게 어려운 대학 입시에서 어떤 학생을 합격시킬지 여부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대학은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학력이 입시 합격의 우선 결정 요인이 돼야 함은 당연하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학력고사 점수에 따라 대학 합격이 정해졌다.

그러나 미국 대학들은 학력 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법으로 어퍼머티브 액션(AA, affirmative action)이라고 불리는 소수인종에 대한 각종 차별철폐정책을 입시에 반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학자금 대출 등 연방정부의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1960년대 흑인 민권에 관해 관심이 커지자 진보층의 지지를 얻으며 입법화 요구가 커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은 AA를 법제화했다. 그 일환으로 채용 및 입학사정 과정에서 인종적·민족적 배경으로 인해 차별받는 소수자에 대한 우대정책이 마련되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소수인종을 대표하던 흑인과 히스패닉(남미계)에 대한 우대 정책으로 오랜 기간 굳어지면서 신흥 이민 그룹인 아시아계에 대한 역차별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대학들은 암묵적으로 인종별 쿼터를 두고 보다 학업 성적이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에겐 불이익을 주었다.

그러자 아시아계 학생들을 중심으로 명문대 입시에서의 아시아계 차별에 대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 최근에는 사립 명문인 하버드 대학교와 공립 명문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상대로 한 소송이 대법원까지 갔다. 이 판결은 대법원의 보수화와 맞물리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하버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원고는 아시아계 학생들이 수능 성적과 학점 등 학업 그리고 대외활동 등 실력의 객관적 지표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월등히 앞섰지만 불합격당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계 학생에게 인성·호감도·친절성·용기와 같이 평가자의 주관성이 개입되기 매우 쉬운 성격(traits)이라는 평가항목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학생의 경우 성적 등 객관적 지표가 낮았음에도 성격 등 주관적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 방법으로 이들을 합격시켜 왔다고 한다. 한 경제학자는 성격 등 주관적 지표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사정했다면 아시아계의 합격률이 16% 높아졌을 것이라 주장했다. 비슷한 특성을 가진 지원자가 아시아계라면 합격 가능성은 25%이지만 백인이라면 36%·히스패닉이라면 77% 그리고 흑인이라면 95%라고 주장했다.

이는 수능 점수로도 확인된다. 어느 해의 하버드 합격자 가운데 아시아계의 평균 수능점수는 1600점 만점에 1534점인 반면 백인은 1490점, 그리고 아프리카계는 1408점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아시아계와 흑인은 무려 126점이나 차이가 났다. 아시아계는 학교에서 최상위권에 들어야 하지만 흑인 학생은 어느 정도 우수하면 하버드에 합격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하여 피고인 하버드대학교는 자신들의 입시 정책은 합법적이라고 항변했다. 실제 아시아계의 비중은 최근 17%에서 21%로 증가하였고 이는 아시아계의 인구가 전체 미국 인구의 약 6%에 지나지 않는 것을 고려할 때 결코 낮은 합격률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주 입법으로 입시에서의 인종적 차별을 철폐한 캘리포니아 등 몇몇 주에서는 아시아계 합격률이 크게 높아진 반면 히스패닉과 흑인계의 합격률은 낮아졌다. 이에 대해 진보층은 차별을 줄이기 위해 AA를 사수해야 하며 히스패닉-흑인계 합격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시 정책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 소송에 대해 판결했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연방대법원은 AA를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것이 위헌이라 결정했다. 재판 결과도 6대 3으로 큰 격차가 났다. 이제 대학은 인종적 요인을 바탕으로 합격 여부를 정하지 못하게 됐다. 학생 개인의 역량과 경험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교육은 실력 위주로 가야하고 국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야 함을 확인한 판결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