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Z세대는 인맥 다이어트 중

소모적인 만남은 피하고 혼자만의 시간 추구 중요한 사람들에 집중하고 자기 계발에 투자

2023-06-30     강병문 강릉원주대 음악학과 학생 외 3명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 중에 실제 연락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명 없어요. 개인마다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는 인맥에는 한계가 있어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이모 씨(여·22)의 카카오톡에 저장된 사람은 총 646명이다. 이 중 1년에 한 번이라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20명.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8명뿐이다.

‘인맥이 힘이다’라는 옛말과는 달리 최근 20대 사이에서는 ‘인맥 다이어트(불필요한 관계를 끊어 인맥을 줄이는 일)’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혼족’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은 학과 행사 등 소모적인 만남을 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추구하며 인간관계를 확장하지 않는다. 취재 결과 20대는 중요한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그리고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자기 계발에 집중하기 위해 인맥 다이어트를 하는 편이었다.

20대 사이에서 자기 계발 등의 이유로 ‘인맥 다이어트(불필요한 관계를 끊어 인맥을 줄이는 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프리픽

소중한 사람과 시간이 더 중요

삶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MZ세대에 불필요한 인맥으로 인한 시간 낭비는 사치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이들은 주변 사람들만 챙기기에도 벅차다고 말한다.

대학생 최모 씨(여·22)는 “몇몇 고교 동창과의 관계가 너무 좋아 인간관계를 확장하고 싶지 않다. 친구를 사귀지 않아도 대학 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충분히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 많은 사람을 알아갈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원모 씨(여·22)도 “이미 심적으로 깊게 관계를 형성한 친구들이 있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려면 따로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아야 한다.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럽다”며 “다양한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공통 관심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온라인커뮤니티 ‘인스티즈’에는 ‘20대 중반부터 늘 친구 관계 고민 많았는데 이걸로 정리됨’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여기에는 ‘양브로의 정신세계’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양재진·양재웅 정신과 의사의 말이 실려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친구 외에 중요한 것들이 많아진다. 친구가 차지하는 포지션이 줄어들게 되면서 옛날처럼 에너지를 써서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된 후에는 안 맞으면 안 보는 게 당연하다. 굳이 에너지를 써서 맞춰야 할까?”

네티즌들은 “맞아 그래서 나도 최소한의 사람만 만나” “점점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기대하는 게 크게 없어졌음” “이래서 마음 편한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친구 만나는 부분에선 인생 성공한 것임” “난 진짜 맘 편한 친구 딱 한 명 있는 것 같아” “두세 명 정도면 적당한 듯” “난 다섯 명” 같은 반응을 보였다.

사회생활에 있어 넓은 인간관계는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정도를 넘으면 좋지 않다. 불필요한 인맥을 유지하기 위한 연락에서 오는 의무감은 스트레스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스펙 쌓기 바빠

대학생 최모 씨(23)는 최근 친해진 동기 네 명과 체육대회 뒤풀이를 갔다. 이 자리에서 동기들끼리 언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말다툼이 생겨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종종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굳이 필요 없는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과 체력을 소비하는 것 같다”고 후회했다. 

대학생 박모 씨(여·22)도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연락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힘든 순간 그 관계에 부담을 느낀다”며 “누구라도 먼저 연락해야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이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아 인간관계가 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굳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요즘 대다수 대학생에겐 대학 입학과 함께 취업 준비가 시작된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 속에서 남들보다 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 함모 씨(23)는 “대학 생활은 학과 행사, 동아리 활동이라고는 하지만 내 개인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내 할 일만 하더라도 시간이 빠듯하다”고 답했다. 이어 “혼자 있으면 자기 계발 시간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박모 씨(24)는 “대학 동기는 나중에 나와 경쟁해야 할 사람”이라며 “약도 과다복용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도를 넘어선 안 된다. 인간관계를 간소히 하고 자기 계발에 투자하면 더 좋은 미래가 나를 반길 것이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학 생활을 혼자 보내는 혼족이 증가했다. 알바몬·잡코리아가 20대 2928명에게 물어본 결과 응답자 88.7%는 “평소 혼밥·혼영(혼자서 밥 먹기·영화 보기) 등 혼자서 해결하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34.6%는 “코로나19 이후 어쩔 수 없이 나홀로족이 됐다”고 답했다.

올해로 3학년이 된 대학생 전모 씨(여·22)는 “코로나로 인해 대면 활동이 한동안 없었다”며 “줌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색했다. 대면 활동이 재개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혼자 다닌다. 인간관계가 좁아진 것 같다”고 했다.

강병문 강릉원주대 음악학과 학생 (k2mbj@naver.com)
송진영 강릉원주대 무역학과 학생 (happysjy2002@naver.com)
장성한 강릉원주대 경제학과 학생 (sunghanjang@gmail.com)
이준헌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학생 (junheon08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