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송미옥의 살다보면2] 아내가 암에 걸렸다고 말할 때 남의말 하듯 무관심한 남편과 퇴직하고 같이 투병하는 남편

2023-07-02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대화는 소통의 기본. 서로 다른 종교를 믿듯이 서로 존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꿀 떨어지는 부부관계로 시샘을 받던 지인이 이혼을 생각 중이라며 푸념한다.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암 의심 증후를 진단받은 지인은 남편이 알면 얼마나 슬퍼할까 생각하니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다음 날 퇴근하고 온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낮은 목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표정이 왜 그래? 약속 있어 나가야 하니 빨리 말해.“

귀가만 하면 사랑한단 말을 몸으로 하던 사람이 부인의 우울한 표정만 봐도 심각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눈동자만 보고도 내 슬픔을 감지해 와락 끌어안고 뭔 일이냐고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웠다. 여차저차 검진 결과가 이렇고 저렇고 그래서 내일··· 설명을 하는데 남편이 말을 잘랐다.

“에이, 건강검진에서는 작은 점 하나도 정밀 검사받으라더라. 큰 병원 가서 검사받아봐. 별일 아닐 거야.“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보호자로 같이 가주는 게 부부 아닌가? 지인은 혀를 차며 하던 남편의 뒷말에 정이 뚝 떨어졌단다.

“매월 이날은 골프 치러 가는 거 알면서 병원 예약하면 어찌하냐. 쯧쯧.”

그는 남들에게 보인 우리의 모습이 윈도우 부부였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지금까지의 삶이 허무해졌단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지붕 아래 같이 살며 껄떡거리는 옆방 아줌마 옆방 아저씨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암에 걸린 후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는 지인-그들 부부는 하루도 빼짐없이 걷는 운동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회사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과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온 또 한 부부, 이렇게 사는 것이 부부의 삶인가 날마다 고뇌에 빠지던 그녀도 암 선고를 받았다. 사는 게 재미없고 우울증세도 있던 터라 혼자 가서 검사받고 진단까지 받았다.

“아··· 차라리 잘 되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조금 일찍 가는 거지 가는데 순서 있으랴.”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시시하게 살아온 지난날에 미안했다. 마음이 진정되자 남편과 밥상머리에서 암 진단받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

“주절주절··· 그러니 당신도 급한 성격 잘 다스리고 혼자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해.”

다른 때 같으면 버럭 소리 지를 상황인데 그날의 남편은 숨은 쉬기나 하는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다음날 퇴근하는데 보따리를 한가득 안고 들어왔다. 30년 넘게 근무하던 회사를 퇴직하고 왔다는 것이다. 사직서라니··· 일 안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며 소리소리 질렀다. 남편이 말했다.

“이제부턴 주방에서 일할 거다.“

남편은 그날부터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고 주방은 물론 집안일까지 접수했다. 며칠 후 그녀의 시누님에게서 위로금과 함께 전화가 왔다.

“자네 고생만 시켰다고 통곡하데. 그러더니 자네 죽으면 자기도 따라 죽을 테니 죽으면 합장해서 묘비에 이걸 붙여놔 달라고 주고 가더라. 건강 잘 챙기게. 줄 초상날라. 어휴. 팔푼이··· 주절주절···”

사랑마크가 겹친 그림엔 ‘우린 사랑했고 행복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조금도 바뀌지 않을 성격이지만 무뚝뚝한 남편의 속마음을 알고 나서는 표정만 봐도 피식 웃음이 난다.

아침을 먹고 나면 1시간 산책코스를 찾아 함께 운동하고 점심은 채식 전문 식당을 찾아 외식한 후 각자 자유시간을 갖는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 지 4년이 되어간다. 남편의 극적 처방 덕분인지 몸도 나아지고 요즘은 신혼부부같이 산다. 당연히 남은 삶의 시간도 알뜰하게 쓴다.

소통이 막히면 벽과 문이 되어 닫히고 소통이 되면 마음의 길이 열리는 대화의 기술 /게티이미지뱅크

오래 사는 세상이다. 부부관계의 지속은 소통과 관심이라고 한다. 그것들이 옥신각신 우리 마음을 헤집고 다니며 길을 만들고 문을 만든다. 어찌 되었든 부부관계는 불가사의다. 부부란 무엇일까-에 어울리는 유머로 함께 웃어본다.

성지순례를 떠난 다정한 노부부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부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장의사가 말했다.

“부인을 고국으로 운구하는데 5000달러가 듭니다. 그러나 신성한 이 땅에 부인을 묻으면 150달러만 있으면 됩니다.”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부인을 고국으로 운구해 달라고 했다.

“아니 왜 죽은 사람에게 5000불이나 쓰시나요. 이 성스러운 땅에 묻으면 150이면 되는데···?”

그러자 남편이 심각하게 말했다.

“예전에 예수님이 죽어 이 땅에 묻혔는데 3일 후에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