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진보적 어젠다' 둘러싸고 문화전쟁 중인 미국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흑인→성소수자, 바뀐 어젠다 기독교 신앙에 굳힌 보수 성향 지도자의 균형 잡힌 시각 중요

2023-06-26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준틴스(Juneteenth)는 미국의 마지막 흑인 노예제가 끝난 걸 기념하는 날로 흑인 노예가 해방된지 156년만에 미국 연방의 12번째 공식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후 2012년에는 백인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대한 항의로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보수와 진부가 크게 분열되면서 미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AFP=연합뉴스

지난주 월요일인 6월 19일 미국 증시는 개장하지 않았다. 정부 기관과 주요 은행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날이 공휴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준틴스(Juneteenth)라 불리는 이날이 왜 공휴일인지 그리고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는 미국인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날은 158년 전인 1865년 6월 19일 미 텍사스주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된 날을 기린다. 하지만 재작년 이전까지만 해도 준틴스는 미 연방정부의 공식적 휴일이 아니었다. 그 해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공휴일이 되었다. 

그 전해 미국 전역은 BLM(Black Lives Matter)이라고 불리는 흑인 생명 존중을 위한 인권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플로이드라고 하는 흑인이 음주운전 등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관의 과잉조치로 인해 사망한 사건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시위였다.

이 사건은 CNN과 같은 진보언론에 의해 연일 보도되었다. 미 사회는 흑인을 겨냥한 경찰의 가혹행위와 총격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진보 진영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과 미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미국 프로축구(NFL) 경기에서는 유명한 한 쿼터백이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고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손흥민이 출전하는 영국 프로축구(EPL)에서도 경기 전 무릎을 꿇고 BLM 운동을 지지하는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시위가 격화하고 심지어 진보 언론의 심장인 애틀랜타 CNN 본사까지 시위대의 공격을 받으면서 BLM 운동에 대한 반작용도 거세졌다. 미 대선에서 바이든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질서를 강조하면서 시위대의 과격행위를 공격했다.

그런 트럼프의 메시지는 50여 년 리처드 닉슨의 법치와 질서(law and order)에 대한 호소를 떠올리게 했다. 1960년대 후반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이끄는 흑인민권운동이 전국을 휩쓸면서 극심한 혼란이 초래됐다. 닉슨은 이를 공격하면서 대선 승리를 움켜쥘 수 있었다.

BLM 운동은 그러나 진보와 보수의 양극단으로 깊게 나누어진 미국 정치 지형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미국에서 흑인 인구는 13% 안팎에 불과하지만 흑인들은 수시로 단합해 대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어왔다. 

이들이 투표장에 대거 나타난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는 상대방인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손쉽게 물리쳤다. 2020년 대선에서도 바이든 후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흑인 지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예상을 깨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다. BLM 운동의 전개도 또한 바이든이 트럼프를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흑인 유권자에게 큰 호소력을 보이지 못했다. 많은 흑인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하면서 힐러리는 예상을 깨고 트럼프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90% 이상 힐러리의 승리를 점쳤지만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선거 향방의 키를 쥔 흑인 유권자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인 딜런 멀바니(Dylan Mulvaney)를 맥주 버드 라이트의 광고 모델로 쓴 미국 맥주회사 앤하이저부시(ABI)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부 소비자가 멀바니에 대한 반감으로 버드 라이트의 불매운동을 진행했다. 이에 맥주 판매량이 감소한 앤하이저부시는 공짜 맥주 마케팅까지 진행했다. /AP=연합뉴스

흑인 유권자들의 강력한 지지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한 바이든 대통령은 각종 진보적 정책을 통해 음으로 양으로 이들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흑인 가구가 많은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늘리고 학자금 대출의 상환을 유예하고 준틴스를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다.

물론 이런 바이든 진보 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도 극심했다. 이들은 특히 낙태 지지와 같은 진보 진영의 어젠다를 혐오했다. 2016년 대선에서 예상을 뒤집고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도 바로 이들 조용한 보수층이었다. 이들을 선거판으로 불러낸 것은 BLM과 진보 슬로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이들 보수진영은 평소 교회에 가면서 신앙과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이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보수적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 미국의 시골과 남부 지방을 국도로 여행하다 보면 어디에서나 교회는 쉽게 눈에 띈다. 미국에서 기독교적 가치는 단순한 기복을 넘어 영혼의 정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보수진영이 낙태와 더불어 가장 크게 반발하는 것이 성소수자(LGBTQ)에 대한 지원 확대다. LGBTQ를 성경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해 이들의 권리를 강화하거나 그 권리에 대한 지지를 교육하는 것에 대하여 큰 우려를 표명한다.

미국의 대학과 기업이 채용과 인사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다양성, 평등 및 포용 증진 정책(Diversification, equity, and inclusion, DEI)에 대한 거부감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관이 DEI의 타당성을 내세워 기독교적 가치를 약화시키고 LGBTQ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분노를 결정적으로 촉발시킨 사건이 버드 라이트 광고 스캔들이었다. 맥주회사 버드와이저가 젊은 층이 열광하는 전미(NCAA) 대학농구 토너먼트 기간인 '광란의 3월(Mad March)' 시즌에 이들 젊은이에 대한 매출을 올리기 위해 얼마 전에 성전환한 딜런 멀바니(Dylan Mulvaney)를 광고 모델로 쓴 것이 화근이었다.

문제는 버드와이저의 주 고객층이 중장년 이상의 보수적 남성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LGBTQ에 대한 이들의 분노가 SNS를 통해 전파되면서 버드와이저에 대한 불매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버드와이저에 대한 매출이 감소했고 버드와이저의 모회사인 앤하이저부시(ABI)의 주가가 20%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이들 스캔들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미국 사회가 좌우로 분열되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사상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이 갈수록 BLM·낙태·LGBTQ 등을 둘러싼 문화 전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정치권은 당연히 이를 지지자를 투표소로 끌어들이는 촉매제로 사용한다.

문제는 기업이다. 어느 한쪽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벌이다가는 반대쪽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이 사안을 무시한 채 섣부른 마케팅 전략을 짰다가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규모의 기업가치가 훼손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임원과 지도자를 선임하는 것이 필수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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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