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어느 중견 배우의 연기 팁···커피나 휴지가 되어보라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무생물이 되어 온몸으로 표현하며 행복한 때와 불행한 때 생각해 보기 시를 소리 내어 읽어도 연기에 도움
모 문화재단에서 배우(남자·50대 중반)를 초청해 그분의 연기 인생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배우는 혼자 있을 때 ‘무생물이 되어보기’라는 주제로 몸 연기를 한다고 했다. 커피가 되어보기도 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가 되어보기도 하고, 물이 되어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 무생물에 색을 입히고 인격을 부여하는 놀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아주 철학적이고 생소해서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커피가 되기 위해서 최대한 몸을 구부려 둥글게 하고 숨을 최대한 참아 얼굴을 붉게 만들어(색을 입히는 연습) 커피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한단다.
물을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이 물이 언제 행복하고 행복할 때 어떤 말을 할까? 또 불행할 때는 언제이며 그땐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할까를 가정하여 혼자서 노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테이블에 놓여 있는 생수를 집어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마셨다.
이때 물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쓰임새로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해주었으니 말이다. 즉 소명을 다하고 생을 마감할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때는 마치 티 없이 맑은 아이의 목소리로 “나는 너무 행복해” 라는 말을 중얼거려 본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일순간 표정을 확 바꾸어 마시던 그 물을 단상 가장자리로 사정없이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때 물은 어떤 상황에 놓이는 것일까?” 누군가로부터 버림을 받아 내팽개쳐짐을 당한 물은 불행하다는 것이다. 화가 나고 그 화로 몸이 상하고 폭발할 수도 있단다.
그런 상황들을 상상하면서 혼자 캐릭터를 만들어 그것을 몸으로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체력훈련과 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고 자연스럽게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연기 경력이 35년이라고 했는데 강산이 3번 바뀌는 동안 그 배우는 그렇게 연기 연습을 했다고 하니 대단한 배우이고 자긍심 있는 배우인 것 같았다.
무생물이 된 후에는 절지동물, 알로 태어나는 동물, 사람 등의 순서로 혼자서 상황을 만들어 몸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한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배우는 근육의 움직임을 알아야 하기에 해부학도 공부했다고 하니 연기자가 되는 게 쉬운 게 아님은 분명한 것 같다. 50 중반인 그 나이에 다리찢기나 몸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고 하니 그것이 노력의 댓가인 듯했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지난 회에 연기자는 타고나는 것 같다고 한 나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연극에서 맡은 배역을 연기하고자 어떤 노력을 했나? 그저 대사 외우기에 급급했고 몸동작 흉내 내기에 전전긍긍하지 않았는가! 화가 이중섭은 소를 그리기 위해서 온종일 소를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릴 뻔하기도 했다던데. 우리는 결과만 보고서 그 과정을 생략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멋진 결과 뒤에는 수백 번 실수가 있었고 수천 번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함을 다시 생각한다.
강의가 끝나고 참석자 몇몇이 대본을 읽고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대본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나 외에 참석자 2명이 배역을 정해 배우와 함께 대본을 읽었다. 일종의 낭독극이었다. 읽고 난 후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대본을 읽을 때 장음 단음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든가, 온점 반점을 그대로 읽을 때도 있지만 한 문장이 끝났다고 해서 쉬는 것이 아니고 마치 반점처럼 생각하고 뒤 문장을 바로 이어서 읽어야 하는 경우 등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배우는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시어에 생명을 부여해서 읽고 내 귀에 들리는 내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소리내서 읽는 것이 연기 훈련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슬픔에 대한 시를 읽고 배우가 우는 장면을 연기한다고 가정해 볼 때 실제로 배우가 울 수도 있지만 울음 직전까지 가서 그 울고픈 울음을 참는 것이 관객들에게 감정 전달이 잘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감정의 전달로 관객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시를 소리내어 읽되 그 시 장면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다음 연극 기회가 오면 오늘 들은 내용을 참고하여 좀 더 내면적인 연기를 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