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러시아戰 지원한 중국,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재현하나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美 독립전쟁 지원 후 몰락한 '루이 16세'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에 선 중국과 닮아 위안화&부동산 시장 몰락···디플레 조짐
때로는 커다란 대의명분이 아니라 가족애와 사사로운 분노가 전쟁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멜 깁슨이 열연한 영화 '패트리어트-늪 속의 여우'에서 미국독립전쟁 시기 영국군에 맞서 싸운 벤저민 마틴도 마찬가지다. 벤저민은 영국군에 살해된 두 아들의 복수를 위해 전쟁을 시작한다.
그는 민병대를 조직해 천인공노할 살상을 거듭하는 영국군에 공격을 가해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다. 영화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가족애와 낭만적 스토리를 전개하지만 실상 미국 독립전쟁은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유럽 열강이 벌인 국제전이기도 했다.
해군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대영제국의 헤게모니 도전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다. 한때 초강대국이었다가 영국에 해상 패권을 빼앗긴 스페인과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지중해와 카리브해 그리고 미국 남부 멕시코만에서 영국 해군을 공격했다.
해전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해군은 대영 해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속속 승전보가 전해졌다. 결국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미 독립군과 프랑스 연합군에게 결정적 패배를 맞은 영국은 1783년 파리조약에서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로부터 100년 뒤 프랑스는 미·불 양국이 싸운 독립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해 미국으로 보낸다. 뉴욕 앞바다 엘리스섬에 우뚝 선 이 여신상의 횃불은 가난과 핍박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미국의 독립전쟁은 미국과 프랑스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듯 보인다. 그러나 미 독립전쟁 지원은 그간 빚에 시달려 온 프랑스의 재정을 완전히 파탄시키고 말았다. 루이 16세는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를 타개해 보려 했으나 실패했고 1789년 바스티유 습격 사건으로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다.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영·불의 헤게모니 싸움을 연상시키는 것이 현재 치열하게 펼쳐지는 미·중의 대결이다. 작년 2월부터 불을 뿜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미국 독립전쟁을 닮았다. 미국은 유럽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러시아 군에 치명적 손실을 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은근히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패배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절대 군주 체제, Ancien Régime)이 붕괴하면서 내부로부터의 변혁에 시달렸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런 체제 붕괴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자 프랑스의 경제 패권도 저물었다. 과연 중국에서도 그런 변혁이 일어나 미국 경제를 추월할 수 있을까?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이 집권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비상은 시작되었다. 2001년 WTO에 가입하고 2010년에는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1위의 제조업 대국이 됐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기까지도 음으로 양으로 중국의 성장을 적극 밀어줬다.
그러나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십 년간 자신들의 경제성장에 결정적 지원군 역할을 한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을 공식화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의 성장이 정체되자 숱한 전문가들이 달러의 몰락을 예상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대안으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공 등 브릭스(BRICS)도 중국의 미국 견제를 지지했다.
사실 지난 세기 영·불을 중심으로 한 서구 열강 제국주의 침탈에 대한 기억이 미국과 서방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감으로 표출되어 왔다. 그렇다고 하여 푸틴의 구시대적, 민족주의적 우크라이나 침략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유사하게 전제적 독재정권을 구축하고 있는 국가들은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혐오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분히 이념 투쟁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중국은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에 섰다. 민주국가의 일원인 인도가 뒤로 발을 빼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공격적 제스처다. 여기서 서방과 중국의 관계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금년 들어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 이후 기대되던 중국 경제의 복귀 실패다. 가장 의아한 중국 경제 영향력의 실종이다. 14억의 인구를 바탕으로 소비 대국을 지향하던 중국의 복귀는 없었다. 제로 코로나 이후 중국에서의 여행 수요로 배럴당 100달러로 복귀할 것이라 예상되던 국제유가는 7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개되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기는커녕 중국 경제를 코너로 내몰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급등한 국제유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 현상이 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기준금리가 0.25%에서 5.25%로 급등했다.
그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위험도가 높은 고수익(high yield) 채권의 가격이 폭락했다. 그 직격탄을 맞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던 부동산개발업체들이었다. 헝다그룹(Evergrande)을 비롯한 유수의 부동산 업체들이 발행한 유로달러 채권이 부도가 났다.
이들이 부도를 내자 중국의 성장 엔진인 부동산 시장이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그간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짭짤한 이익을 거두면서 거액의 빚을 내 각종 인프라에 투자하던 지방정부도 부채의 함정에 빠져버렸다. 신뢰의 위기가 온 나라를 강타하면서 급속하게 금융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중국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급격한 시장붕괴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유동성 주입 속에서 위기는 서서히 그러나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좀비 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의 과감한 퇴출이라는 항생제의 투약이 없는 가운데 아마도 위기의 끝을 가늠하기란 힘들 것이다.
금리인하와 유동성 증가는 위안화의 추락과 국제자본의 이탈을 뜻한다. 메이드인차이나에 대한 혐오도 커져만 간다. 수출은 줄어들고 중국 기업은 가격 인하와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에 몸살을 앓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대륙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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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