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웃는 새] ③ 삼성전자 핵심기술 다 털렸는데 간첩죄 처벌 못 해
경제 간첩 개념조차 없는데···처벌 목소리만 현행법, 경제 안보 위협 막아내기엔 역부족 검찰도 3년간 묵혀와···국정원이 전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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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새(笑鳥, The Laughing Bird) 작전. 1980년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한 전두환 정부가 펼친 건국 이래 최초 경제정보 수집 활동을 말한다. 재일동포들의 적극적인 협조 결과 일본 정부의 극비리 에너지 프로젝트인 '선샤인 공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이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전략방위구상을 발표하기 3년 전의 일이었다. 반세기 만에 신냉전이 돌아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중국과 러시아 압박 카드를 쏟아내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통상 지형도 양자(兩者)에서 다자(多者)·진영(陣營) 중심으로 이동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 같은 신냉전을 '경제 전쟁'이라고 표현해 왔다. 한국 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칩4'로 표현되는 경제 동맹이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최선의 답안을 찾는 것이 오늘의 과제다. 다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내 경제 안보법제는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해외정보기관의 스파이 침투 등에 무방비한 법제로 인해 미·중 보호무역주의에 끌려다니기만 할 판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반도체 세계 대전과 함께 본격화하는 경제정보 전쟁의 상황을 살펴보고 돌파구를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① 반도체 전쟁 시작인데···국익 뒷전 韓 경제정보법 |
반도체 핵심기술 유출을 간첩죄로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경제 간첩이란 개념이 없다. 국가전략 기술 유출 시 엄중 처벌하도록 대법원이 양형 기준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나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1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이 삼성전자 기밀 유출 혐의를 받는 A씨의 첩보를 검찰에 전달한 시점은 2019년 8월로 사정당국이 무려 3년이 넘게 사건을 묵혀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첩보를 입수하고도 A씨의 중국 체류 등으로 그동안 수사를 중단해 오다 A씨가 병원 치료 등을 이유로 올해 2월 입국하자 형사 입건했다. 구속 사유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다.
A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중국 반도체 제조 회사 직원 5명 및 삼성전자 협력업체 직원 1명과 함께 2018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와 공정 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을 부정 취득·부정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이와 함께 대검 과학수사부가 국가 핵심기술을 국외로 유출하는 범죄에 대해 구속 수사하는 등 엄정 대처하는 내용의 '검찰사건처리기준 개정안'을 일선 검찰에 통보하고 대법원이 양형기준 강화에 나섰으나 3년이나 지난 시점 뒷북 대응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내 경제 안보 법제는 2007년 도입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업기술 침해·영업비밀 누설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 간첩에 대한 개념 규정조차 안 되다 보니 A씨를 간첩죄로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자본금 4600억원으로 중국 청두시에 중국업체 CHJS를 설립했다. 또 대만 폭스콘으로부터 8조원을 투자받기로 약정한 뒤 싱가포르에는 진세미를 설립했다. 이후 고액 연봉을 제안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핵심 인력 200명 이상을 영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영업비밀과 기업비밀을 획득하는 경제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자를 산업 간첩이라 한다. 아울러 정보기구가 산업 간첩 활동도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산업 간첩이란 표현은 특정 생산품에 대한 제조 비법 등에 한정되는 협소한 개념이어서 기업경영의 핵심 이익을 보호할 수 없다.
반면 미국의 경제간첩법은 "유형물이건 무형물이건, 저장되거나 편집되거나 기억된 모든 것"을 보호법익으로 한다. 동시에 "외국 세력을 이롭게 하기 위한 기업비밀 절취행위"를 경제간첩범죄(Economic espionage)로 규정하고 있다. 또 외국 세력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에도 거래 비밀절도죄(Theft of trade secrets)를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A씨의 기술 유출에 앞서 전직 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한 것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8월 4일부터 시행한 이직 제한 규정이 포함된 반도체 특별법도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처럼 중앙정보국(CIA)이 관할하는 경제간첩법(EEA) 하나만으로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사건을 위헌 논란이 큰 이직 제한으로 막으려다 일을 더 키웠다는 얘기다.